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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중국과 중국교회 - 오정현 목사(말씀)
한복협  2022-04-13 10:23:28, 조회 : 98, 추천 : 19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중국과 중국교회




                                                                                              오정현 목사
                                                                                         (사랑의교회 담임)




저는 1990년도부터 30여년 간 여러 번 중국을 방문하면서 120개 성(省), 40여 개의 도시에서 100여 차례 교류를 가졌습니다. 이렇게 중국의 성(省)을 돌면서 교회를 방문하였고, 중국 종교국 기독교양회 지도자들도 만나 공식적인 사귐과 소통을 이어왔습니다. 2003년부터 4번에 거친 중국에서의 한중기독교교류 준비 모임을 가졌고, 2008년 3월에는 북경회합을 통해 ‘한중 교류의 본격적인 물꼬’가 열리면서 같은 해 10월에는 중국교회 지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국지도자들을 위한 북경양회본부와 북경대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2011년 6월에 정식으로 한중국제교류재단 출범식을 하면서 문화, 예술, 의료 등 여러 방면으로 중국과 교류를 했습니다.
중국과의 교류를 처음 시작할 때는 이런 저런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겸청즉명(兼聽則明)’이라는 말처럼 마음의 귀를 활짝 열고 듣고자 하였더니 그들의 형편과 필요가 점점 명확해졌고, 더불어 지혜롭고 지속 가능한 사역방안들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중국에 대해 나름 3가지를 정리할 수 있었는데, 첫째, ‘중국은 사람이다’, 둘째, ‘중국은 땅이다’, 셋째, ‘중국은 역사다’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은 한족을 비롯해 56개의 다양한 민족들이 복합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남으로는 해남도로부터 북으로 흑룡강성까지, 동으로 산동에서부터 서쪽 우루무치까지 동서남북 다양한 지후와 풍습, 문화를 볼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나라입니다. 저는 중국의 역사에 큰 관심이 있는데, 역사의 길이도 대단하게 느끼지만 무엇보다 그 두께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은 지난 개혁개방 30여 년을 통해 ‘빠르고 좋은(又快又好)’ 경제를 추구해왔습니다. 갈등과 분열 없는 조화로운 국가 발전을 위해 2004년 중국공산당 제16기 4중전회에서 ‘화해사회론(和諧社會論)’이 최초로 언급되었고, 2006년 6중전회에서 공산당의 지도이념으로 확정되면서 이는 다시 ‘좋고도 빠른(又好又快)’ 경제 시스템 구축으로 전면 수정되었습니다.
중국이 내세우고 있는 화해사회는 공평, 효율, 정의, 법치의 4가지 이론적 토대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중국이 진정으로 조화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평, 효율, 정의, 법치에 기독교적 정신이 더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기독교야 말로 중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세계관과 정신을 제공한다고 믿습니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서 중국의 사상과 체계가 정리되고 또한 세계화에 대한 보편적 가치가 추가될 때 오늘날의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을리라 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데 이 복음은 개념이 아니고 삶 속에서의 실천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여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독교 복음의 실천만이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견인하며 사람들을 가난과 소외, 탐욕과 이기주의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입니다.
중국기독교양회와 종교사무국 지도자들과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대화의 주제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건강한 역할을 해서 한국 사회 발전을 하게 된 핵심이 무엇인가? 그것을 중국 교회와 어떤 식으로 공유할 것인가?”와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적 특성이나 중국적 특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보다는 “기독교 전체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디에 가장 핵심을 두었는가 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신 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당신의 인격과 삶을 닮아가는 존재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유언으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28:19)” 당부할 만큼 ‘제자 삼기’는 예수님의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광신도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처럼 되고, 예수님처럼 살며 이 땅에서 작은 예수로서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022년도부터 기독교에 대한 정부의 압박은 더욱 강화될 예정이고, 중국교회와 목회자들은 어떻게 지금의 난관을 극복해야 할지 기도와 심각한 고민 중에 있습니다. 삼자교회나 가정교회 모두가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요즘은 삼자교회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가정교회에 대한 핍박 못지 않다고 합니다. 정부의 압박을 어떻게 지혜롭고 용기 있게 돌파할지가 현재 중국교회와 목회자들 앞에 놓여진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기둔화가 지속되고, 실업률이 계속 증가되는 경제환경과 중국정부의 사상교육과 인터넷서비스통제를 통한 압박 속에서 중국교회는 어떻게 하면 회복을 넘어 부흥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갈 수 있을까? 삼자교회나 가정교회를 막론하고 중국교회는 그 어느때보다도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중국과 중국교회의 이런 어려운 상황을 보며, 사도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선포한 말씀을 통해 중국교회와 한국교회가 공통적으로 기억하고 붙들어야 할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 3:1~4)

첫째로, 교회는 “땅의 것”으로 통제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1, 2절)
그리고 이 땅의 통제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1절, 2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성도들은 “위의 것을 찾는 자” 들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통제하려는 그 어떤 시도로도 흔들 수 없고 흔들려서도 안됩니다. 교회를 통제하려는 모습은 사실 오늘날 중국정부만 취하고 있는 태도가 아닙니다. 전세계적으로 각국 정부가 코로나 시대에 교회를 통제하려는 시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이와 같은 위기의식은 교회의 행보가 정부의 정책에 위협이 된다고 인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 땅의 관점에서 다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공동체입니다. 저는 이 땅의 권세는 역사의 하현에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한 차원 높은 역사의 상현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저는 바로 여기에 기독교 정신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원칙적으로 우주적 교회입니다. 이를테면 이름 없는 조그만 시골에 있어도 신앙을 갖게 된다면 할머니들도 온 세계를 품고 위하여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신앙인이셨던 저희 조부께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던 것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적어도 교회는 자신의 세를 늘려 이 땅의 세력을 꺾는 것 혹은 누르는 것이 궁극적인 존재 목적이 아니라, 현재의 정부와 싸우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생명전파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교회를 탄압하는 헤롯의 정권이나 로마의 정권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한번도 그들과 싸우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함께 그 모습을 실천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셨습니다. 그것이 중국교회와 한국교회가 함께 나아가야 하는 방향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이 올바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위의 것”을 찾아야 하는데, 우리가 찾아야 하는 “위의 것”에는 우리의 생명도 주님 계신 위에서 결정된다는 인식, 이 땅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인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 땅에서 어떤 통제와 핍박을 받을지라도, 심지어 죽음을 당할지라도, 3절의 말씀처럼 “성도의 생명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에, 통제나 핍박에 조금도 낙심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오직 담대함으로 우리에게 주신 사명에 집중하여 전력투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이미 위에 속해 있기 때문에 담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력투구해야 할 위에서 주신 사명이란 무엇입니까?

둘째로, 우리의 담대함을 말씀 전파와 생명 사역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4절)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는 말은 우리의 영광이 지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비로소 온전히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담대함을 갖추고 추구해야 할 것은 이 땅의 정부와 전면전을 벌이는 것에 우리의 모든 에너지 쏟는 것이 아니라 (특히 중국의 현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찾으실 새로운 생명을 하나라도 더 얻고자 노력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담대하게 쏟아야 합니다.
지금 중국은 국방과, 외교, 과학 등 분야에서 미국에 버금 가는 강대국으로 발돋움하였습니다. 거대한 제국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숫자와 크기 때문에 받는 평가입니다. 급속한 경제발전의 이면에 노동자, 농민, 여성, 노약자 등 사회적 소외계층 간의 갈등과 성적 타락, 이혼, 폐륜, 마약, 인신매매 등 윤리 도덕적 가치의 상실로 야기되는 사회문제로 인해 중국은 지금 깊은 고민과 혼란 가운데 있습니다. 급속한 경제발전 속에 물질이 우상이 되어서 배금주의로 흘러가고, 정신적 가치를 잃고 피폐한 영혼들은 거리를 헤매며 죄악 가운데 방치되어 있음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 땅의 제국에 대해 이 땅의 기준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그 논리에 먹혀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큰 관점, 제국주의가 아닌, 제국과 같은 거대한 나라라는 의미에서 ‘영적인 제국 마인드’로 접근하면 교회가 영적인 비대칭 전략을 통해 세상의 제국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직 복음의 능력만이 중국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이자 미래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와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에게 미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물었더니 그는 “미국의 미래가 비영리단체(Non-Profit Organization)에 달려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어 한국과 중국의 장래에 대해서도 질문했더니 그는 “한국과 중국의 장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어떻게 통제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답했습니다. 서구에서는 자본주의의 가치나 청부사상 등이 수 백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반면, 한/중/일은 수 십 년 사이에 압축 성장을 하였고 그에 따른 폐해가 드러났는데,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부패’문제를 언급했습니다. 이어 “대형 교회들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사회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21세기에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비영리단체가 사회와 국가의 중요한 균형추의 역할을 할 것임을 강조하면서 그 중 교회의 역할도 아울러 지적한 것입니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은 중국의 인구도 일본의 경제력도 없지만 기도자본이 있어 강소국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중국교회를 위해 무언가 기여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 한국교회를 부흥, 성장시키고 사회를 발전으로 이끌었던 순수한 신앙의 유산들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힘,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제국마인드는 눈앞의 숫자나 핍박과 같은 현실에 압도되지 않고 그 이상을 영적으로 바라보는 데서 나옵니다.
사랑의교회는 지난 2년 코로나 시기 두려움에 웅크려 있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강병들을 키우기 위한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를 출범했습니다. 올해 2년차를 맞아 입학생도도 더 늘고, 학과도 예배, 제자훈련, 일터선교 3개 학과에서 복음통일아카데미까지 추가되었습니다. 이 땅의 형편과 싸움에만 골몰해 있어서는 얻을 수 없는 결과입니다. 이 땅의 통제와 압박이 우리의 신앙의 본질을 흔들 수 없다는 담대한 태도로, 그리스도께 한 생명이라도 더 나아가게 하기 위한 일에 담대하게 전력투구를 해야 합니다.

셋째로, 보이는 위협보다 보이지 않는 위협을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중국교회가 지금 탄압받고 있다고 하지만 과거엔 더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기간에 중국교회는 더 부흥했습니다. 탄압이 강화되는 분위기는 기독교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감시와 위협을 강화합니다. 과거 문화대혁명 시기 중국도 그랬습니다. 기독교인만 핍박한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들끼리도 감시하고 탄압하여 심지어 자식이 부모를 반동분자로 내몰던 그 혹독한 시기에 오직 교회는 사람을 따스한 사랑으로 품고 치유했기에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성도들이 더 늘었습니다.
가시적인 통제와 핍박보다 성도의 신앙을 위협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오히려 통제가 없고 평화롭다고 여겨질 때 교회는 약화되었습니다. 제가 지난 수십년 간 실제로 중국교회에 가서 보니, 그 안에도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순수함을 가진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현재 중국교회는 삼자교회, 가정교회 모두 계속해서 그 수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회자는 턱없이 부족하고 이로 인해 건강한 말씀에 기초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이 병행되지 못하다 보니 성도들이 각종 이단과 배금주의, 유물론 등 얕은 신앙의 뿌리를 흔드는 유혹에 속절없이 넘어지는 것을 보고 듣고 있습니다. 좀 더 건강한 교회가 되어 보겠다며 몸부림치면서 ‘와서 도와 달라’는 요청도 여기저기서 들어야 했습니다.
어쩌면 중국정부보다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가 계속하여 중국을 휩쓸고 있는 것이 더 큰 위협일 수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에 허탈함을 느낀 중국인들이 기독교로도 많이 왔지만 다른 모든 종교, 심지어 이단까지도 급증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러 종교 중 하나, 단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공허함을 채워주는 역할로 원오브뎀이 될 뻔했던 상황에서, 오히려 지금과 같이 종교 전반에 대한 압박이 있는 상황이야 말로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정금인지 제련해 낼 수 있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을 겪어낸 한국 교회가 오직 기도로, 기도만으로 그 위기를 돌파했던 그 저력을 중국교회에 전할 때 중국교회의 마음과 필요를 진정으로 헤아릴 수 있는 ‘진정한 동지’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대국굴기(大国崛起), 일대일로(一帶一路)가 이슈가 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상황은 어려워졌지만 진정한 대국굴기는 하나님의 나라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복음의 대국, 복음의 일대일로가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가 중국교회에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로마제국 초기 기독교 성도들이 전염병이 걸려 버려진 사람들을 찾아가 사랑을 실천하여 ‘위험을 무릅쓰는 자들’이라는 ‘파라볼라노이’의 칭호를 획득한 것처럼, 한국교회와 중국교회가 하늘에 소망을 둔 교회로서 영육이 피폐해져 가는 사람들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담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영적인 맹장, 영적인 강군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이제 한중 교류는 시대적 사명이 되었습니다. 급변하는 중국과 시시각각 변모하는 국정정세 속에서 우리는 중국을 넘어 세계를 아우르는 문화공동체, 평화공동체로 나아가길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서구의 기독교가 쇠태 해가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이 영적 벨트를 형성해 복음의 빚을 진 유럽에 다시금 복음의 물결을 일으키기를 소원합니다. 한중의 교회가 함께 기도하며 겸허히 섬길 때에 복음적 평화 통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경제, 문화, 교육, 복지, 여성 등 전방위적인 중국사역을 펼쳐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토대가 되어 동북아 영적 공동체 형성과 함께 유럽 복음화, 그리고 땅끝이 주께 돌아오게 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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