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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세계복음주의운동 발전 관점에서 한복협에 바란다 - 박종화 목사
한복협  2024-11-12 13:46:05, 조회 : 1,493, 추천 : 325

                          세계복음주의운동 발전 관점에서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 바란다
                                             - 목회적 측면에서 -

                                                            


                                                                    박종화 목사 (한복협 자문위원, 경동교회 원로)





“한국의 복음주의 신앙인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기도하며시대적 사명을 감당한다. 한국교회가 건전한 복음주의적인교회로 성장, 발전하도록 힘쓴다. 세계복음주의협의회 및기타 복음주의 단체와 유대관계를 갖고 상호 협력한다, 아세아 복음화를 위하여 전력한다.“(설립목적)


1. <복음주의>의 깃발: 세계에서 한국으로

-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공인 종교(313)로, 국교(380)로 격상되고, 이어서 종교개혁(1517)으로 마감하기까지 소위 장기간의 <중세시대>를 지배했다. 그 어간에 동서-로마 제국의 갈등의 여파로 서로마의 천주교와 동로마의 정교회로 대분열(1054)을 겪었다. 종교개혁의 불길이 시작되고 종교전쟁으로 마감하기까지 혼란과 변혁의 역사를 겪었다. 30년 전쟁 후에 맺어진 <Westphalia 평화조약:1648>으로 신구교는 급기야 천주교와 개신교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 이때에 천주교는 “katholisch/catholic”으로, 개신교는 “evangelisch/evangelical”로 자칭하기 시작했다. 종교개혁에 앞장선 루터파와 깔벵파 측은 protestant보다는 참 복음에 입각한 교회라는 자부심으로 evangelisch/evangelical을 선호했고, 그 전통이 지금도 금과옥조처럼 지켜져 오고 있다. 그래서 독일을 비롯한 독어권 서구에서는 evangelical theology를 “개신교” 신학으로, evangelical church를 “개신”교회로 이해하고 쓰고 있음을 알려둔다. 그래서 독일 기독교나 독어권 교회에서는 우리가 현재 영어식으로 말하는 <복음주의> (evangelical/evangelicalism)를 별도로 “Evalgelikal”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표현하고 있다. 필자도 투박하고 투쟁 일변도적인 프로테스탄트 보다는 “에방겔리쉬/에반젤리칼” 표현이 종교개혁 기본원리와 정신에 훨씬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 한편 1981년 창립되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우리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연대하고 있는 아시아 및 <세계복음주의협의회>(World Evangelical Alliance/WEA 1846/
World Evangelical Fellowship/WEF 1951/ 다시 World Evangelical Alliance/WEA 2002)는 출발부터 “evangelical”과 “ecumenical”과 대립하면서 동시에 협력하는 상보적 관계로 진척되어 오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 점은 오늘날 한국의 교회가 걸어온 그동안의 교파분열과 갈등의 뚜렷하고 뼈아픈 현실을 마주하면서 이를 극복할 방안을 모색하고, 동시에 이 땅의 복음화와 구원선교를 위해서 반드시 협력하고 헌신해야할 사명을 받고 있기에 더더욱 그러하다고 믿는다.

- 19세기 말에 등장한 복음주의 운동을 대표하는 WEA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표인 WCC와 우선 구성체의 성격부터가 다르다. 둘 다 상당한 회원들을 지니고 있지만, 전자는 “개인 지도자들”의 자율적인 연합체이지만 후자는 “회원 교단들”의 집합체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개인별 대표성과 교단중심의 대표성이 상호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다면, 선교와 봉사라는 교회의 사명을 사안에 따라 지혜롭고 유연하고 다양하고 또 효율적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다고 믿는다. 예컨대 한국교회의 교파단위별 분열과 갈등이 극심하여 교회의 연합과 일치에 커다란 장애물인 반면, 교파/교단 소속을 초월하여 같거나 비슷한 신앙노선에 따라 개별 지도자들의 결속을 통하여 선교와 봉사의 대의를 수행할 수 있는 장점도 크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바로 복음주의의 온상인 KEF가 아주 좋은 본보기 이다. 한국의 상황에서 보면 WCC에는 회원이 아니지만 국내 에큐메니칼 운동체인 KNCC에 오순절 계통의 순복음교회, 루터교회, 구세군 등의 회원활동이 아름다운 결실을 내고 있는 점도 좋은 본보기일 것이다.


2. 그리스도 중심의 “개방적 연대”의 공동체를 만들자

- 세계 복음주의협의회가 개신교 안에서 뿐만 아니라 Roman Catholic(RC)과의 협력의 틀을 만들어 다종교 시대에 기독교가 선제적 대응으로 복음전도의 길을 열어놓은 경우가 있다. WEA/WCC/RC가 5년 동안 상호 협력하여 연구와 합의 끝에 <다원종교화 사회에서의 그리스도 증언>(2011)이라는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공동의 실현에 나선 점이다. 그 후에 정교회와 오순절 교회도 세부적인 분야별로 동참하고 있다. 그리스도 증언과 선교를 위해서는 다른 종교와 문화를 지닌 사람들과 “대화”는 물론 가능한 “협력”을 통한 복음전도 활동 말이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정의”, “평화”, “환경”을 위한 “공동의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 선교의 장을 개방적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 필자의 경험과 확신으로 말하자면, 대화는 실제로 별로 소득이 없는 종교적 교리나 이론 교환을 통한 “종교 간의 대화”가 아니라, 실제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지역사회에서 예를 들어 평화와 환경 문제를 중심으로 “종교인들 상호간의 교류와 협력”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선한 일을 통한 상호 경쟁 속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한국과 같은 다종교 사회에서 실천적 선교와 복음화에 함께 나서자는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종교 간의 피비린내 나는 갈등과 전쟁의 상황을 보면서, 한국의 다종교 사회의 경우 평화와 화해의 무드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심화하면서 강압적 개종주의가 아닌 교류협력 속에서의 선의의 질적 경쟁과 사랑의 실천이 타당하고 바람직한 복음전도와 선교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 WEA/WCC/RC가 제안한 이러한 다원종교 시대의 그리스도 증언의 실례를 한국의 지역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 성북동 지역의 경우 오래전부터 지역의 천주교회와 불교 길상사와 덕수교회(예장통합)가 초파일과 성탄절을 계기로 합동 바자회를 열고 불우이웃 돕기에 함께 나서는 교류협력이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이고, 도봉구 수유동 지역에서 천주교회와 불교 화계사와 송암교회(기장)가 해마다 지역사회의 불우노인 돕기 공동 바자회를 공동으로 개최하며 상생과 평화의 봉사를 하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세계구원의 한 현장으로. 그리고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면서 말이다. 아직은 이 전도와 봉사의 결실을 말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실례를 보며 역으로 오늘날 특히 코로나 이후 증가일로에 있는  “반”/“비” 종교적 사회의 분위기가 주는 아픔은 피할 수 없다. “교회가 사회를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교회의 존재를 걱정”한다는 서글픈 비아냥 속에서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 살기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현실 아닌가?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그리스도의 몸으로 모범적으로 살아야 하는 교회, 그 교회에서의 목회, 그런 교회들의 집합체인 한국의 기독교는 지금 어디에 있나?

- 또 하나 WEA/Lausanne/WCC가 시차를 두고 서로 간에 부족한 허물을 고백하면서 상호 협력하여 복음화와 선교에서의 “선”을 이루자는 호소가 우리에게 들려온다. 지금까지의 선교와 일치를 위한 연합 사업에서 충돌과 갈등을 빚어왔던 문제는 evangelical 운동이 “개인구원”을 내세운 반면, ecumenical 진영은 “사회구원”을 내세우며 대립해 온 점이다. 크게 보아 WEA에 속하면서 그 안에서 소위 “새로운 에반젤리칼 운동”(Neo-Evangelicalism)을 주도하는 로잔 그룹이 15개 항에 달하는 Lausanne Covenant(1974)를 발표하면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 인적 차별이 없이 모두 천부적인 존엄성을 부여받았기에 존경과 섬김을 받아야 하고 착취 받아서는 안 된다. 이 사실을 우리는 등한시 해왔고 대로는 전도와 사회참여를 서로 상반된 것으로 여겼던 것을 뉘우친다”고 선언했다. 그 다음해에 열린 WCC 5차 총회에서는 이에 대한 답으로 “우리는 사회참여를 강조한 나머지 개인 영혼 구원을 경시해 왔음을 뉘우친다”고 공적으로 고백했다. WEA/Lausanne/WCC는 한 목소리로 “세계의 복음화는 ‘전적인’교회가 ‘전적인’ 복음을 ‘전’ 세계에 선포하는 일”임을 명실 공히 선포함으로서 신학적 확언과 신앙고백 상의 일치를 보았다.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은 전적인 구원의 양면이고, 분리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이다. 익히 알면서도 공동으로 고백하고 실천하는 일에 이렇게도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 evangelical/ecumenical 갈등과 대립은 통전성(‘wholeness’) 속에 용해시키자. 둘이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적용상의 우선순위가 적용될 지라도 차별이나 분리는 불가능하다. 한국교회 상황에서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논쟁이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틀 내지는 정치적 진영논리로까지 확대 심화 되면서 신학적 분열을 넘어서 정치적 이념적 갈등을 만들어 내고, 교회 스스로도 이에 ‘부당하게’ 노예화된 비극적 희생타가 되고 말았다고 생각한다. 진영논리에 매몰된 상황에서 신학토론이나 교리논쟁에서 다양성이 아닌 획일주의가 득세하며, 다름이 인정되지 않기에 다름은 틀림으로 퇴락하며, 틀림은 곧 바로 상대방의 악마화로 치닫는다. 다양한 악기가 지휘자의 지휘아래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심포니가 아니라 지휘자 없는 무질서한 시끄러운 카코포니로 전락하고 만다. 이제는 신학 함에 있어서도, 목회현장에서도, 복음화와 선교의 현장에서도, 공멸이 아니라 상생의 복음이 살아 움직이기를 기대해 본다.

- KEF에 주어진 축복의 “선물”과 동시에 선택받은 “사명”이 있다. 필자는 이것을 하나님의 양면의 은혜 곧 Gift & Calling이라 부르고 싶다. 한국의 교회와 기독교 세계를 향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여호수아 1:7)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 좌편향 우편향에 빠지지 말고, 가운데 서라고 하신다. 가운데는 차지도 덥지도 않는 중간이 아니다. 기회주의적인 중도도 아니다. 두 가지의 결단이다. 하나는 좌도 우도 뒤도 아니고 “앞으로” 가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항상 약속의 땅을 향하여 앞서가신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인도하신다. 또 하나는 가운데는 중립이 아니라 “중심”이다. 이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계신다. 중심은 한 평면의 중심만이 아니다. 입체면의 중심이기에 움직이고 도는 모든 평면의 중심이시다. 면이 바뀌어도 중심은 항상 하나이다. 그리스도 중심의 선교, 그리스도 중심의 봉사,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 그리스도 중심의 세계이다. 한국교회는,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중심으로 일하고 뛰고 바꾸고 도전하고 만들고 새롭게 창조해가야 한다. 그럴 능력을 받았고 그럴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것이 KEF의 믿음이고, 소망이고, 삶이다.


3.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선진 교회의 앞장에 서라

- 한국은 명실 공히 세계가 공인한 선진국이다. 선진국의 백성도 선진 백성이어야 한다. 선진국의 교회도 선진 교회이어야 한다. 선진국 그리스도인들도 선진 신앙인이어야 한다. 그것은 곧 은혜의 선물이고, 은혜로 주심 사명이다.

- 선진 한국의 요소로 세계인들은 다음의 두 가지의 멋진 결합을 이야기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빨리 빨리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알찬 선진국 모델이라고 부른다. 사실 경제성장이 없는 민주화는 배고픈 허상이다. 민주화 없는 경제성장은 노예의 질곡이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행복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

교회의 양적 성장과 신앙생활의 내실화는 한 동전의 양면이어야 한다. 물질적 축복과 영적 성결은 함께 가야 한다. 이 둘이 균열을 일으키거나 깨지면 구원이 망가진다. 중세기의 거대한 교회 건물 속에 가보니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아서 종교개혁의 불길이 타올랐다고 교회역사가들이 적고 있다. 가나안 성도가 늘어나고 교회를 염려하는 세상 사람들이 불어나는 현실에서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중심”을 속히 회복해야 한다. 이 일에 KEF가 나서고 소리를 발하자.

- 외환위기 시절인 1997년 당시 외채가 304억불이었는데, 금모으기 운동은 누계 351만 명이 참여하여 18억 불 어치에 해당하는 227톤의 금을 모아 빚 탕감에 쓰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2007년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로 엄청난 재앙이 왔고, 동원된 자발적 시민들 123만 명이 봉사한 결과 10년 만에 오염된 앞바다가 오염에서 벗어난 쾌거로 세계 역사상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세계는 한국의 이런 모습에서 위기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자발적 시민의식을 예외적 선진사회의 모습으로 평가하곤 한다. 금모으기 운동과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 대응은 우리들 국민/시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단적으로 표출하는 상징이다. 이런 운동을 통하여 이제 한국교회는 선진 경험을 세계 선교와 세계봉사의 영역에까지 확대 심화하여 고난과 절망 속의 세계시민을 위한 내실 있는 선교봉사와 함께, 한국 땅에 온 초기 선교사들이 행했던 “자전, 자립, 자조” 정신의 선교봉사에 한국식 공동체적 결속과 사랑의 열정을 담아 세계구원의 새로운 복음화와 선교 전략형성에 나서야 하리라고 본다. 그와 함께 세계선교와 봉사를 위한 연대 기구를 초교파적-연합적으로 구성하고, “선택과 집중”의 효율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이 일에도 복음주의협의회가 앞장서 주기를 기대한다.


4. 나가면서

- KEF가 “그리스도 중심의 복음”의 진정한 개방성과 포용성을 선교와 봉사 사역을 통해 들어내 주면 좋겠다. 기독교 가정이 아니고 다원종교의 전통과 문화가 지배하는 가정에 몸담고 사는 사람들, 다원 인종과 종교문화의 직장에 몸담고 사는 사람들, 흔히 말하는 무종교 내지 무신론의 삶의 환경을 사는 사람들, 우리들 교회가 다가가야 할 수 많은 “미래의 신자들”, 이 모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희로애락을 나누며 “삶”으로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너희끼리의 리그”가 아닌 “우리 함께”의 개방적 포용성 속에서의 진지한 복음전도와 선교전략을 마련해야 교회가 산다.

- 그리스도 중심의 새로운 포용성과 개방성은 서로 간에 무엇이 다른가를 찾기보다는 어떤 점에서 같은지를 먼저 찾으며, 무엇이 틀렸는지 찾기보다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찾는 일에 우선시 한다. 이 일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우선순위를 어디에서 찾고 결단하느냐의 문제이다. 성경말씀(마태 6:33-34)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내일 일은 ‘내일’(=부활의 영광)이 결정할 것이다”, “오늘의 고난은 ‘오늘’(=십자가 고난)에 지는 결단”이 중요하다고 본다. 교회연합과 신자들의 일치는 바로 ‘먼저’와 ‘함께’를 찾고 이에 헌신하는 데에서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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