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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회와 예배 - 전대경 목사
한복협  2020-11-13 10:33:27, 조회 : 15, 추천 : 2

                               AI(인공지능)에게 있어서 ‘자율적 의식’의 가능성 문제*





                                                                                            전 대 경 목사
                                                                   (편안한교회 담임, 한국외대 특임강의교수)





I. 들머리: 4차 산업혁명의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but not yet)

2045년, 도심지 외곽의 작은 교회를 목회하던 아무개 목사는 최근 한 명 한 명 교회에 새로 오는 새가족들로 인해서 요즘 너무 기쁘다. 이들을 양육하고, 함께 기도하면서 이들과 함께 삶과 신앙의 씨름을 하는 목회의 보람을 요즘 들어 더 크게 느낀다. 그런데, 목사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기존 성도들과 새가족들 중에 아이를 갖거나 낳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이었다. 어느 날, 한 성도가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어 병원에 찾아갔다가 그만, 그 성도가 ‘안드로이드 인공지능’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목사는 큰 충격에 빠진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다른 성도들에 대해서 조사해보니, 한 명 한 명 모두 다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들이었다. 목사는 너무나도 큰 충격과 환멸에 그만 사택에서 목을 매단다. 하지만 줄이 목을 파고들어가지 않고 자신이 죽지 않는 것을 곧 알게 된다. 자신 스스로도 안드로이드였던 것이다.

논자가 지어낸 이 이야기는 다소 허무맹랑한 공상과학 소설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특이점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기술적 특이점으로 지목한 해인 2045년경에 ‘우리 주변과 우리에게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진지하면서도 주도면밀하게 주장한다. 만약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때에는 누가 인공지능이고 누가 인간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되고(homo ex machina), 인간이 인공지능이 될지(homo est machina)도 모른다. 그런데 (무신론자인) 특이점주의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기계의 몸을 갖게 된 우리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영생을 하게 되어 ‘신처럼 된다.’고까지 주장한다(deus ex machina). 즉 기계를 매개로 하여 인간은 신이 된다(homo deus)는 것이다.
        4차산업혁명시대를 정의하는 방법은 매우 많겠지만, 그 정의의 중심에 인공지능이 꼭 빠지지 않는다는 데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마치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의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but not yet)의 종말론적 구원관을 의도적으로 연상시키려 하는 듯, 인공지능과 관련한 학계(혹은 학자들 내)에서는 ‘4차산업혁명시대는 한 면으로 이미 임한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아직 온전히 임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해당하는 것이 애플사의 아이폰 등장이며, 재림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기술적 특이점’의 도래이다.
        인공지능과 관련한 미래에 대해 유토피아적이거나 디스토피아적으로 극단적인 전망을 쏟아내는 이 시대에, 우리는 인공지능에 대해서 목회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어떻게 보아야 할까? 만약, 목사보다 설교를 더 잘 하고, 성경공부를 더 잘 가르치며, 상담을 더 잘 하는 인공지능 목사가 등장한다면 어떨까? 신학자보다 성경 원어에 더 해박하고, 고전에 박식하며, 현대의 흐름을 더 잘 파악하여,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신학 논문들을 더 잘 써내는 인공지능 신학자는 어떨까? 최근 ‘AI 목회 상담가’(목회적 챗봇)를 개발하는 움직임들이 있다.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목회와 선교에 크게 일조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교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목사와 신학자에게 목회함과 신학함에 있어서 득이 될까? 독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AI는 어디까지나 assistant pastor가 아닌 assistant to the pastor까지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이 점점 더 발전함에 따라, 기계는 점점 더 인간과 비슷해지려고 하고, 지성적 능력을 요구하는 기계 장치도 인간 뇌의 기능을 점점 더 닮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래에는 실제로 몸을 이동하지 않고도 거의 모든 것이 기계를 통해 편리하게 가능한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예배당에 모여서 함께 드리는 예배만이 (물론 코로나 때문에 요즘에는 이마저도 다시 revisioning 되어야 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직접 모여서 얼굴을 보고 모이는 유일한 모임이 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공지능 시대에 사회 속에서의 교회의 역할은 더욱더 중요해진다.
        지난 수년 동안 ‘인공지능과 목사’ 혹은 ‘인공지능과 교회’라는 주제에 대해서 갖고 있던 개인적 질문들에 대해 나름 스스로 연구물들(5편)을 통해 대답해 보려고 했다. 살펴본 결과, 인공지능은 기능적으로는 목사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인격과 영성도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본질적 기능인 권징과 치리가 불가능하다고 나름 결론 내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의 아버지’ 혹은 ‘컴퓨터의 창시자’로 불리는 앨런 튜링(Alan Turing)이나 구글의 기술 책임 이사인 커즈와일(Ray Kurzweil) 등 관련 연구의 최고봉들이 하나같이 ‘기계에서도 마음이 창발할 수 있으며, 인간의 마음도 기계에 담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이 문제가 그렇게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4차산업혁명과 교회’의 문제는 결국 ‘인공지능과 목사’, 더 나아가 ‘마음(혹은 의식)의 본질’ 문제로 귀결된다(좁혀진다). 따라서, 본고는 여기에 대한 본인의 연구를 종합해 봄과 동시에 그 한계점과 더불어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모색해 보려고 한다.

II.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의 도래

        ‘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말은 천체 물리학에서 차용한 표현으로, 본래 블랙홀 주변의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는 중력을 가지게 되는) 사건의 지평(Event Horizon)을 표현하는 말이다. 기술적 특이점은 보통 ‘인공지능이 인류의 지능의 종합을 뛰어 넘게 되는 시점’ 혹은 ‘인공지능이 그 스스로보다 더 성능이 뛰어난 인공지능을 만들게 되는 시점’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기술적 특이점 개념은 1953년 노이만(John von Neumann)이 처음 언급했고, 튜링(Alan Turing), 빈지(vernor Vinge), 커즈와일(Ray Kurzweil) 등이 반복해 주장했다. 특이점주의자들(singularitarians)의 견해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 스스로 개량하는 수준에 이른 후에는 기술 발전의 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와 같이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의 기술 발전 역사와는 전혀 다른 국면에 들어가게 되어, 이전까지의 지식과 법칙이 맞지 않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되는데, 그 시점을 기술적 특이점이라고 한다. 그래서 기술적 특이점은 그 역사적 불연속점이라는 측면 때문에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에 비유되기도 한다.
        기술적 특이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인공지능에 대하여, 일런 머스크(Elon Musk), 빌 게이츠(Bill Gates),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2018) 등 많은 유명 인사들이 AI를 경계하라고 호소한다. 일런 머스크는 북한보다 AI를 더 경계하라고 했다(If you're not concerned about AI safety, you should be. Vastly more risk than North Korea). 스티븐 호킹은 AI를 인류 문명에 있어서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라고 부른다(worst event in the history of our civilization). 빌 게이츠는 최근 세계 최고를 앞 다투는 기술회사들(technological companies)이 AI 연구에 그 시간을 배로 늘린 이 시점에서, 이미 되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지금 당장은 AI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크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후 몇 십 년 뒤에는 분명 걱정해야할 것이다.’고 지적한다. 『파이널 인벤션: 인공지능, 인류 최후의 발명』이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한 제임스 배럿(James Barrat)은 안전하게 고급인공지능을 개발할 수 있다는 데에 대한 합리적 회의주의를 호소하며, ‘우리는 다가올 재앙을 피하기 위해 적극적 대응을 해야 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경고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인공지능(특이점 로봇)이 인간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우주적 창조의 측면에서, ‘빅뱅이 최초의 특이점이었다면, 기술적 특이점은 제 2의 특이점일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반면, 이러한 기술적 특이점이 인류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미래적 ‘기술적 특이점’에 대해 혹자는 “미래는 한 면으로 이미 임한 동시에 다른 한 면으로 아직 임하지 않았다.”고 한다. 위의 반응들에서 보는 것처럼, 인공지능과 특이점에 대한 반응은 크게 예찬론, 위기론, 신중론이라는 3가지로 나뉜다. 본 소고는 기본적으로 신중론의 입장에서 예찬론과 위기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III. 뇌(마음, 의식, 의지 혹은 영혼)에 대한 기능주의적 이해

A. 마음(의식)에 관한 앨런 튜링의 기능주의적 이해: 튜링 테스트와 이미테이션 게임

        ‘컴퓨터의 아버지’ 혹은 ‘인공지능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튜링이 1950년에 발표한 이미테이션 게임은 크게 2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는 남녀를 구분하는 테스트이며, 2단계는 사람과 기계를 구분하는 테스트이다. 튜링은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충분한 논증도 없이 그것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컴퓨터에게 있어서 의식이나 생각의 가능성에 대한 철학적 논증 대신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할 수 있다면, 컴퓨터는 생각하는 것이다’라는 기능론적 논증을 한다.
        튜링은 학습이 가능한 기계에 대해 착상한다. 기계에게 (비록 비용이 매우 높을지라도) 육체를 만들어주는 것과 언어와 지식을 가르치는 것, 이 둘 모두 마치 어린 아이를 양육하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한다. 튜링은 머지않아, 가장 간단한 형태의 지능 게임인 체스부터 시작하여 기계가 인간과 지능을 겨룰 것이라고 예견했고 이는 인공지능 딥블루(Deep Blue)가 1997년 인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를 체스에서 이김으로써 실현된다. 여기에 더불어, 비록 20년의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튜링은 약 70년 뒤에 튜링 테스트가 실현될 것 또한 예견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내에 109의 저장 공간을 갖춘 내장형 프로그램 컴퓨터로 이미테이션 게임이 가능할 것이며, 일반 질문자는 5분간의 질문과 답변 후에 인간이었는지 컴퓨터였는지에 대해 70% 이상의 확률로 맞출 수 없을 것이다.

        최초의 컴퓨터를 설계한 튜링은 아마도 자신의 동성 연인 크리스토퍼 모컴(Christopher Morcom)을 잃었다는 상실감으로 인해, 자의식이 있는 기계를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듯, 매들린 아크리치(Madeleine Akrich)는 기술적 대상의 설계자는 자신의 세계에서 보고 싶은 비전이나 예견을 그 대상에 투사한다(inscribe)고 지적한다.
        자식보다 반려견 기르기를 선호하며, 애완동물을 이성 친구 대체자로 여기는 현대인들도 튜링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여, 자신의 이상형을 휴머노이드 인공지능으로 주문 제작하는 날도 그리 멀지 않아 도래할지 모른다. 하지만 KAIST의 뇌과학 교수인 김대식은 튜링 테스트를 통한 이미테이션 게임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튜링 테스트는 다양한 기술, 철학, 윤리적 문제를 던진다.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기계는 ‘기계가 아닌 척’ 해야 할 수 있다. 사람보다 더 똑똑해서도, 더 도덕적이어도 안 된다. 미래 기계들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인간을 최대한 완벽하게 속일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 된다... 튜링 테스트 대상은 기계가 아니다. 사실 우리 인간을 테스트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동안 인공지능 연구는 인간을 흉내내기로 지능연구를 좁게 해왔다.” 영화 <Ex Machina>와 <Her>에서 나오는 것처럼, 인간으로 하여금 그/그녀(그것)에게 사랑에 빠지게 할 정도의 인공지능은 속임수가 핵심 모티프인 튜링 테스트를 여유롭게 통과하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에게 속임을 당한 인간은 과연 인공지능을 테스트한 것일까? 아니면 테스트 당한 것일까?
        인공지능 자체가 행위자로서 도덕성을 충분히 지녔는지를 테스트하는 모럴 튜링 테스트(Moral Turing Test)가 가능하다는 이론이 최근에 주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보다 ‘AI는 욕망이 없어 인간을 지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오히려, 인공지능의 개발자들이 (중독성 및 편리함 등을 미끼로) 사용자들을 지배할 가능성이 더 높겠다. 따라서 인공지능 자체의 도덕성보다 개발자와 사용자의 도덕성 테스트가 더 우선해야하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인공지능은 행위의 주체가 아닌 도구로서의 객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은 ‘인간이 더 도덕적으로 살아가게 할 도구’로서 개발되어야 한다. 물론, ‘현재는 기술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실현상의 난점이 크다.’고 비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자체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목표가 아닌, 인간을 조금씩 더 도덕적이게 만드는 인공지능은 현재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B. 마음에 대한 커즈와일의 기능주의적 이해: 역분석(reverse engineering)과 패턴인식 마음이론
        
        이 시대의 대표적인 트랜스휴머니스트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에게서 보는 것처럼, 트랜스휴머니즘이란 생물학적 기술과 컴퓨터, 인공장기, 로봇 등을 인체에 결합해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모든 질병과 고통, 죽음으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커즈와일은 기본적으로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을 통해 뇌의 패턴 알고리즘을 분석하여 그 기능을 그대로 기계가 작용(혹은 작동)하도록 하면 기계도 마음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마음은 곧 뇌의 작용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뇌의 작용을 기계가 그대로 모방하면 마음(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커즈와일은 뇌를 기계(혹은 기계적 연산을 하는 컴퓨터)라고 전제하고 이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는 뇌 또한 다른 기계들과 마찬가지로, 뇌 역분석(reverse-engineering)의 방법을 통해 연구, 분석 및 모방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기계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김대식은 ‘인공지능이 기능적으로 마음을 모방해도 이는 알고리즘에 의해 비슷하게 반응하는 것일 뿐 실제로 인공지능이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내 모든 말을 들어주고, 내게 진심으로 관심을 보여주는 듯 하는 누군가가 기계라는 사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즉, 인공지능이 뇌의 패턴을 역분석(혹은 역공학)을 통해 그대로 기능을 복제한다고 해도, 인공지능은 인간이 하는 마음의 행위를 모방할 뿐 실제로 욕망 등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 이세돌에게 한 번 졌다고 해서 인공지능 알파고가 패배감과 좌절감을 느꼈다는 기사는 아직 보지 못했다. 알파고는 이기기 위해서 프로그래밍 된 것이지 이기려는 욕망을 가진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AI는 욕망이 없어 인간을 지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커즈와일은 복잡성의 증가를 기술적 특이점을 향한 핵심 모멘텀(momentum)으로 인식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복잡성의 증가가 데이터의 압축 기술과 프로세스 시간의 단축을 가져오고, 더 나아가 이러한 축적된 기술정보와 더불어 무한에 가까운 시간(단축)이 계속해서 더 나은 지능을 탄생시킬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성의 증가로 인하여 시간이 단축되고 기술과 정보의 축적을 통해 무한한 발전의 폭발이 일어난다는 커즈와일의 주장의 바탕에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 깔려 있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 예찬론자인 커즈와일에게는 안타깝게도, 무어의 법칙 창시자인 고든 무어(Gordon Moore) 스스로도 ‘특이점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지난 2008년 선언했던 것처럼, 무어의 법칙은 최근 완전 폐기 되었다. 세계적인 과학 저널 Nature는 ‘무어의 법칙 폐기’를 2016년 2월호의 특집 주제로 삼았다. 그래서 무어의 법칙이 진리라는 것을 전제로 반도체 생산 공장을 늘려가던 공장들도 모두 공장 건립을 중단하기 시작했다. 즉, 커즈와일의 ‘특이점 도래’를 지탱하고 있는 이론적 바탕에 핵심이 되는 ‘무어의 법칙’도 사실상 폐기되었기 때문에 그가 주장하는 무한한 발전과 그 기술의 축적을 통한 의식(마음)의 탄생도 사실상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커즈와일이 특이점으로 예견했던 2045년도 더 뒤로 후퇴되거나 아주 오지 않을 개연성이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커즈와일은 의학과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지상에서 영원히 사는 법’ 또한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실제로 ‘특이점 이후에는 절대신에 근접한 나 자신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마이클 짐머맨(Michael E. Zimmerman)은 ‘커즈와일을 포함한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인공지능, 나노공학, 로봇공학, 유전공학의 발달로 인하여 머지않아 포스트 휴먼이 탄생되고 이는 현 인류의 지능과 능력을 초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지적한다. 짐머맨은 여기에서 커즈와일을 포함한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기존의 신학(신관)을 깨고, 인신화(theosis 혹은 homo deus)를 통한 자기신격화(self-deification)를 시도하고 있다고 본다. 짐머맨은 ‘비록 수많은 포스트휴머니스트들이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특이점 이후에 기술에 의해 진화하여 도래할 신과 같은(God-like) 후기 인류의 출현을 말한다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짐머맨은 이러한 포스트휴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특이점 이후에 등장할 혹은 우리가 진화하여 될 존재들인 반신(demi-gods)에 대한 열망은 열역학 제 2법칙을 전혀 무시한 것이라고 하며, 특이점을 신적 자기현현(Divine self-actualization)의 임계적 단계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짐머맨의 지적처럼, ‘인류 모두의 의식이 인공지능으로 들어가게 되고 모두가 무한한 능력을 갖게 된다.’는 주장은 과학의 기본 법칙인 열역학 제 2법칙(엔트로피의 법칙)에 위배된다. 다시 말하면, 무질서도가 계속해서 증가하다는 것이 바로 엔트로피의 법칙인데, 모두가 무한한 능력을 갖게 된다는 주장은 여기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커즈와일도 이러한 기술적 진보(진화)의 ‘복잡성 증가’라는 특성이 열역학 제 2법칙의 엔트로피 증가와 상충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비판을 이미 예측이라도 한 듯 ‘질서’ 개념을 도입하여 반박한다. 여기에서 그는 무질서가 질서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무질서가 무작위적이라는 표현이라면, 그 반대는 무작위적이지 않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기술의 끊임없는 진보가 ‘무작위적이지 않은’ ‘합목적 질서’를 증가시킨다고 본다. 즉, 합목적성을 향해 단순하게 질서를 잡는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와 기술을 쌓아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열역학 제 2법칙은 닫힌 계(Closed System) 안에서 적용되는 것이며, 전 우주를 대상으로 하는 기술적 진화는 열린 계(Open System)에 놓여 있기 때문에, 열역학 제 2법칙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주가 ‘열린 계’라는 커즈와일의 주장은 현대 이론 물리학자들 대다수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빅뱅설(Big Bang Theory)은 최근 10년 전까지만 해도 지난 수십 년간 학계에서 지배적인 우주의 기원설이었다. 물리학자 권진혁에 따르면, “최근 우주론 추세는 빅뱅 이론이 코너에 몰리고 있는 분위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빅뱅이론의 창시자인 MIT의 앨런 구스(Alan Guth)와 더불어, 30년 이상 그와 빅뱅에 관하여 세계 최고의 자리를 다투던 프린스턴 대학교의 폴 슈타인하르트(Paul Steinhardt)는 마침내 빅뱅이론을 완전히 포기해 버렸다. 일반적으로 과학 교과서나 매스컴 등에서 광범위하게 알려져 온, 구스가 30여 년 전에 발표한 우주 기원론으로서의 낡은 빅뱅우주론은 이제 그 창시자 자신에게도 지지받지 못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추세는 우주 기원론으로 최근에 다른 대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 기원설의 큰 모델은 1) 발산설, 2) 순환설 3) 재생산설 등이다. 기존의 빅뱅설은 발산설에 해당된다. 즉, 에너지가 화이트홀이라는 특이점에서 물질로 치환된 사건 이후로 계속해서 팽창한다는 설이다. 순환설은 빅뱅 자체를 거부하며,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우주 모델을 제안한다. 재생산설은 기본적으로 무한히 팽창된 우주 자체가 다음 우주의 빅뱅이 된다는 설이다. 하지만 이 모든 우주설은 기본적으로 열역학 제 2법칙(엔트로피의 증가)을 피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기본적으로 우주는 유한하다(finite)는 전제가 깔려 있다. 따라서, 커즈와일의 무한한 기술의 발전 이론은 빅뱅이후로 무한 확장하는 ‘열린 계’의 우주를 전제로 하지만, 이는 세계적인 물리학자들의 의견에 배치된 자신의 바람 또는 믿음으로 치부될 수 있겠다. 그래서 특이점의 도래도 소원(疏遠)해 보이며, 인공적 슈퍼 지능의 탄생과 인간이 기계로 옮겨가 무한한 능력을 뽐내며 지상에서 영생하는 것도 과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패트릭 홉킨스(Patrick D. Hopkins)가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saving’ you와 saving ‘you’는 전혀 다르다. 즉, 인공지능이 ‘너를 저장한다.’와 ‘너를 구원한다.’는 말을 우리가 혼동해서는 안 되겠다.

IV. 신경과학과 심리학 그리고 심리철학의 도전: 마음은 허상인가?

        근자에 ‘의식적 의지(conscious will)는 부수적인 현상(epiphenomenon)이나 환상(illusion)이라고까지 평가절하 되고 있다. 전자는 신경과학, 후자는 심리학으로부터의 주장이다. 그리고 심리철학에서는 ‘마음이나 의지는 실체가 아니라 뇌의 상태’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인공지능에게 마음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커즈와일의 패턴인식 마음이론(PRTM: pattern recognition theory of mind)을 뒷받침하는 이론들이다. 그의 마음 이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뇌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핵심은 바로 감각 인식 등을 담당하는 신피질(neocortex)이다. 신피질은 단순한 구조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계층적 사고 패턴(A Hierarchy of Patterns)으로 기억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한다. 이러한 뇌의 구조와 기능은 의학과 과학을 통해 모델링 가능하다.

1. 신경과학의 부수현상론

        신경생리학자인 벤자민 리벳(Benjamin Libet)은 ‘행위가 전적으로 무의식적인 뇌 작용의 결과’임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는 실험적 증거들을 들며 ‘의지의 효능’(efficacy of will)을 부수적 결과물이라며 공격한다. 상호작용적 이원론은 마음(원인)=>뇌(작용)=>행동(결과), 두 양상 일원론은 마음·뇌(동시 원인)=>행동(결과), 부수현상론은 뇌(원인)=>마음(부수적)=>행동(결과)을 각각 주장한다. 리벳은 ‘운동, 움직이겠다는 의식적 결정, 그리고 준비전위(RP: readiness potential)의 상대적 시점’이라는 3 가지에 관심을 갖고 실험을 했다. 리벳은 실험을 통해 단순하게 손을 움켜쥐거나 팔을 굽히는 행동에 있어서도 RP가 의지(W: will)에 수백 밀리초 선행하며, 그 뒤에 운동(A: act)을 하게 된다고 실험을 통해 결론 내렸다. 즉, RP=>W=>A라고 부수현상론을 주장함으로써 이원론과 일원론을 모두 부정하고 있다. 이는 뇌 사건이 마음 사건에 앞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오류가 숨어 있을 수 있다. 바로 의지를 알릴 때 버튼을 누르는 W 시점도 사실은 운동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RP라는 것 자체가 어떤 것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다른 말로 하면 실제로 운동을 하지는 않으면서 운동을 하는 것을 상상할 때, 몸을 준비단계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Warming Up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실험은 오히려 ‘M(mind)이 RP에 선행한다는 기존의 상호작용적 이원론’을 뒤집는 이론으로서 크게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신경과학은 의식, 의지, 영혼 등 인간으로서의 가장 근원적인 것들이 뇌 속에서 일어나는 전기 신호에 지나지 않으며, 의사결정이나 자의식, 심지어 종교적 경험 등도 이러한 전기신호에 따른 수동적 결과물이며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말로 인간의 존재 자체가 그러한가? 기능적 측면에서 뇌를 신경 의학적으로 분석하여 이 모든 과정이 정보처리 과정에 불과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존재에 대한 설명이 모두 끝나는 것일까? 기능적 측면 이전에, 내가 나라고 하는 것을 느끼는 가장 주관적 관념들이 과연 어디에서 오는지 원인적 측면에서는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원인 자체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스스로의 존재를 아는 자의식조차 뇌가 명령을 내리는 현상이라고 주장하면 그만일 것이다. 뇌는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생존에 가장 이로운 결정을 하도록 시행착오를 줄이는 쪽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기능과 작동이라는 방어기재 등의 소프트웨어가 뇌라는 하드웨어에 왜 설치되었을까? 그래서 우리는 그 답변을 들을 가능성이 있는 심리학으로 넘어가 본다.

2. 심리학의 의지환상론

        심리학자 다니엘 웨그너(Daniel M. Wegner)는 그의 책 『의식적 의지라는 환상』(The Illusion of Conscious Will)의 책 제목처럼 의지를 환상이라고 하며 그 효능을 공격한다. 즉, ‘의식적 의지(자유 의지)가 있다 혹은 없다.’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데 그것의 효험이 있다 없다.’에서 이들은 ‘효험이 없다.’고 주장하는 논의이다. 웨그너는 그의 책에서, 의식적 의지는 아무 인과력(因果力, causal efficacy)이 없는 ‘느낌’일 뿐이며 단지 사후해석일 뿐이라고 보고한다. 그는 사고 등으로 뇌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환상(혹은 섬망)을 보는 상태나 최면에 걸린 사람 등이 최면에 깨고 행동을 한 후에 그 행동을 한 이유에 대해서 핑계를 만드는 것(가령, 최면에서 책상 위에 있는 책을 책장에 집어넣으라고 하면, 최면이 깨고 나서 책을 집어넣으며, 왜 그랬느냐는 질문에 자신은 책이 책상에 있는 것을 싫어한다고 둘러대며 대답하는 것)을 보면 의식적 의지라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피터 클라크가 올바르게 주장하는 것처럼, 의식적 의지의 효능이 없다고 주장하는 리벳과 웨그너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의식적 의지의 효능을 가정한다.

리벳-웨그너 가설의 특징 중 궁색한 부분은 그것이 이상한 반(semi)부수현상론을 함의한다는 점이다. 부수현상론이란 우리의 정신 현상들(의식적 사고, 감정 등)이 뇌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사건에 기인하지만 뇌에는(혹은 무엇에든)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관점이다. 리벳-웨그너 가설은 어떤 점에서 부수현상론적이지만 그들의 방법론은 부수현상론이 거짓이라는 가정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논증은 그 시점 결정이나(리벳) 동기적 기초에서(웨그너) 의식적 의지의 사후 보고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그런 보고는 행위를(말하거나 쓰거나 가리키는 근육운동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비록 그들은 연구 대상이었던 단순한 운동이나(리벳) 복잡한 행위에서(웨그너) 의식적 의지가 효능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전반적 접근은 의식적 의지가 보고와 관련된 운동들과 관련해 효능이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 이러한 리벳-웨그너 가설의 기이한 특징은 자체 모순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분명 궁색해 보인다.

3. 심리철학의 물리주의

        심리철학자들에게 있어서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보다 중요한 것이 현상적 인식(phenomenal consciousness)이다. 빨간 사과를 보았을 때 경험하는 시각적 경험 혹은 사과 칼에 베였을 때의 통증을 전달하는 전기신호나 신경기관 그리고 그 기관(섬유 혹은 뉴런)의 활성화는 실험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그 전기신호가 현상적 의식이라는 경험으로 어떻게 바뀌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즉, 현상적 의식과 신경적 프로세스 사이에 틈(gap)이 있는데, 감각과 느낌이 왜, 어떻게 그 물리적 신경 작용에 의해 생기게 되는지 그 ‘내용’은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철학자 조셉 레빈(Joseph Levine)은 이것을 ‘설명 상의 틈’(the explanatory gap)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입장을 비환원주의적 물리주의라고 한다.
        환원적 물리주의(reductive physicalism)를 주장하는 심리철학자 김재권은 ‘짝지음 문제’(pairing problem)를 들어 데카르트의 실체이원론을 비판한다. 즉, 마음M1이 행동P1을, M2가 P2를 유발했다고 해도,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영혼은 공간을 점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M1, M2가 화살을 쏜 사람이고 P1, P2가 화살을 맞은 사람이라고 (데카르트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M1, M2는 P1, P2와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재권은 ‘데카르트의 실체이원론은 마음이 행동을 유발한 원인의 실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고 본다. 김재권의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김남호는 실체이원론이 아닌 두양상일원론적인 상태이원론을 주장한다. 즉, 마음의 실체와 몸의 실체가 아닌, 마음의 상태와 몸의 상태라고 말이다.

        데카르트의 실체이원론은 두 실체 사이의 상호작용 문제를 설명해주지 못하고, 또 20세기에 발전한 신경과학적 지식에 부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에게 지지받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철학자들은 심신 문제를 정신적 실체와 물리적 실체 사이의 관계가 아닌 정신적 상태와 물리적 상태 사이의 관계 혹은 의식과 두뇌의 관계로 이해하려고 한다.

        ‘뉴욕 맨하탄 스타벅스에서 주문해 마신 커피의 향과 맛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을 생리화학적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면 환원적 물리주의자이며, ‘아니다’라고 답하면 비환원적 물리주의자이다. 하지만, 이 둘 모두 마음(의식, 의지 혹은 영혼)이라는 실체를 부정하고 그것을 상태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부수현상론과 의지환상론을 지지하는 이론들이다.

V. 마무리: 기술중심주의(technocentrism)와 생명중심주의(biocentrism) 사이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의식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기술적 특이점주의(technological singularitarianism)에서 주장하는 ‘인간이 되는 기계’(ex machina)나 ‘기계가 되는 인간’(est machina)의 실현 여부에 결정적인 킹핀(king pin)의 역할을 함을 보았다. 아울러, 신경과학에서의 리벳 실험은 의식을 부수현상(epiphenomenon)이라고 부르며, 인지심리학에서 다니엘 웨그너(Daniel M. Wegner)는 의지를 환상(illusion of free will)이라고 하고, 심리철학에서 환원적 물리주의자인 김재권은 데카르트를 비판하며 심신동일론(mind-body monism)을 주장함을 보았다. 이러한 주장들은 앨런 튜링(Alan Turing)이나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처럼 ‘의식은 실체가 아니라 뇌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적 반응이며 기계의 정보처리와 동일한 기능을 하기에 기계도 동일한 기능을 한다면 의식을 가질 수 있다.’라고 보는 넓은 의미의 기능주의에 속하거나 기능주의에 이론적 기초가 된다.
        의학 및 현대 과학기술로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트랜스휴먼주의에, 외과 의사이자 의학철학자인 제프리 비숍(Jeffrey Bishop)은 의학계와 과학계에 큰 경종을 울리는 경고를 한다. 그의 기념비적인 의학철학서 Anticipatory Corpse: The Medicine, Power, and the Care of the Dying(주검을 고대하는 의학, 권력, 그리고 임종 케어)에서 비숍은 의사 후보생들이 처음으로 수술실에서 맞는 대상은 주검이며, 평생을 수술대에서 생명과 죽음 가운데에서 씨름하다가 결국에는 곧 죽게 될 ‘산 송장’(anticipatory corpse)들을 상대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비숍은 생명으로 그 관심을 전향할 것을 제언하며 그의 책 마지막 장 제목을 ‘생명을 기대하며’(anticipating life)라고 했다. 비숍은 ‘주검이 의학에서 궁극적 규범 역할을 하는데, 이는 생명을 바라보고 다루는 올바른 지향(orientation)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한다. 마치 정역학과 동역학의 차이에서처럼, 동적인 인간을 정적인 물체로 보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많은 현상을 단순히 물질들의 원인과 결과의 작용으로만 의학과 과학은 대한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생물중심주의(biocentrism)는 이처럼 기술중심주의(technocentrism) 혹은 기술만능주의에 반대하며 ‘의식은 물질에 종속되지 않는 실체’라고 주장하는 사조이다. 학자들마다 신경양자학(NeuroQuantology), 양자인류학(Quantum Anthropology), 양자의식(quantum consciousness) 등으로 서로 조금씩 다르게 부르기는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양자역학 이론을 생물철학에 접목하여 ‘의식의 본질은 실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에는 대표적으로 의사이자 생명공학자인 로버트 란자(Robert Lanza)가 있다. 그는 양자역학을 그 핵심적 이론 근거로 제시한다. 원자(혹은 광자)는 입자와 파동 형태 모두로 존재 가능하지만 두 형태를 동시에 취할 수는 없는데, 이는 관찰자의 의식에 의존적이라는 것이다. 즉, 관찰될 때는 입자로, 그렇지 않을 때는 파동의 형태를 취한다는 것이다. 란자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시간과 공간 그리고 죽음까지도 모두 의식이 만들어낸 허상이며 더 나아가 동물이나 곤충에게까지 의식이 있고 이러한 의식은 영혼이라고도 불린다고 주장한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이 주로 신비주의나 뉴에이지에서 양자역학을 근거로 의식과 영혼의 영원성을 주장하는 데에 오용된다며 비판한다. 이는 양자의식이나 생물중심주의에서 입자의 관찰의존적 특성을 지나치게 확장하고 일반화하여 우주론을 전개하는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공지능에게 있어서 의식적 의지의 자율성 문제’와 더불어 ‘양자역학과 의식 문제’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이들이 남용되지도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규범적 기능과 설명적 기능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성경해석학, 교의학, 실천신학 등이 포함된) ‘신학’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물리철학, 화학철학, 생물철학, 의학철학 등이 포함된) ‘과학철학’, 그리고 우측에는 (심리철학, 뇌신경과학, 언어학, 인지심리학, 로봇공학, 컴퓨터공학 등이 포함된) ‘인지과학’과의 간학제적인 통합연구가 현재로서는 가장 유의미한 연구방법론이 될 것으로 보인다. 4차산업혁명을 더 촉진하는 코로나 펜데믹의 시대에 교회론을 어떻게 재조명해야 할지에 대하여는 후속 연구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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