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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교회의 목회 방향 - 한진환 목사(말씀)
한복협  2022-11-15 11:18:22, 조회 : 11, 추천 : 6

                                           황혼에 부름받다




                                                                              한진환 목사(서문교회 담임)




마태복음 20장 1~16절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주인은 왜 품꾼을 오전에 부르고 오후에도 부르고 황혼에도 불렀을까요? 일을 시키기 위해 부른다면 아침에 몽땅 불러서 하루종일 일 시켜 먹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주인은 일을 시키기 위해 부른 것이 아니라 품삯을 주기 위해 부른 것입니다. 그 당시 팔레스타인의 하층민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몹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주인이 품꾼들을 눈에 띄는 족족 불러준 것은 그들의 딱한 형편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저녁 5시에 부름받은 품꾼들은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틀림없이 어설프고 병약하게 보이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러주는 사람이 없지요. 그런데도 포도원 주인이 불러줍니다. 그것은 일 시키려고 부른 것이 아니라 은혜를 베풀기 위해 부른 것입니다.

        그 품꾼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해는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는데 아무도 불러주는 사람도 없이 하루를 공칠 때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고픈 배를 움켜쥐고 있을 어린 것들을 생각하면 정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 시각에 주인이 장터에 나왔다가 자기를 불러줍니다. 품꾼이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죽었다가 산 것 같지 않았겠습니까. 가슴이 북받쳐서 있는 힘을 다해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어느덧 해는 기울고 파장이 됐는데 주인이 자기를 부르더니 한 데나리온을 내어놓습니다. 하루 일당을 어떻게 받느냐고 극구 사양했지마는 주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자네가 한 시간밖에 일 안 했다고 내가 1/8 데나리온만 주면 그걸로 자네 가족이 오늘 어떻게 먹을 수 있나? 아무 말 말고 그것 다 가지고 가게.”

        우리 하나님이 그런 분입니다. 팀 켈러 목사는 하나님을 가리켜 탕부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랑이 헤프신 하나님. 도무지 불러줄 가치가 없는 사람을 부르시고 한 데나리온, 온전한 구원을 안겨주시는 하나님은 탕부 하나님, prodigal God입니다.

        오늘의 비유는 공평, 정의, 분배 그런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1절에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어떻게 들어가는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시작은 우리를 불러주시는 탕부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과 긍휼로 말미암습니다. 구원은 도무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오직 은혜로 베풀어집니다. 구원은 1/8의 구원이 아니라 온전한 구원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감사와 감격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 바쳐 일합니다.

        이 구원의 성격을 분명히 하기 위해 본문은 또 다른 품꾼들을 언급합니다. 불평을 쏟아내고 있는 품꾼들이지요. 주님은 그들을 향해 ‘너희들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는 자들이다.’라고 책망하십니다. 그들의 잘못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들은 공로의식에 사로잡혀있습니다. 그들은 포도원에서 일한 것을 자기의 공로처럼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침 일찍부터 와서 일 다 했어. 우리 아니었으면 포도원의 많은 일들 턱도 없어. 그러니 주인이 우리를 알아서 모셔야 해.’ 일 한 것을 완전히 자기들 공로처럼 생각합니다. 주인이 그들을 불러주었기 때문에 일을 한 것 아닙니까. 주인이 불러주지 않았다면 하루를 그냥 공쳐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부름받은 것이 은혜이지 어떻게 자기들의 공로입니까?

        교회마다 공로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로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자꾸 섭섭해집니다. 사람들이 내가 과거에 수고한 것을 알아주지도 않고 예우도 해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자꾸 섭섭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포도원에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세습을 하겠다고 난리를 치는 것도 결국 ‘이 교회는 내가 키운 내 교회야.’ 그것 아닙니까? 교인이 2천 명만 되면 ‘이 교회는 주님의 교회다.’라고 말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집니다.

        공로가 아니고 오직 은혜입니다. 성 어거스틴의 은총론은 고전 4:7절 한 구절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내 건강, 내 물질, 내 생명, 내 믿음, 내 구원, 그 모든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입니까? 다 주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은혜입니다. 공로 내세울 것이 어디 있습니까?

        또 하나는, 그들은 비교의식에 사로잡혀있습니다. 불평하고 있는 품꾼들은 자기들이 받는 것만 생각했다면 아무런 불평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침에 계약도 한 데나리온으로 했지요, 저녁에 그대로 받는데 불평할 이유가 없지요. 불평은 눈을 돌려 늦게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 받는 것을 보는 순간에 폭발했습니다. “저 친구는 분명히 한 시간밖에 일 안 했는데 한 데나리온 받고 나는 하루종일 일하고도 한 데나리온이고,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비교한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은혜의 세계에는 비교라는 것이 없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만 해도 놀라운 것입니다. 감당하기 벅찬 것입니다. 남하고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집은 돈도 잘 벌고 사업도 잘하고 하는데 나는 이게 뭐야? 비교하지 마십시오.

        꼭 비교하려면 예수 믿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십시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딤전 1:13-14절에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이것은 바울이 30년 전의 일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예수 믿기 전에 얼마나 암흑 속을 헤매며 살았는지를 한순간도 잊지 않았습니다. 30년이 지나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 비참한 삶을 생각하면 예수 믿어 구원받고 사도까지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래서 바울에게는 늘 감사와 감격이 넘쳤습니다. 헐벗어도 감사, 두들겨 맞아도 감사,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이 되어도 감사, 감사가 넘쳤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도무지 부름받을 수 없는 시간, 황혼에 부름받은 사람의 감사와 감격이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공로의식, 비교의식은 다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하게 된 그것 하나만으로도 감격하면서 남은 삶을 하나님 나라 위해 충성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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