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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 - 림인식 목사(말씀)
한복협  2017-12-12 11:03:13, 조회 : 73, 추천 : 14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




                                                                                                                                              림 인 식 목사
                                                                                                                 (한복협 자문위원, 노량진교회 원로)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을 온 세계가 기념하며 감사하는 계절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세상에는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인간 속에 실행하셨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첫째, 자기를 완전히 희생하시는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사랑은 ‘나를 위해서 남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당연히 받으셔야 할 영광과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모습 중 가장 낮은 종의 형체로 오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실 만큼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사랑할만한 가치나 자격이 전혀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자기 생명까지 완전히 버리시면서 사랑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에는 없었던 사랑입니다. 친히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실행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크리스마스의 근본 의미는 예수님의 속죄로 구원얻은 우리 신자들이 그 아가페 사랑을 본받아서 아직 구원얻지 못한 자들을 사랑으로 섬겨 구원이 이르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쩨, 예수님의 사랑은 불쌍히 여기는 사랑입니다.
누가복음 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인성으로 가셔서 가난한 과부의 외아들의 장례행렬을 만나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인성의 장례행렬을 만나러 가신 것은 불쌍히 여기는 사랑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까이 가셔서 그 관에 손을 대고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죽은 아들을 살려 그 어머니에게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를 불쌍히 여기는 사랑으로 주신 위로와 축복입니다. 슬픔과 절망을 당하고 있는 인류에게 불쌍히 여기는 사랑으로 주시는 위로와 축복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왜 슬픔과 절망에 빠집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이 곧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 내가 그를 위해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말씀하시면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그의 몸에서 하와를 창조해주셨습니다. 아담이 눈을 떴을 때는 나의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한 만한 하와가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상대입니다. 아담의 마음속에 지금까지의 허전한 공허심, 적적한 적막감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기쁨과 환희가 충만해졌습니다. 비로소 참으로 사는 기쁨을 느끼며, 삶의 의미와 목적을 새롭게 발견하고 얻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삶의 기쁨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에 슬픔과 절망에 빠집니다.
나인성 과부는 외아들의 죽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는 사랑으로 그 아들을 살려서 어머니에게 주셨습니다. 단순히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놀라워할 것이 아닙니다. 외아들을 잃은 과부 어머니 마음속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이 죽었던 것이, 살아난 그 아들을 받음으로서 전보다 몇 배는 더 큰 사랑의 기쁨과 삶의 보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와 축복인 것입니다.
사랑이 끊어지는 것은 죽음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배신을 비롯하여 여러 경우로 사랑이 끊어져 아픔을 당하고 비일비재로 비극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아픔과 슬픔이 사람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는 사랑으로 죽은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사 사랑의 기쁨을 새롭게 하시고 인생에 축복과 위로를 주십니다. 슬픔과 절망에 빠진 인생에게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사랑 그 이상 큰 복음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에게 없어서는 가장 귀중한 사랑은 예수님 통해서 받는 불쌍히 여기는 사랑입니다.
한센병 전문가 폴 브랜드 박사가 인도에서 젊은 나환자의 어깨를 손으로 짚고 가까이 얼굴을 바라보면서 환자가 받게 될 치료에 대해 통역을 통해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 환자가 울기 시작했어요. 박사는 내가 혹 환자를 섭섭하게 하는 말을 했나 싶어서 통역에서 왜 우는지 물어봐달라고 했습니다. 그와 한참 대화를 하더니 통역이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이 환자의 어깨에 손을 짚어 주신 것에 감격해서 눈물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여러 해 동안 자기를 손으로 만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네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 나병이상의 온갖 죄악적인 심신 병으로 사랑과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인생들을 고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오셔서 불쌍히 여겨 주신 사랑, 바로 그 사랑을 서로 나누면서 잃어버린 위로와 기쁨과 목적을 되찾는 계절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셋째, 용서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세상에는 없었던 용서의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에베소서는 “서로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말씀을 통해, 남이 나에게 잘못한 것을 무조건적으로 무제한으로 다 용서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 6:14,15절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에서는 십자가 옆 강도가 회개하며 “나를 기억해주시옵소서.” 했을 때 즉시 용서하시고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다 용서해주시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마지막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못박는 원수들까지 모두 용서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디베랴 호수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를 친히 찾아오셔서 가장 깊은 용서 즉 사랑과 임무를 맡기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임직식을 하신 것입니다. 조반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것들보다,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같은 질문을 세 번 반복해서 하셨습니다. 물론 중요한 서약이기 때문에 3번 물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세 번 주님을 부인한 것을 완전히 용서하신다는 뜻도 들어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질문의 핵심은 내가 ‘이 사람들보다’,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는 사랑의 서약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배와 그물같은 재산이나 어부로서의 직업이나 가족 혈연이나 세상 부귀영화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이미 그런 것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을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또 물으셨는가? 바로 지난 번에 베드로가 자신의 생명과 예수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자신의 생명을 취하고 예수님을 버리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시는 것은 “네 생명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 그러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그렇게 대답을 드렸습니다. 지난 유월절 때에는 “남들이 다 버려도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했었습니다. 자기의 결심만으로 장담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그때 자기 결심이 참으로 약하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번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렇게 대답한 것은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도와주셔야 할 수 있다는 뜻이 들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을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목회하라.’ 말씀으로 임무를 주셨습니다. 물론 베드로의 양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양을 목회하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직접 가장 큰 용서를 받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이 직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장차 순교할 것 까지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용서받고 임명받고 순교예교까지 받은 베드로는 이때부터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밀른선교사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자극을 줍니다. 밀른은 남태평양 뉴헤브리디스 제도의 원주민들이 앞서 파송된 모든 선교사들을 다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선교를 하기 위해 그 섬으로 향했습니다. 모두가 “얼마 못가서 죽을 터인데 왜 가려고 하느냐”며 극구 만류를 했지만 그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선교지 편도 배표만 구입했습니다. 그의 짐은 자기 시신을 담을 수 있는 ‘관’ 한 개와 단기간 사용할 간단한 일용품 뿐이었습니다. 그는 항구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장례식하는 것처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면서 ‘소식이 없으면 죽은 줄 알아달라’ 하였습니다. 그렇게 선교지를 향해 떠난 후에는 아무 소식도 전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입니까. 밀른은 그 섬에서 35년 동안 원주민을 사랑하며 선교하여 많은 교회와 신자를 세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 떠났을 때 원주민들은 그를 마을 한 가운데 큰 무덤을 만들어 묻고 묘비에 다음과 같은 비문을 새겼습니다.
‘그가 왔을 때 빛이 없었다. 그가 떠났을 때 어둠이 없었다.’
밀른 선교사는 아예 목숨바칠 각오로 자기 관을 짜서 섬에 들어갔기 때문에 날마다 백퍼센트 혼신을 다해 선교에 집중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라고 하는 선교지에 올 때 죽음을 각오한 관을 가져오지 않았고 오래 살기 위한 짐을 너무 많이 가지고 왔습니다. 선교 사명보다 다른 일에 너무 바빠서 선교할 짬이 부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관을 짜가지고 선교지로 가는 일꾼을 쓰셔서 기적적인 놀라운 일을 이루게 하신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용서의 사랑을 베푸시고 큰 사명을 맡기시면서 순교의 관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로마를 바꾸는 일에 크게 쓰임받는 위대한 주의 종이 되셨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무조건 무제한 용서의 사랑을 실천하는 계절입니다. 2017년 크리스마스에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드리되 예수님처럼 아가페 사랑, 나를 완전히 희생하면서 다른 심령을 살리는 사랑을 베푸는 그런 크리스마스가 됐으면, 불쌍히 여기는 그 사랑으로 나도 남들을 불쌍히 여기는 그런 사랑의 관계, 그리고 삶의 근본질을 새롭게 바꾸어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했으면, 그리고 제한 없는 완전한 용서로 주님께서 완전한 화목을 주신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화목으로 세워갈 수 있었으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한국교회와 한국민족은 아가페 사랑, 불쌍히 여기는 사랑, 용서하는 사랑 예수님의 사랑만 충만하다고 하면 다른 무엇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우리들이 다시 한번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 감사를 드리며 그 사랑을 실천하는 다짐을 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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