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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중국과 중국교회 - 함태경 본부장 (2)
한복협  2022-04-13 10:51:36, 조회 : 111, 추천 : 15

※ 내용이 길어 두 편으로 나누었습니다. 전 편은 앞글에 있습니다.


  중국정부의 관점에서 종교 활동이란 무엇일까. 허난(河南)성 뤄양(洛阳)시 뤄룽(洛龙)구 민족종교사무국의 2021년 1월 17일 통지문에 따르면 중국에서 합법적인 종교 활동과 불법적인 종교 활동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합법적인 종교 활동은 법적으로 등록된 종교 활동장소 내 혹은 종교국의 비준을 받은 장소에서 진행해야 한다. 종교사무국에 등록된 성직자와 규정된 조건에 부합한 자가 주최해야 한다. 헌법 법률 법규와 정책 규정에 위배된 모든 종교 활동은 불법 종교 활동에 속한다. 불법 종교 활동 형식은 다양한데, 예를 들어 비준을 받지 않은 종교 활동장소 외에서 진행되는 종교 활동, 무허가 사찰, 함부로 지어진 종교상(像), 사적으로 조직된 성지 방문, 해외 종교 성직자에 대한 임의접촉, 개인이 조직한 모임, 거짓 종교 성직자, 청부(도급)를 받아 사찰을 운영하는 행위, 사찰을 사유화하는 행위, 인터넷 전도활동, 비즈니스 여행 등의 명의로 여행객을 모집해 해외에서의 종교 활동에 참가하는 것 등이다. 불법 종교 활동은 정상적인 종교 질서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사회의 공공이익에 위협을 초래한다고 정부는 간주한다. 주핑, “가상인물 ‘현자(贤子)’에게 2021년의 중국을 묻다”, 「웹진 중국을 주께로」 통권 222호, 2021년 2월 3일.
  
  사적 모임장소와 가정교회 모두 불법적인 종교 활동장소다. 사적으로 만든 모임 장소와 가정교회는 종교사무국의 허락과 등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허락될 수 없다. 정부 입장에서 볼 때 해외 세력이 침투하는 거점이 되는 동시에 침투 활동의 발판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일부 사적으로 만든 종교 모임과 가정교회는 이단이나 사교의 온상지가 될 수 있다. 또한 사회의 불법 분자들이 불법 위법활동의 집합체가 돼 정상적인 종교 사무관리 질서를 위협하므로 반드시 법적으로 처리하고 금지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치안관리처벌법’ ‘사회단체등록관리조례’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다. 허난성 종교사무조례 제61조에 따르면 처리 방법이 명확하게 규정돼 있다. 등록되지 않은 종교단체의 명의로 진행되는 종교 활동 혹은 금지조치 후에도 계속 진행되는 종교 활동은 법에 의해 금지, 벌금, 구류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
  중국정부가 생각하는 불법 선교란 무엇인가. ‘종교사무조례’ 제41조와 56조 규정에 따르면 불법 종교단체, 불법 종교학교, 불법 종교장소, 지정되지 않은 임시활동장소에서는 종교 활동을 조직하거나 활동할 수 없고 종교 기부금을 받을 수 없으며 종교 교육활동을 할 수 없다. 또한 공민을 조직해 해외에서 실시하는 훈련, 회의 혹은 활동에 참가할 수 없다. 모든 조직이나 개인은 공익 자선활동을 이용해 전도할 수 없다. “李克强签署第686号国务院令 公布修订后的‘宗教事务条例’, 《中国政府网》, 2017年9月7日.
허난성 종교사무조례 규정에 의하면 모든 조직과 개인은 광장, 공원, 여행 관광지, 터미널(정류장), 항구, 비행장, 병원, 상점, 학교, 체육관 등 공공장소에서 종교서적, 인쇄물 혹은 CD 등을 배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허락되지 않은 종교 활동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종교 활동, 노방전도, 공공장소에서 종교 전단지 배포, 종교적 색채를 띤 광장무(广场舞), 병문안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전도 행위, 대학 내 근로학생 명의로 전도 행위, 기업 내에서 이루어지는 종교 활동 등은 불법이다. “河南省宗教事务条例”, 《河南省第十三届人民代表大会常务委员会》, 2021年11月22日.
불법 종교 활동을 위해 장소, 시설, 금전, 교통 등에 조건과 편리를 제공한 것도 처벌을 받는다. 또 허난성 종교사무조례 규정에 따르면 모든 조직과 개인은 불법 종교 활동에 참여하거나 지지할 수 없다. 또 불법 종교 활동을 위해 장소, 시설, 금전, 교통 방면의 조건과 편리를 제공할 수 없다. 외국 종교조직이나 개인이 성 내에서 종교 활동을 하는 것에 협조하면 안 된다. 공익 자선활동을 이용해 전도할 수도 없다. 자신의 집을 세를 주거나 무상으로 헌금해 해외에서 침투해 불법적으로 전도하거나 사적 모임으로 사용하게 하는 자, 사비로 그들의 인쇄물이나 사이트를 개설하는 것을 돕는 자, 사람들을 지하 종교 활동에 참가하게 하는 자 등은 모두 조건과 편리를 제공하는 자가 된다. 이상의 규정을 위반할 시에는 종교사무국에서 경고하고, 불법적으로 취득한 재산은 몰수된다. 상황이 엄중할 경우 2만 위안 이상 20만 위안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불법 건축물은 도시계획이나 건설부에서 법에 따라 처리된다. 치안관리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치안관리법에 따라 처벌된다.  
  중국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회에 대한 조치는 과거와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정교한 시나리오에 따라 매우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1년 4월 베이징의 서우왕교회(守望教会)가 정상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고 “北京守望教会拟户外敬拜”, 《自由亚洲电台》, 2011年3月31日.
2018년 8월 시안교회(锡安教会)가 산산조각이 난 데 “北京最大家庭教会的七个聚会点终被全数关闭”, 《对华援助协会》, 2018年8月23日.
이어 그해 12월 연이어 발생한 광저우(广州) 롱구이리교회(荣桂里教会) 롱구이리교회의 옛 이름은 다마잔복음교회(大马站福音会堂)이다. 이 교회 설립자는 가정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였던 고(故) 린셴까오(林献羔, 영어명 새뮤얼 램)다. 삼자애국회(三自爱国会) 가입을 거부한 그는 1955년 반혁명혐의로 체포돼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석방된 뒤 1958년 다시 체포돼 20년간 수감생활을 하다가 1978년 출옥하고 이듬해부터 다마잔복음교회를 이끌어왔다. 다마잔복음교회는 2000년에 롱구이리로 이전했다. 2013년 8월 3일 린셴까오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자 그를 추모하는 장례식장에 3만 명 이상의 추모객이 모였다. 롱구이리교회와 광저우 종교국, 통전부와 협의가 이루어지고 롱구이리교회의 전도사가 통전부의 동의를 받아 파견될 정도로 서로 가까웠으나 폐쇄명령을 피하지 못했다.
, 청두(成都) 이른비언약교회(秋雨圣约教会, Early Rain Covenant Church) 폐쇄에서 이를 감지할 수 있다. 롱구이리교회 폐지 고지문을 보면 교회의 생존 공간 내지 활동의 여지를 알 수 있다. “종교사무조례를 위반한 혐의를 받는 롱구이리교회의 모든 활동은 중단된다. 교인들은 당국의 인가를 받은 15개 교회의 예배에 참석할 수 있다.” 교인들은 종교 활동장소 또는 임시종교 활동장소로 등록된 15곳, 즉 동산교회(东山堂), 시온교회(锡安堂), 구주교회(救主堂) 등에서는 얼마든지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의미였다. 특히 롱구이리교회에 적용된 혐의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바로 종교사무조례 제41조 위반이라는 것이다. 제41조에 따르면 비종교 단체, 비종교 학교, 비종교 활동장소는 종교 교육훈련을 전개할 수 없고, 종교성 기부도 받을 수 없다. 공민은 국외로 나가 종교 방면의 교육이나 회의, 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 국외와 연결돼 활동하는 교회는 언제든지 41조 위반으로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비언약교회 왕이(王怡) 목사 왕이 목사는 도시 가정교회의 지도자 신분으로 인권 변호사 리바이광(李柏光), 작가 위제(余杰)와 함께 2008년 5월 11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 중국 기독교 현황과 개인적 간증을 공개한 바 있다. 리바이광은 2018년 2월 26일 난징 인민해방군 병원에서 간암으로 사망했다. 베이징대에서 중문학 학사에 이어 석사 학위를 취득한 위제는 베이징 방저우(方舟)교회를 섬기면서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다가 2011년 1월 11일 미국으로 망명했다.
의 케이스는 눈엣가시와 같은 교회와 목회자를 처리하는 중국의 방식을 잘 보여준다. 2018년 12월 12일 ‘나의 믿음의 불복종 선언’을 발표하고 “목회자로서 내가 받은 소명은 하나님과 성경을 거부하는 인간의 법을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거역하라고 명령한다”며 “나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서도 악한 법에 불복종하는 대가를 기쁘게 감당하라고 명하신다”고 주장했다. 왕 목사는 ‘6월 4일 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는 문구도 만들어 공개적으로 기독교인들의 참여를 촉구하기도 했다. 6월 4일은 1989년 중국정부가 베이징 톈안먼(天安门)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 100만 명을 무력으로 진압해 전 세계에 충격을 준 날이다. 중국정부가 민감하게 여기고 있는 톈안먼 사태를 건드린다면 언젠가는 치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개연성을 보여준 게 아닐까.  
  앞으로 종교는 더욱 철저하게 법으로 관리될 것이다. 2020년 2월 1일부터 국가종교사무국령 제13호 ‘종교단체관리방법(宗教团体管理办法)’이 발효됐다. “宗教团体管理办法”, 《国家宗教事务局》, 2019年12月30日.
6장 41조로 이뤄진 종교단체관리법은 종교단체의 조직, 기능, 감독, 관리 전반에 이르기까지 과거보다 강화된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종교단체는 종교 활동보다는 중국공산당의 이념과 정책을 전파하고 중국공산당 지도부를 지지하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노선을 고수하도록 교육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종교단체관리방법’17조에 따르면 종교단체는 종교성직자와 신자에게 중국공산당의 방침과 정책, 국가법률, 법규, 규칙을 전파해 중국공산당의 영도와 사회주의체제를 지지하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길을 고수하고 법률과 법규, 규칙과 정책을 준수하고 국법과 종교법 간 관계를 정확하게 처리하고 국가의식·법치의식·시민의식을 강화하도록 교육하고 지도해야 한다. 32조에 의하면 종교단체는 중국공산당의 중대한 의사결정체계, 국가정책과 법규, 우수한 중화(中华) 전통문화, 종교지식 등을 종교 종사자들이 배울 수 있는 학습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25조에 따르면 인민정부의 종교사무 관련 부서는 주무 사업단위로서 국내 관계법과 조례, 규정에 따라 종교단체의 사업들을 지도, 관리해야 한다. 첫째, 관계 당국과 합동으로 종교단체의 설립 등기와 변경, 말소와 관련 단체 정관의 승인 전 업무 심사, 종교단체의 연례 사업보고 검토를 담당하며 등기 말소된 종교단체의 청산 사무를 지도한다. 둘째, 종교단체가 법과 조례에 저촉되지 않게 역할 하도록 감독, 지도하며 종교단체가 법, 조례, 규정, 정책, 단체 정관을 위반했을 시 법에 따라 처리한다. 셋째, 종교단체가 인민정부의 종교사무 관련 부서 승인을 얻기 위해 제출한 내역을 법에 따라 인허가 및 감독, 관리한다. 넷째, 종교단체의 규정, 규칙의 제정과 개선이 헌법, 법률, 조례, 규정, 정책을 위반하지 않는지, 업무상 실질적으로 필요한지 지도, 감독하고 그 내용의 이념, 구조, 기풍, 제도 측면을 강화한다. 다섯째, 지도와 관리가 필요한 기타 내용은 법률과 법규가 정하는 바에 따른다. 26조와 27조는 종교단체가 실행 전에 당국에 보고해 승인받아야 하는 내용들의 목록을 담고 있다. 종교단체 회장(주석, 주임), 부회장(부주석, 부주임), 비서장(총간사) 등 간부의 임명과 중요 회의와 활동, 훈련 개최와 대외활동 전개, 단체 내부 모순과 분쟁 해결 방안 등이 나열돼 있다. 특히 26조 5항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국내외 조직과 개인이 종교서적, 음향·영상제품, 10만 위안 이상 금액을 기부 받을 때는 반드시 보고한 뒤 승인받아야 한다. 34조는 재무 상태, 수익과 지출에 관한 사항들을 다룬다. 앞으로 종교단체는 모든 주요 활동을 해당 당국에 사전 신고하고 승인받아야만 실행할 수 있다. 즉 인민정부 종교사무 관련 부서의 승인이나 행정 관련 부서의 허가 없이는 종교단체 이름으로 그 어떤 활동도 수행할 수 없다.
중국공산주의 이론을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에 있어서는 기독교, 가톨릭, 이슬람교, 도교, 불교 등 중국 내 5대 종교에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법안이 공표된 날인 2019년 12월 30일이 청두(成都)시 중급인민법원이 왕이 목사에게 국가전복선동죄, 불법경영죄 등을 적용해 징역 9년, 정치적 권리박탈 3년, 개인재산 5만 위안 몰수를 선고한 시점이라서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2018년 2월 1일 새로운 종교사무조례 발효 이래 녹록치 않은 기간을 보내고 있는 중국기독교인들에게 또 다른 좌절을 주었다. 왕빈, “올해도 법치를 통한 종교 관리는 계속 된다”, 「웹진 중국을 주께로」 통권 210호, 2020년 2월 2일.

  


Ⅳ 중국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

  앞으로도 종교 법제화와 더불어 인터넷감시·검열시스템인 ‘만리방화벽(防火长城, Great Firewall of China)’, CCTV와 AI 기술융합의 치안감시시스템인 ‘톈왕(天网, 하늘의 그물)’ 등은 통치수단이지만 중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의 활동 또한 광범위하게 옥조일 카드로 이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해아래 비밀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왕빈, “하이테크 시대와 중국교회 그리고 선교”, 「웹진 중국을 주께로」 통권 198호, 2019년 2월 4일.
그렇다면 중국교회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먼저 중국정부가 갖고 있는 종교에 대한 ‘두려움’과 ‘조급증’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공산당 통치에 있어 종교는 아직까지는 강력하게 처리해야 할 단계에는 도달하지 않았지만 위협요소로 등장할 개연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등 서구에서 중국을 자극하고 도시 가정교회를 비롯해 정통 가정교회가 종교사무조례를 적극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니 메스를 들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즉 뿌리가 더 깊이 내려 완전히 도려내야 하는 형국에 도달하기 전에 잔뿌리부터 쳐내야 한다는 의식이다. 기독교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시장경제, 더 나아가 중국몽이 실현되는 데 도움 될 때는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지만 체제에 크게 위협이 된다면 용납하기 어렵다는 게 중국공산당의 전통적인 입장이다. 중국이 인정하고 있는 5대 종교 가운데 이슬람교와 더불어 가장 선교적인 종교가 기독교라는 점에서 체제 밖 교회는 더 이상 허용하기 어려운 시점이 되었다는 게 중국지도부 내 공감대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체제 내 교회조차 종교정책 밖에 있을 때는 언제든지 치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교회의 작금의 환난 과정을 일정부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고난과 탄압이 증대돼도 종교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아야 한다.
  둘째, 중국교회는 중국사회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개별교회만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중국사회가 세분화할수록 기독교 변증, 신학과 교리교육, 성경적 세계관교육, 일터교육, 진로와 소명교육, 신앙의 공동체화, 가정 세우기 등 교회를 넘어 지역사회에도 큰 도움이 될 공유가치와 내용을 교회가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해외교회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이웃 중국인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중국화가 된 유기체적 프로그램을 하루속히 만들어야 한다. 교회 개별 사역 추진과 공유가 이뤄져야 할 뿐 아니라 관련 사역 경험과 피드백·재생산, 빅데이터 등을 한데 모아서 향후 지역, 대상, 세대 맞춤 공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또 중국정부도 공감할 수 있도록 중국 상황에 맞는 교회와 기독교인의 역할을 강화시켜야 한다. 더 이상 은밀하게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됐다. 따라서 교회는 외부에 공개됐을 때 중국인민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적어도 이웃으로 받아들일 정도의 ‘지적 세련됨’으로 무장해야 한다. ‘중국적 공샹(共享·공유)’도 과감하게 도입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교회 자체가 공유의 DNA를 갖고 있는 공동체다. 해외교회보다 자체 프로그램이 많지 않은 중국교회로서는 내부 동력을 극대화하는 길은 공유에 있다. 해외 프로그램이나 사례들을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나 결국 중국교회가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중국적 그 무엇’이다. 영유아 사역, 청소년 사역, 청년대학생 사역, 중장년 사역, 노인 사역, 직장 사역, 가정 사역, 장애우 사역, 상담 사역 등 영역별 전문 사역 등을 더욱 잘 준비해야 한다. 왕빈, “교회도 ‘공샹(共享·공유)’에 눈을 돌려라”, 「웹진 중국을 주께로」 통권 189호, 2018년 5월 2일.
그런 점에서 매몰차다고 할 수 있지만 십자가의 철거, 교회 내 CCTV 설치, 교회에서의 오성홍기 게양 등을 수용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십자가가 없고 감시카메라가 있고 오성홍기가 펄럭인다고 기독교 신앙이 흔들릴 수 있을까. 십자가가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CCTV가 있다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는 모습은 달라지지 않는다. 복음적인 설교 내용도 변질되지 않는다. 오성홍기가 게양돼있다고 해서 교회가 아닌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다. 그 사랑은 자국에만 머물지 않고 모든 민족, 모든 열방에까지 미친다는 게 다르다. 특정교회에 꼭 많은 사람이 모여야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많을수록 목회와 양육, 제자훈련과 소그룹 모임 등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는 걸 중국교회는 물론 세계교회가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는가. 교회는 크기와는 상관관계가 없다. 주님의 부르심을 믿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얼마든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갈 수 있다.
  문제는 어떤 교회인가, 어떤 기독교인인가가 관건이다. 첫째, 중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본질에 더더욱 치중할 때이다. 기나긴 박해 속에서도 자국의 복음화와 열방을 향한 열정으로 무장하고 순전한 신앙을 지키려고 애썼던 수많은 무명의 기독교인들의 길을 또다시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제도적인 교회가 활성화하지 않고 마음껏 찬양도, 성경읽기도 어려웠지만 전달받았던 복음을 온몸으로 지키려고 했던 순수함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성경을 구하기 어려워 모두 달달 외워야 했고, 가능하면 서로 돌려봐야 했지만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모함을 포기하지 않았던 영성을 되살려야 하지 않을까. 중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돼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주변의 변화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묵상하면서 작은 가정 공동체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 속에서 기독교인답게 사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현란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실생활에서 적용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지고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좋아지는 기독교인의 삶을 살아갈 때 비기독교인들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인지 궁금해 하지 않을까. 그때 우리 주변의 거룩한 변화가 시작된다. 물론 이 세상에서 완전한 가정과 공동체, 완벽한 사회와 국가는 꿈꿀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환영받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고 중국교회가 분발하기를 바란다. 중국교회가 중국인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위로자가 돼야 할 때가 오고 있다. 부가 곧 행복이 아니고, 가난이 곧 불행이 아니라는 걸 중국교회는 분명 제시해야 한다. 중국교회는 사람을 세우고 격려하며 큰 바위와 같아야 한다. 성경은 모든 이에게 마음에 닿도록 외치라고 한다. 그리고 행동으로 신앙을 보여주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어디에서 위로를 찾을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지금 나도 살기 어렵고 불안한데 남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나 아닌 이웃을 생각할 수 있겠느냐고, 절대 빈곤을 벗어났다고 곧 행복 시작이 아니지 않느냐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데 어떻게 참을 수 있겠냐고. 왕빈, “중국교회가 ‘용(중국과 중국인)’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웹진 중국을 주께로」 통권 191호, 2018년 7월 4일.

  둘째, 중국교회는 지금부터 내적 공동체성만 지향하는 목회가 아니라 사회의 공동체성에 이바지하는 사회적 목회를 준비해야 한다. 교회가 속해있는 지역사회를 목회의 자리로 인식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원래부터 교회는 그 존재 자체에 머물지 않고 세상의 위로자로 증언과 섬김의 사역을 감당하라고 부름을 받았다. 만일 선교사가 기독교에 무지하거나 심지어 적개심을 갖고 있는 곳으로 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현지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최소한 현지인들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섬김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중국교회는 목회자의 자리가 교회 울타리 안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울러 좀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좀 더 넓고 깊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위로와 희망, 치유와 회복의 원천이 교회라는 걸 중국인민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중국교회는 국가와 민족, 사회가 진정 필요한 인재를 성경의 세계관으로 양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 교회 안에만 머물 때 사회와는 멀어지고 선한 영향력을 흘려 내보내지 못해 결국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 있다. 삶을 통한 소통과 공감, 감동과 울림을 전해줘야 한다. 중국교회는 단순 성장을 추구하면 안 된다. 사도 바울은 제자들을 따로 세워 날마다 강론하며 소규모의 제자들을 복음의 일꾼으로 키웠다. 중국기독교인들은 함께 살아가는 비전을 갖고 사역 경험과 중국 땅에 필요한 도구를 문서화하거나 프로그램화해서 여러 교회와 기독교인들과 나눠야 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일반인들도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벽을 낮춰야 한다. 미래세대를 위한 ‘진로와 소명 찾기’, 유아·청소년 교육을 위한 ‘부모교실’과 ‘성품학교’,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영역을 위한 ‘코칭스쿨’, 초고령화 사회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시니어스쿨’ 등은 고려해볼 만한 영역이다. 중국교회는 외국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되 중국 특색에 맞게 상황화해야 한다.
  셋째, 외국과 연계 활동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중국교회 자체적으로 보다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선교역사를 살펴보면 선교단체 중심 선교에서 벗어나 교회 중심 선교전략으로 급속하게 변화됐다. 중국교회는 서구교회가 겪었던 선교단체의 성장과 부침을 별로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개교회 차원에서 선교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선교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별 선교가 이뤄질 수 있는 개연성이 크다. 전문성, 투명성, 탁월성 등을 갖고 중국 현실에 맞는 창의적 선교모델을 만들어야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걱정이 된다. 눈앞의 성과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교사(사역자) 모집, 훈련, 파송, 은퇴 후 관리는 물론 선교사(사역자)자녀 문제, 선교사(사역자) 건강관리와 위기관리 등 총체적인 선교사(사역자)케어 문제를 해결할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특정 교회나 목회자 그룹의 힘만으로는 좋은 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교회들이 보다 연합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교회들의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 자칫 오해를 사면 좋은 뜻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표류하게 되기 때문에 정말 지혜가 필요하다. 교회별로 활동은 하되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각각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선교(사역) 신용평가와 개교회(선교단체)의 선교 체질 분석, 대안 제시 등을 추진하고 선교사(사역자)의 전략적 배치와 지도력 계발 등을 통해 무분별한 행태가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중국교회와 기독교인 자체에서 문제점을 극복하는 것도 필요하다. 교회가 선교에 나설 준비가 돼있느냐이다. 자기 교회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까지 돌보겠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중국교회가 확실한 선교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세계교회가 중국교회의 인적 자원을 빌려서 자신들의 선교를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교비전은 건강한 교회와 목회자들에 의해 주도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부인의 삶을 살아가며 자기관리에 힘쓰는 목회자들이 배출돼야 한다. 사역의 성공을 위해 성경과 기도, 심지어 주님을 이용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영성, 지성, 인격, 체력을 완벽하게 갖추지는 못했지만 이 네 가지 요소를 키우기 위해 날마다 애쓰는 목회자를 통해 온전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이 배출될 것이다. 성과에 집중하는 사역자들은 공동체에 또 다른 어려움과 갈등을 일으키는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한다. 일보다 먼저 하나님의 사람이 될 때 자신보다 하나님을 우선시하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확산시킬 것이다. 사람들은 새롭고 더 좋은 방법을 구하지만, 하나님은 본질에 충실한 더 나은 사람을 찾는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선교중국은 더 많은 지식과 더 고상한 방법, 더 훌륭한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공급받는 생명의 능력, 본질사역을 통해 섬기는 작은 자들을 통해 이뤄질 것이다. 성경, 기도, 전도(선교)는 항상 균형을 이뤄야 한다. 사역자는 말씀의 맛을 알고 정통해야 한다. 말씀 그 자체가 돼야 한다. 그럴 때 사역자는 ‘신앙생활(주일 등 특정 요일 중심 신앙)’을 넘어 ‘생활신앙(매일의 삶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신앙)’으로, ‘일상’을 ‘나눔의 관점’으로 어떻게 적용해나갈지 선포할 수 있다. 사역의 전문성, 지성과 더불어 행동과 삶으로 지성과 감성을 보여줄 수 있는 ‘찰진’ 영성이 보장될 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보다 명확해진다. 선교중국을 위한 사역자는 개별 힘만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변수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역자 자신이 선교중국의 장애 원천이 될 수 있다. 선교중국의 길은 중국교회와 사역자들만의 몫도 아니다. 선교중국이라는 과제를 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부담을 갖고 있는 공동체와 사역자들이 힘을 합치려고 노력할 때, 아니 먼저 마음을 갖고 있는 이들이 우선 앞장서고 그 뒤를 이어갈 수 있도록 친절하고 관대한 다리를 놓을 때만 이후 일정 정도 열매를 보장받게 될 것이다. 선교중국의 내일을 열어가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날이 조속히 오기를 바란다. 함태경, “시진핑의 장기집권 체제와 중국교회, ‘중국선교’ 그리고 ‘선교중국’”, 『한국선교 KMQ』 2019 봄호(통권 69호), 119-139.
“모든 곳으로부터 모든 곳으로(From Everywhere To Everywhere)”라는 관점을 가지면 나와 당신이 있는 곳이 새로운 땅 끝이 되고, 우리 모두가 있는 곳이 미지의 땅 끝이 돼 그곳에 전도·선교적 교회, 전도·선교적 공동체, 전도·선교적 개인들이 세워지고 복음으로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 개인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라고 일갈한 누군가의 얘기가 유효한 오늘, 전도는 여전히 계속되고, 선교는 계속돼야 한다. 다만 방향과 방법이 바뀔 뿐이라는 걸 잊지 않는 능동적인 행동이 뒷받침되기를 바란다.  
  필자는 중국에 필요한 교회란 ‘중국형 셀교회’라고 확신한다. 앞의 책.
한국교회 등 세계교회는 참고할 대상이지 그대로 복제할 절대적 모델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형 셀교회’는 우선 방법이나 구조, 조직, 훈련자료 등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복음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교회의 본질이 간과되거나 왜곡되는 현상을 피하기 위해 두 가지 정신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완전히 복종하는 정신이다. 인간의 죄악된 모습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참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주되심에 대한 온전한 고백과 함께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는 교회의 골간을 이루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사명자, 소명자로서 삶을 살기 위해 애써야 한다. 만인제사장화 과정을 필수과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복음의 사역자들로 그런 신분에 걸맞은 사역을 할 수 있게 교회구조를 바꾸고 모든 교인들이 사역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모든 성도가 각각 책임을 맡은 사역을 동시에 수행함으로써 하나의 작은 교회로서 기능을 갖게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중국교회는 수많은 작은 교회(중국형 셀)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각자의 공동체가 강력한 유기체가 되도록 끊임없이 영적 영양분을 제공할 수 있는 구조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기성교회 안에도 일반적으로 소그룹은 존재한다. 성경공부 모임도 있고 연령에 따른 모임도 있다. 기타 행정적인 소그룹 모임도 있다. 하지만 그 소모임 자체가 교회가 되지 않는다. 반면 중국형 셀은 그 자체가 하나같이 교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예배, 교육, 친교, 전도, 선교 등 기존 교회의 모든 사역을 포괄적으로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은 중심 역할이 아닌 각 셀의 사역을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또 중국형 셀 안에서 모든 멤버들은 각자 받은 영적인 은사들을 활용하고 상호보완 관계가 돼야 한다. 돌봄의 은사가 많은 사람은 어린 신자 혹은 새 신자를 돌보고 섬기는 데 주력해야 한다. 가르침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교육과 훈련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찬양에 은사가 있는 사람은 셀 예배를 인도하면 된다. 복음 전도에 은사가 있는 사람은 셀 배가에 앞장서면 된다. 자신의 은사에 따라 셀 안에서 각자의 기능을 작동하게 해서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중국형 셀은 독립적이지만 고립되면 안 된다. 셀은 하나의 교회이면서 각 셀은 전체 셀교회를 이루는 요소이다. 셀 하나 하나에는 셀 리더, 담당목회자(전문화한 사역자)가 있지만 그 셀들이 이루는 연합으로서 대그룹 셀교회는 담임목회자와 그를 돕는 부목회자(또는 지역목사)를 둬야 한다. 담임목회자는 교회 전체의 비전을 수행하기 위해 소그룹으로서 중국형 셀들을 네트워킹해야 한다. 각 셀은 셀들의 필요에 따라 서로를 위해 봉사하고 정기적, 비정기적 전체 집회를 통해 같은 비전, 같은 소망으로 일체감과 연합됨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셀 안의 교회적 기능은 단일 공동체로서 온전성에 근거해야 한다. 재정의 투명성과 책무 또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교회 기능과 지속 가능한 투명성이 모두 드러날 때 공동체성을 충실히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중국형 셀교회는 특히 복음전도와 함께 사회적 책임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중국사회에 조응하는 중국기독교를 주문하는 중국공산당 입장에서 교회가 사랑과 섬김의 참된 공동체로 사회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중국교회는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애달픔과 온전한 코이노니아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중국에 맞는 교회는 대형교회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살아가는 이들이 모여 있는 강소형 교회, 중국형 셀교회다. 중국교회와 중국기독교인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온전한 교회론으로 무장해 중국적인 성숙한 교회와 문화를 만드는데 솔선수범한다면 중국공산당은 보다 나은 미래지향적 사회주의 정신문명의 길을 척결의 대상인 과거와 현재의 외래교회가 아닌 사회·문화적 파트너이자 이웃으로 등장하는 현재와 미래의 중국교회에서 찾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희망 섞인 전망도 해본다.



  Ⅴ 한국을 비롯해 세계교회를 위한 솔루션

  한국을 비롯해 세계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중국교회의 바른 토착화, 건강한 목회 정착과 선교의 사명 고취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교회와 서로 교제하는 모습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바울과 초대교회 사역자들이 이방인 지역으로 가서 스스로 교회를 세우는 일에 주도적으로 관여하고 장로를 안수 임명하고, 그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사역에 구체적으로 관여하였던 사실들을 기억하면서. 또한 신학을 하나의 정치체제를 지지하는 도구로 만들거나 이데올로기화한 것 역시 우리가 함께 짊어지고 회개하며 중국에 바른 신학이 세워지고 성도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도록, 때로는 고민하며 기도하고 때로는 적극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첫째, 세계교회는 중국교회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을 더 이상 선교대상으로만 여기면 안 된다. 함께할 파트너이자 공유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중국교회는 그동안 한국을 비롯해 외국선교사들이 중국을 위해 헌신해준 것에 매우 감사해 한다. 중국교회나 중국기독교인들이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중국교회나 중국기독교인들이 ‘어떤 필요’가 있을 거라고 먼저 판단하고 복음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선교사들과 그의 가족들이 온 몸으로 보여줬다. 이제는 판단하기에 앞서 경청의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묻는다면 보다 구체적인 요청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선교사를 파송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절망 섞인 진단은 하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외국선교사가 필요 없다는 판단은 중국교회나 중국기독교인들이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기독교인들 가운데 온전한 교회 모습과 성도의 교제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직 가야할 길이 먼 게 중국교회와 중국기독교인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여, 실망하거나 위축되지 말자. 종교사무조례 등 각종 종교법령 시행으로 ‘한 겨울’을 맞이한 중국교회에 해외교회의 살아있는 경험과 노하우를 나눠줘야 한다. 기독교인이 소수였을 때 오히려 짠 맛을 잃지 않고 사회의 방향타가 됐던 초기 한국교회의 열정과 헌신을 전해야 한다. 게토화가 된 소수의, 그렇지만 뉴스메이커가 될 수밖에 없는 일부 중대형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이탈이 전체 세계교회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는 역사적 경험도 공유해야 한다. 무분별한 양적 성장만을 추구했을 때 ‘교인들의 소외’는 조장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려야 한다. 아울러 하루하루 투쟁과 같은 삶과 사역을 감당하는 기독교인들이 많고 지역사회로부터 환영받는 교회들이 많다는 사실을 전해야 한다. 해외교회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중국교회가 중국인민을 위한 소금과 빛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모든 사람이 유형의 교회건물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기독교인들은 복음 공유의 툴을 제공하고 무형의 교회인 사람들을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중국교회가 세계교회와 더불어 ‘중국화가 된 창의적 기독교 공샹시스템’을 만들어나가기를 기대한다. 이 시스템은 ‘70 : 20 : 10 황금비율’에 따라 이뤄져야 하지 아닐까. 개별교회 사역 경험에 따른 ‘공유 중국교회’(70%) : 타 교회(시민사회)와의 협력에 따른 ‘공생(共生) 중국교회’(20%): 세계교회와 교류에 따른 ‘공감(共感) 중국교회’(10%). 중국교회가 중국공산당(정부)과의 문제를 보다 객관화하고 창의적 통찰력과 혁신적 대안을 갖고 있는 나눔과 열림 공동체로 거듭날 때 지역사회로부터 환영을 받게 될 것이다. 완벽하지 않지만 사회가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옹호, 변호, 지지하게 된다면 기독교는 진정한 공유의 가치가 될 것이다.  왕빈, “교회도 ‘공샹(共享·공유)’에 눈을 돌려라”, 「웹진 중국을 주께로」 통권 189호, 2018년 5월 2일.

  둘째, 하나님 말씀과 성경적인 삶을 제대로 이해한 중국 유학생들이나 해외 이주 중국인들이 향후 중국교회는 물론 중국사회에 새로운 에너지원을 제공하고 변혁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를 생존만을 위해 있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선교지이자 믿음의 실천을 해낼 소명의 장소로 만들어나가면 그 열매는 상상을 초월한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중국 유학생들이나 해외 이주 중국인들을 양육하는 교회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인식을 심어주고 일터신학과 신앙으로 무장시켜나가야 한다. “일터는 기독교인이 하나님께 소명을 받은 사명자로서 섬겨야 할 전임 사역의 현장이다. 부, 자본주의, 세계화 등 세속화가 된 권세로부터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로 회복시켜야 할 곳이다. 이것은 오직 사업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적 영성으로만 가능하다. 성공과 실패는 돈, 명성, 지위와 관계된 개인의 포트폴리오가 아닌 하나님의 목적을 얼마나 잘 성취하였는가에 달려있다.” 일터신학의 선구자인 폴 스티븐스 박사의 조언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는 일은 그저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거나 자아성취를 위해 선택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기쁨과 해방을 안겨 주는 하나님의 부르심 중 일부이다. 소명과 직업 소명의식이 없으면 우리는 ‘출세주의와 전문기술주의로 삶의 의미를 새로 만들어 내야 하는 일종의 마법사’로 변한다. 우리 각자의 정체성이 마치 소비하거나 업적을 성취하는 데 있는 것처럼 설득하는 미디어의 매력적인 소리에 빠지기 쉽다. 폭풍에 휘날리는 먼지처럼 뚜렷한 방향감각도 없이 이리저리 헤매게 된다. 이와 반대로 소명의식은 우리 삶에 방향과 목적을 부여해 준다. 우리의 창조주가 우리를 불러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도록 하고 이 세상을 능가하는 놀라운 목적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폴 스티븐스, 주성현(역), 『일의 신학-성경으로부터 배우는 일에 관한 모든 것』(서울: 도서출판CUP, 2014).
중국인들의 해외 이주는 자민족 복음화는 물론 선교의 동력화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자국에 비해 종교 활동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복음은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중국인들의 마음을 파고 들어갈 여지가 있다. 아울러 비자발적 한인선교사들이 중국에서 활동하지 못하고 대만을 비롯해 화교권을 넘어 중국인이 있는 모든 곳으로 흩어져 새로운 중국사역에 투입되는 것도 하나님의 세계선교 퍼즐 완성에 기여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제는 한 나라에서 한 민족만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가시적 성과를 지향하는 사역에서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 의료, 교육, 어린이, 스포츠, 지역사회개발 등 전략적인 선교도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복음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또 다른 제자를 배가하는 ‘지속가능한 제자삼기운동’이 병행돼야 한다. 중국인이 있는 모든 곳에 건강한 크리스천 공동체가 세워지고 자연스럽게 지역교회와 현지 기독교인들과 동역하는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세상 속 교회(기독교인들)’의 참된 모습을 보여준다면 온전한 선교중국의 길은 결코 불가능하지 않게 될 것이다. 현지 사역에 너무 집중할 경우 거시적인 시각을 자칫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내부자적, 외부자적 시각을 공히 갖고 균형 잡힌 조언을 계속해주는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미션을 부여해주고 그들의 얘기에 귀기울여주는 넓고 깊은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 퍼즐 완성은 우리 모두의 내려놓음을 전제로 한 동역이 뒷받침될 때만이 이뤄질 수 있는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를 비롯해 세계교회는 또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국선교에서 벗어나 세계에 흩어져있는 중국인 디아스포라까지 아우르는 중국인 선교와 선교중국의 융합을 통해 세계선교의 완성을 향해 전진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중국사역을 경험한 선교사들을 독려해서 신이민에 따라 만들어진 중국인 교회와 기존 화인교회에서 적극 활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중국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국가프로젝트 ‘일대일로’가 포함하고 있는 국가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은 모두 이슬람권역이다. 이들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기존 선교사들은 중국인들을 위해 사역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중국교회 가운데 해외선교에 열의가 있는 교회는 이들 국가에 선교사들을 파송하거나 미래의 목회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현지 신학교에 유학을 보냈다. 이들을 선교사적인 영성으로 잘 키워낼 중국인 교회를 개척하거나 기존 교회를 도와 중국인들을 훈련시킬 사람들은 중국 문화에 정통한 선교사들일 수 있다. ‘경제적 일대일로’는 새로운 선교벨트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세계교회에 준 하나님의 놀라운 반전 드라마의 서막이다. 문제는 ‘일대일로 선교벨트’를 특정 국가나 특정 민족이 책임지기에는 너무나도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행 가능한 로드맵을 만들어 서로 협력할 부분을 찾아 합의된 것부터 찬찬히 추진해나가야 한다. 중국의 신이민에 따른 중국인의 이동은 중국인 교회의 역할을 강화하고 복음으로 새로워진 중국인은 어디에 있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선교 메시지가 되고 중국교회 또한 단단히 세워가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중국교회는 이들의 선한 영향력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의 복음을 지역사회에서 드러낼 수 있도록 건강한 신학으로 무장하고 형제자매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 집중할 때 ‘하나님의 선교의 선순환 구조’는 완성될 것이다. 세계교회는 동역자의 신분을 잊지 말고 주인 되기를 포기하고 종의 영성을 올곧게 고수해야 할 것이다. 중국인 선교와 선교중국은 결국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서서히 그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내게 될 것이다. 쑨빈, “아프리카 중국인 교회, 중국 본토 교회의 새로운 미래 보여주다”, 「웹진 중국을 주께로」 통권 202호, 2019년 6월 3일.

  중국교회, 대만 등 화교권 교회, 세계 곳곳의 중국인 교회, 세계 최대의 화인선교기구인 세계화인복음사역연락중심(世界华人福音事工联络中心,Chinese Coordination Center World Evangelism), 세계교회 등과 다양하게 협력할 수 있는 공적기관의 설립도 필요하다. 물론 한국교회나 선교사 등 개별적인 동역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교회(선교계)의 중국인 선교와 선교중국을 실질적으로 대표할 기관이 있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서로의 필요를 알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독불장군식, 체계적이지 않은 선교는 선교지를 오히려 어렵게 하고 선교에 대한 반감조차 조성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선교지도자들부터 먼저 인정해야 한다. 고난 속에 있는 중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충전하기를 원하는 것은 ‘교회의 교회됨’, ‘기독교인의 기독교인됨’을 어떻게 구현해나갈 것인가이다.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는 전 세계 중국인 교회의 과제도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현실과 믿음 사이에서 주저앉기를 반복하는 기독교인들이 ‘한시적 욕망’ 대신 ‘영원한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향기’를 풍기는 삶을 일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때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우리의 동참이 진정으로 시작된다는 걸 명심하고 우리 모두 함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는 이 같은 호기가 오지 않을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중국정부의 강공책에도 불구하고 선교중국을 향한 중국교회 및 화인·세계교회의 열정은 온라인 공간에서 뜨겁게 이어졌고 앞으로도 더욱 활발할 것이다. 2020년 이래 관련 움직임 가운데 주목을 끈 것은 장족(藏族)선교 콘퍼런스(2020년 11월 1일), 华人差传大会 2020(Chinese Mission Convention 2020, 2020년 12월 28∼30일), 2021 중어권선교 On Sharing(2021년 4월 6일∼6월 29일), 여호수아 줌 선교대회(5월 14일), 2021年全球华人宣教大会(7월 20일∼24일), 모세선교대회(10월 25∼27일), 청년들을 위한 여호수아선교대회(10월 28∼30일), 중어권한인선교사대회 및 총회(11월 16∼18일) 등이다. 이들 모임은 선교동원 집회 또는 전략회의에 그치지 않고 중국의 정치와 종교 상황의 변화를 읽어내기 위해 애쓸 뿐 아니라 태국·수리남·대만·인도네시아·일본·미국·카타르·캐나다·체코·카자흐스탄·싱가포르 등지에서 중국인교회 및 신학교 사역과 선교사역을 나누면서 선교중국의 길이 특정 지역만의 독점적 과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비전임을 확인시켜줬다. 아울러 실크로드선교부터 21세기 화인교회의 세계선교까지, 21세기 화인교회의 세계선교 청사진, 코로나19 이후 중어권선교의 새로운 도전과 제안, 최근 중국교회와 선교중국의 흐름과 전망, 선교현장의 변화와 창의적 선교방안, 중어권선교 네트워크와 전망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와 함께 실천 방안이 다뤄졌다.
  이 같은 움직임 외에도 성경을 드라마로 만든 버전을 활용해 하루 20분이면 1년에 중국어 성경 1독을 가능케 한 CGNTV中文台의 ‘戏剧圣经365’를 비롯해 사역자를 위한 중국어학습시리즈인 아잔초이 TV의 ‘BIBLE365’ 등은 신앙생활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성경과 묵상에 대한 이해와 복음 확산의 기초를 닦는 것이라면, 중국과 중화권 선교정보를 제공하는 중국어문선교회의 ‘웹진 중국을 주께로’, 재한 중국 유학생 기독교로의 회심 요인 및 과정, 유형을 분석한 책 ‘국내 유학생 선교방법론’, 중국 원저우 도시가정교회의 선교의식과 선교활성화 전략을 다룬 ‘중국교회의 타문화 선교운동’, 1807년부터 2018년까지의 중국 가정교회 역사를 담아낸 ‘십자가를 짊어지고’. 중국과 중국인, 중국교회를 사회과학적인 시각으로 다룬 ‘알았던 선교, 몰랐던 중국’ 등은 중국교회를 폭넓게 이해하고 선교중국의 길에 함께 들어서게 할 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이 선교중국을 위해 중국교회와 세계교회가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선교중국이라는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노력하되 좀 더 총체적인 관점을 갖고 설계도를 그리고 적절한 때에 서로의 생각과 의견, 성과를 맞춰보고 수정할 것은 수정하고 보강할 것은 보강해나가는 다양하면서 통일된 모임들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 왜곡되거나 과포장된 선교의 체지방 지수를 낮춰 건강한 선교중국이라는 모두가 인정하고 하나님이 무엇보다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백석, “2021년 중국 상황과 선교중국의 길”, 「웹진 중국을 주께로」 통권 231호, 2021년 11월 3일.
한국을 비롯한 세계기독교인들은 중국을 선교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복음을 통해 세계의 평화에 기여해야 할 국가로 간주하고 복음의 중국화에 작은 귀퉁이 돌을 놓는 데 기여하겠다는 ‘절대 겸손’이 필요하다. 아울러 경제적 국부가 인민들의 행복 증진을 위한 절대조건이 될 수 없다는 걸 전해야 할 책임도 있다. 행복은 GDP 순이 아니라 인민 개개인의 삶의 질이 어떠한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나누고 ‘일상 속의 기독교 변증’을 발전시키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도록 중국기독교인들을 도와야 한다.
  특히 한국교회는 추방되거나 입국 거절된 선교사들부터 반갑게 맞이해 위로, 격려해주고 새로운 힘을 충전하게 한 뒤 한국 내 중국인 사역이나 해외 화인(중국인)교회에서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넓은 길을 다시 열어주기를 바란다. 해외에 나가있는 중국인들은 언젠가 자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영구 귀국하지 않는다 해도 잠시라도 방문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성숙한 기독교인으로서 조국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면 중국 내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중국정부도 세계교회와의 교류를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의도가 아니다. 따라서 법적 테두리 안에서 공식적인 협력 네트워크를 유지해나가려고 할 때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것도 필요하다. 삼자교회와 신학교가 안고 있는 숙제 또한 녹록치 않기 때문에 외부의 도움을 간절히 요청할 때가 올 것이다. 준비돼 있다면 그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복음으로 충만해지는 교회는, 자민족은 물론 타민족에 대한 긍휼의 마음을 갖게 된다는 걸 잊지 않았다면 한국교회는 중국교회와 중국기독교인들과 함께할 때가 있음을 깨닫고 열렬하게 반응해야 할 것이다. 겨울은 봄이 오기 전의 계절이지 아니겠는가.  
  한편 중국 사교육 시장 규제를 바라보면서 역발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 불평등과 학부모 부담의 고리를 끊기 위해 중국교회는 물론 세계교회가 새로운 교육의 기회를 중국에 선사하면 어떨까. 적은 비용, 아니면 무료로 고품질의 교육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면 학생 개인과 학부모들의 시름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학생들이 영어·수학·중국어 등 학과목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부족한 부문을 보강할 수 있도록 세계기독교인들의 품앗이, 도우미 교육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이때를 위함”이라는 믿음을 갖는다면 세계기독교인들이 나서서 ‘중국판 칸아카데미’ ‘중국판 무크’ ‘중국판 코세라’ ‘중국판 유다시티’ 등도 만들 수 있고, 기존의 유익한 교육 플랫폼을 중국학생들이 보다 쉽게 향유하도록 배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교회 내 목회자나 교인들도 나서서 이웃의 학생들을 위해 교육 도우미가 되거나 플랫폼을 구축해 아낌없이 지식과 지혜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왕빈, “중국 비영리 교육선교의 길을 찾아라”, 「웹진 중국을 주께로」 통권 228호, 2021년 8월 3일.
제4차 산업혁명과 AI를 통한 교육혁명에 따른 플랫폼과 세계의 각 분야 전문가와 교수, 교사들이 자신들의 ‘지식 십일조’ ‘시간의 십일조’라는 힘을 합쳐 교육공공재로 중국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의 자녀의 성공만을 생각하지 않고 좀 더 중요한 것을 볼 수 있는 안목과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의식을 학부모들에게도 줄 수 있지 않을까. 왜곡된 능력주의로 만들어지는 불공정과 기회의 불평등을 걷어내고 공동체의 성장과 나눔을 가능하게 할 때 온전한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중국 당국에 심어주는 노력도 필요하다. 중국 사교육에 대한 조치가 또 다른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의 기회와 계기이자 새로운 비영리 교육선교의 길임을 중국교회와 세계교회가 상상하고 멀리 보고 행동하면 좋겠다.



Ⅵ 나가는 글

  중국공산당의 개혁개방을 성공시킨 주요 요인을 들라고 하면 유능한 통치엘리트의 충원을 가능케 하는 ‘인사’, 공산당의 자기혁신과 개혁을 이끄는 ‘조직’, 혁명 이념을 경제발전으로 정당화하는 통치 이데올로기의 변형과 모색(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론, 과학적 발전관,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견인하는 ‘이념’ 등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중국공산당 엘리트는 중앙과 지방에 골고루 배치돼 있다. 그동안 개혁개방을 뒷받침해온 수많은 엘리트가 활동했다. 덩샤오핑은 이를 위해 개혁개방 초기 ‘제3제대(第三梯队) 건설’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원래 이 용어는 군대에서 사용했다. 제1제대는 선봉부대, 제2제대는 후방부대, 제3제대는 예비부대를 뜻한다. 인사에 있어 제3제대 건설 프로젝트는 개혁개방을 이끌어나갈 후계자를 양성하는 데 맞춰져 있다. 이 프로젝트에 따라 ‘연소화’, ‘지식화’, ‘전문화’, ‘혁명화’라는 4개 기준을 세워 부장(장관)급 1000명, 국장급 3만 명, 과장급 10만 명 등 13만 명의 예비 지도자를 양성했다. 1980년부터 1986년까지 대학에서의 이공과 전공자, 10년 이상 전문직 기술자 등 49만 명을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로 발탁했다. 이들 가운데 장쩌민, 후진타오라는 걸출한 테크노크라트이자 최고 지도자(제3세대 최고 지도자, 제4대 최고 지도자)를 각각 배출됐다.
중국공산당은 큰 그림을 갖고 지도자들을 양성한다. 엘리트 충원을 ‘60-55-45 체제’로 좀 더 설명할 수 있다. 40대 연령 가운데 차차기 세대 지도자로 양성할 대상을 5∼10년간 육성한다. 50대 연령 가운데 차세대 지도자가 될 대상을 5∼10년간 육성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친 60대 연령 가운데 중앙과 지방 최고 지도자를 발탁해 10년 정도 최고 통치 엘리트로 일하게 한다. 조직을 혁신하고 통치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앙당교(中共中央党校)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장관급 대상으로 하는 1∼3주 전문연수반(토론반)과 국장급, 현·시 당서기 등을 위한 연수반(进修班), 1년간 차기 지도자 양성 과정과 소수민족반 등 훈련반(培训班), 정규 석박사학위의 대학원 교육을 진행한다. 훈련반 과정에는 1년 이상 해외연수도 포함된다.
중국 지도자들은 이처럼 수많은 교육과 훈련, 엄격한 실무 능력과 남다른 정무감각, 도덕성과 당에 대한 충성도 등 각종 냉정한 검증 과정을 거쳐 각자의 자리에 올라가게 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2년 시진핑 체제가 들어선 뒤 현재까지 약 90만 명의 당원이 부패 연류 등으로 인해 퇴출됐다. 1주일 사이 9명의 차관급 이상 전·현직 간부가 강도 높은 조사를 받거나 당적이 박탈되기도 했다.
  중국공산당은 사회 각 분야의 상위 5∼6%에 해당하는 엘리트들의 연합체라고 할 수 있다. 시진핑 총서기도 1973년 첫 번째 입당신청서를 썼지만 10차례 떨어진 끝에 입당했을 정도로 문턱이 높다. 1921년 7월 23일 중국 상하이(上海)의 프랑스 조계지에서 13명의 대표로 출범한 중국공산당은 100년이 지난 2021년 9월 현재 9515만 명의 당원을 가진 세계 최대 사회주의 정당이다. 첫 당대표대회 때 전체 당원 수는 54명에 불과했다. 현재 당원의 25%, 2368만 명이 35세 이하 당원이다. 여성 당원은 29%, 2745만 명에 달한다.
당원이 되려면 만 18세 이상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갖고 있어야 한다. 노동자, 농민, 군인, 지식인, 학생 등의 ‘선진분자(先进分子)’이어야 한다. 외국인은 불가능하다. 공산당원의 기본 활동은 ‘삼회일과(三会一课)’로 설명될 수 있다. 여기서 삼회, 즉 세 가지 모임은 당원대회 분기당 1회, 당지부 회의 월 1회, 5∼6명으로 구성돼 있는 당소조(党小组) 회의 월 1∼2회 참석을 의미한다. 6개월 이상 세 가지 모임에 참석하지 않으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제명을 당한다. 공산당원은 개인생활이 아닌 조직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1년에 최소한 4번 이상 당 학습에 참석해야 한다.
공산당원은 한 달에 2번 정도 모임에 참석하고 학습해야 한다. 공산당원의 주된 활동은 대외활동이다. 당비는 형식적이지만 월급에 따라 매월 임금의 0.5%∼2%를 내야 한다. ‘중국공산당 당비 납부, 사용 및 관리계획 2017년 판’에 따르면 세후 월수입 3000위안 이하면 0.5%, 세후 월수입 3000위안 이상∼5000위안 이하는 1%, 세후 월수입 5000위안 이상∼1만 위안 이하는 1.5%, 세후 월수입 1만 위안 이상은 2%를 납부해야 한다. 군 퇴직자, 공무원 퇴직자 등은 매월 수령하는 퇴직금이나 양로금 총액을 기준으로 환산해 월 5000위안 이하는 0.5%, 5000위안 이상은 1%를 내야 한다. 학생, 실업자는 매월 0.2위안, 농민은 매월 0.2∼1위안을 납부해야 한다. 해외유학생 등 6개월 이상 해외에 나가게 되는 경우는 당원 자격이 중지된다. 하지만 당비는 내야 한다. 6개월에 한화로 1천 원 정도다.  
당원 양성 과정과 후계자 육성 방식을 보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강력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제자를 키워가는 ‘세속적 제자도’라고 명명할 수 있다. 당원이 되기 위해선 25단계를 거쳐야 한다. 처음에 입당 신청자는 ‘적극분자(积极分子)’로 구분된다. 신청자는 당원 2명의 추천서와 입당 지원서를 제출하면 공산당 지부는 2명의 정식 당원을 지도자로 삼아 신청자에게 할당한다. 신청자는 1년간 교육과 검증 기간을 거쳐야 한다. 이때 주로 신청자는 당 모임에 참석하고 학습과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1년간 교육훈련을 받은 신청자 가운데 우수한 사람만 선발해 예비 당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주고 다시 입당 지원서를 쓰게 한다. 이어 지원서를 내면 당소조 회의에서 표결하게 한 뒤 선발된 입당 신청자는 상위 기관에 보고된다. 상위 기관에서 온 2명 이상의 정식 당원이 입당 지원서를 검토하는데, 이때 신청자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좀 더 따져보고 괜찮다고 판단하면 예비 당원으로 확정한다. 예비 당원이 되면 1년 이상 학습, 훈련과 함께 검토 과정을 또 거치게 된다. 이후 당원대회 표결과 상급 기관의 비준에 따라 최종적으로 정식 당원이 된다. 이처럼 공식 당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2년 6개월 이상이 걸리게 된다.
1년에 입당 신청자, 즉 적극분자 수는 약 2000만 명에 이른다. 그중 예비 당원까지 되는 사람은 900만∼1000만 명, 최종적으로 정식 당원이 되는 사람은 약 100∼150만 명에 달한다. 결국 신청자 가운데 약 5∼6%만이 당원이 될 수 있다. 공산당원 3명이 있으면 조직이 만들어질 수 있는데, 현재 전국적으로 중앙에서부터 기층까지 약 500만 여개의 공산당 조직이 있다. 평상시에는 공산당 조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위기 때 조직의 강점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1월 23일부터 76일간 우한시가 봉쇄됐을 때 중국 각지의 의사, 간호사들이 우한에 파견됐다. 이때 파견된 의사 4만 명 가운데 대부분이 공산당원이었다. 이에 앞서 시진핑 총서기가 코로나19 방역이라는 ‘인민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전국의 공산당 조직과 당원이 적극 참여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당시 모금운동도 벌였는데, 한화로 약 2조300억 원의 기부금을 모았다. 시 총서기는 당 군사위원회 주석 신분으로 또 지시를 내려 약 20만 명의 인민해방군이 매일 방역활동을 펼치게 했다. 평상시에 잘 안 보이지만 이처럼 위기 상황에는 공산당 조직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된다. 공산당원의 주된 활동은 봉사활동과 자기 학습이다. 공산당원은 정치적 신분이기 때문에 대부분 월급을 받지 않는다. 9515만 명의 공산당원 가운데 공산당 업무를 수행하거나 공무원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약 650만 명에 불과하다. 공산당원의 95%는 정치적 신분만 갖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긴 세월 동안 만들어지는 공산당원에 비해 기독교인은 어떻게 다듬어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로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기만 하면 과거가 어떠하든지 누구나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세례를 받고 교회의 정식 일원이 되기 위해, 집사와 장로 등 교회의 주요 일꾼이 되기 위해 교회별로 일정 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공산당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용이한 것은 아닌지, 우리의 이웃이 진정 인정할 수 있는 주님의 온전한 제자로 비쳐지는지, 중국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교회 성도들은 자문해야 되지 않을까. 기독교인이 있는 곳은 가정이든 일터이든 좀 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주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무진 애쓰는 참된 제자가 되고자 할 때 오늘은 어제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기독교인으로 인해 그가 소속된 공동체와 그 주변은 보다 행복해질 것이다. 나도 부족하고 연약한 인간이지만 중국교회 기독교인들에게 질문하고 싶어진다. “앞으로 아무리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주님의 진짜 제자로 살고자 애쓰겠는가, 아니면 오늘에 만족하고 주님의 ‘팬’으로만 남아 있겠는가.” 쑨빈, “제자입니까?”, 「웹진 중국을 주께로」 통권 230호, 2021년 10월 3일.

  따라서 중국교회는 ‘거룩한 영점조정’에 나서야 한다. 왕빈, “‘영점조정’이 필요하다”, 「웹진 중국을 주께로」 통권 184호, 2017년 12월 5일.
첫째, 중국기독교인들이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정통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초심(하나님과 첫 만남)을 회복해야만 한다. 왜 우리는 성경을 믿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그렇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단순히 유대 역사와 초대 기독교에 대한 우연한 기록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의 증거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말씀을 믿을 것도 원하신다.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성경 밖의 사실들을 활용해 변호하려고 할 때 성경보다 그러한 사실들에 더 큰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따져봐야 한다. 지엽적인 문제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자칫 성경의 숲은 파악하지 못하고 특정 나무에 얽매어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기 쉽다. 그럴 경우 쉽게 이단사설에 빠질 수 있다. 그러면 중국기독교는 중국공산당에게 인정받기 더욱더 어렵게 된다. 오히려 척결의 대상이 되기 쉽다. 독도법을 알면 지도만 갖고도 얼마든지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듯이 성경을 읽는 법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신앙의 내면화까지도 가능하다. 중국교회는 하나님과 중국공산당을 화해의 길로 인도하는 참된 메신저가 돼야 한다. 전령은 메시지를 가감 없이 그대로 전하는 것이 임무이다.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면 안 된다. 교회도, 목회자도, 성도도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매체다. 하나님과 성경은 굳이 인간의 변호를 필요로 하지 않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하기에 좀 더 겸손한 자세가 요구된다. 설교자의 설교가 하나님 중심이 돼야 하듯이 우리의 삶이 성경적 중심을 유지할 때 기독교인의 말과 행동은 곧 선한 영향력이라는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를 세상의 화해자로 설 수 있게 해주셨음에 감격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작정하고 기독교인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된다면 중국공산당은 중국기독교에 대한 뿌리 깊은 의구심을 거둬낼 수 있다. 중국기독교의 완전한 중국화의 길을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성과 또한 거둘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 중국교회 안에서 교회론에 대한 근본적인 재물음이 요구된다. 과연 중국기독교인들이 추구해야 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고 따르는 성도들의 공동체 또는 그 장소라는 정통적인 관점이라면 더 이상 ‘사이즈(크기, 규모)’에 좌우되는 대형화를 꿈꾸지 말아야 한다. ‘만인제사장론’에 입각해 성직자와 성도는 직분과 역할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건강한 신학의 토대 위에 서서 보다 정예화하고 중국 현실에 맞는 교회를 세워가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중국교회의 본질은 양적 성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과 기독교인의 사명의 본질을 회복하고 실현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주일에만 교회를 찾아 신앙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편지’로서 매일, 일상의 삶 속에서 영향력 있는 기독교인들로 살아가는 생활신앙을 구현하려고 애쓴다면 중국공산당이 추구하는 ‘기독교의 중국화’를 뛰어넘어 ‘상황화한 중국기독교’를 오히려 역으로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세속의 현실에 안주하고 종교적 습관만 되풀이하는 교회가 되지 말고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고 갈 길을 잃어버린 많은 이들에게 모험으로 나서게 하고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본질적 속성이 무엇이며 어떻게 역동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뤄나갈지 깊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이웃, 우리 문화, 우리 시대에 희망을 제시하고 안주하지 않고 새 포도주를 담아낼 도약하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모이는 교회에 머물지 않고 흩어지는 교회로 주일뿐 아니라 매일을 책임지는 기독교인들을 양성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교회와 기독교인을 향한 하나님의 또 다른 초대장이라고 생각한다면, 2022년과 그 이후 벌어질 어떠한 고난도 결국 희망의 열매를 맺게 할 촉매제가 될 것이다.
  중국정부가 선택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지구상에 없었던 새로운 길이고 아직 완성된 과제가 아니기에 “종교는 아편”이라는 낡은 도식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종교는 인민의 생활에 또 다른 활력소”라는 의식을 확신시켜 ‘종교의 중국화’를 추진하기를 바란다. ‘새장 속 종교 관리’만을 위해 종교의 본질과 역사 자체를 부인하고 강도 높게 통제하려는 것은 또 다른 부정과 역설을, 반작용을 가져온다는 역사의 교훈을 감안해 현재의 종교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이 필요하다. 바이톈, “덩샤오핑이 그립다니?!”, 「웹진 중국을 주께로」 통권 234호, 2022년 2월 3일.
만일 종교 지도자들이 부패에 연류됐거나 반사회적 활동을 했다면 응분의 조치를 하면 된다. 중국정부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교회(기독교인)는 핍박을 받을수록 신앙의 생명력이 더욱 깊이 뿌리 내린다는 교회사의 수많은 기록과 중국 내 학자의 연구논문 내용을. 성경을 불태운다고, 십자가를 철거한다고, 신앙포기 각서를 쓴다고 마음속에, 기억 속에 있는 성경과 십자가, 믿음을 원천적으로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잠시 효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은 원래부터 종교적 신심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을. 중국기독교의 공교회성과 중국기독교인들의 사회성을 현재와 미래의 중국을 위한 잠재적 에너지로 승화시켜 국가와 민족에 헌신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나간다면 서로 양립 가능하다는 점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 중국교회는 고립의 길을 걷지 말고, 비본질에 매달리지 말고 일상의 영성과 삶의 본질에 더욱 집중해 중국사회로부터 진정 환영받는 존재, 즉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해나가기를 기대한다.
  중국선교를 꿈꿔왔던 외국교회와 선교사들은 본질에 더욱 충실하도록 중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을 위한 멘토가 돼야 한다. 주인이나 선생이 되지 말고 언행심사만 봐도 복음을 살아내는 주님의 종 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중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자국의 복음화를 넘어 선교중국의 대로를 향해 좁은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조력자가 돼야 한다. 결국 조직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 중국공산당이 기독교 본질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게 되고 기독교가 곧 애국의 길,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노정에 서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게 될 것이다. 복음은 지식이나 전략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참 생명을 받은 작은 자들의 주체할 수 없는 감격으로 일상과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나눠진다는 점에서 중국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의 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는 우리가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백석, “‘생활신앙’으로 ‘만리장성(중국공산당)’을 넘어서라”, 「웹진 중국을 주께로」 통권 233호, 2022년 1월 4일; 쑨양, “‘기독교의 중국화’와 ‘선교중국 2030’”, 「웹진 중국을 주께로」 통권 161호, 2016년 1월 1일.
결국 한국교회를 비롯해 세계교회는 현재의 중국 상황에 대해 오독 내지 오역하지 말고 지금까지의 중국선교와 선교중국 방식을 곱씹어보고 중국사회와 교회를 이어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후 움직여도 늦지 않다.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을 적용할 수 있는 중국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또한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을 위해 우리는 좀 더 중국공산당과 정부 계산법을 꿰뚫어 봐야 한다.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으로 종교문제를 관찰하면서 종교의 자유와 독립, 자주, 자체 경영 등 삼자원칙이라는 두 가지 기준점을 갖고 국내외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종교사무조례 제정과 확대 적용 등 종교 법제화와 종교의 중국화 작업을 신속하게 진행하고 종교계에 애국적 역량을 배양하고 확대하는 한편 외국 종교의 침투는 막되 광범위한 국제협력을 통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라고 주문하는 것도 이 같은 정책의 일환이다. 국제 테러리즘과 종교 극단주의세력, 민족분열세력 등을 3대 사악한 세력이라고 설정하여 놓고 선택적 대응을 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일부 신앙을 갖고 있는 당원에 대한 관리와 감독에 신중한 것도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한다. 공산당원은 종교 신앙을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무신론, 과학적 세계관을 적극 선전하고 봉건미신을 반대하는 정확한 관점을 선전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종교 관념의 영향을 받거나 사회적인 또는 가정적인 압력으로 일상적인 종교 활동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당의 노선과 방침, 정책을 따르고 당의 기율에 복종하고 당의 업무를 충실하게 감당하는 당원에 대해 단순 단일한 방법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공산주의 신념을 버리고 종교를 독실하게 믿거나 성직자가 된 당원은 탈당을 권고하거나 제명하고 극소수의 종교 광신자들이나 민족분열을 책동하는 당원들은 반드시 출당을 당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세심하게 교육해 그들의 사상과 행동이 점차 종교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방침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교회뿐 아니라 세계교회는 중국의 종교문제와 종교정책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 블루오션 전략을 찾아보는 것도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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