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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5 목회자의 은퇴생활-정진경 목사
한복협  2009-06-26 14:43:03, 조회 : 3,087, 추천 : 693

목회자의 은퇴생활
                                                              정진경 목사(신촌성결교회 원로목사)

여러분도 얼마 후에 다 은퇴목사가 될 것입니다.
1. 먼저 생각할 것은 은퇴 목사의 기본자세입니다.
  목회자는 세상의 직업과는 달라서 자천이 아니라 타천입니다. 모세도 아브라함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전부가 다 타천입니다. 이것을 일컬어서 소명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소명에 의해서 나왔기 때문에 연령의 제한은 해당이 안됩니다. 지난번 미국에 가서 보니 거기 몇 교단이 은퇴 연령을 없애버렸습니다. 사립대학의 교수인 경우에도 은퇴연령이 없어져서 건강만하면 80이나 90이라도 건강만 하면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의 경우에는 대체로 70세를 은퇴연령으로 하고 있습니다.
  첫째, 끝이 좋아야 합니다. 모든 일에 시작도 있고 끝도 있는데 시작과 끝 똑같이 중요하지만, 그러나 끝이 더 좋아야 합니다. 시인 괴테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처음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세익스피어같은 사람은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라고 했습니다. 70까지 잘 달려와서 은퇴를 했는데 그 마지막 한바퀴를 잘못 돌면 그 70년 동안의 공적이 다 무너진다는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어떤 유명한 의사가 '자서전을 쓰시오.' 그러니까 난 쓸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니 당신 같은 유명한 의사가 자서전을 왜 못쓰냐'고 했더니 '난 아직도 몇 년 남았는데 그 마지막 바퀴를 내가 거기에 넘어질지 아니면 잘 갈지 모르기 때문에 못쓴다'고 했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한 삼사 년 전인 것 같은데 목사 몇 분이 올라가서 뵈었습니다. "목사님 신망이 좋습니다,"했더니, "아니야, 겉은 보기 좋은데 속은 다 썩었어." 그리고선 "난 지금도 넘어질까 조심해." 우리는 생각하기를 '노인이니까 산에 계시니까 다리가 넘어질까 조심한다고 말한 것으로 생각해서 "아 목사님 건강하신데요"했더니, "아니야, 다리를 말하는 게 아니야. 내가 지금 나이가 많았지만 아직도 마음에 넘어질까 조심해. 마지막 바퀴를 잘 가야 할텐데 염려가 돼." 참으로 훌륭한 교훈이지요.
  인생의 기쁨과 보람은 시작에 있는 것만도 아니고, 어떤 업적을 많이 내는 것만이 아니라 마지막 끝이 아름다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주하는 것이 출발도 잘해야 되지만 마지막 골인을 잘해야 되지 않습니까? 전쟁도 위대한 전공을 얼마나 세웠느냐는 문제보다는 최후에 승리가 문제입니다.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전쟁과 평화"를 보면 나폴레옹 장군이 모스크바 근교까지 거의 다 들어가서 이겼다고 승전가를 부를 정도로 자신했는데 나중에 졌습니다. 진 다음에 그가 내 놓은 말이 무언가 하면 "전쟁은 최후 5분간에 달렸다."는 패전의 격언을 남기고 갔습니다.
  교회를 하다보면 실수할 때도 있고 성공할 때도 있습니다. 비난을 받을 때도 있고 칭찬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교회가 부흥되고 명성이 높아지고 다른 지도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이런 때가 우리에게 제일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문을 가르치실 때에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게 하셨고, 바울 사도도 섰다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해서 일생을 살다가도 은퇴를 하고 나면 은퇴하기 전과 은퇴하고 난 후의 관계가 아주 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많습니다.

  두 번째, 물러서야 할 때 미련 없이 물러설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도자는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바로 인식해야 되는데, 물러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물러서야 됩니다. 이것은 지금부터 여러분이 준비하셔야 할 것입니다.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서지 않고 집착하게 되면 부끄러움을 당하기도 하고 존경심을 잃게도 됩니다. 우리가 은퇴하기 전의 성도들의 존경심과 은퇴한 이후의 성도들의 존경심이 좀 달라집니다. 은퇴한 이후에 성도들이 얼마나 은퇴목사에 대한 인생평가를 해주고 지도력을 인정해주고 존경하느냐, 그들의 관심이 얼마나 오느냐?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역사의 평가는 그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노욕(老欲)의 노예가 되면 그것처럼 추접한 것이 없습니다. 은퇴한 목회자는 이런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지혜이고 자기가 은퇴할 시기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건강이나 지식이나 생명까지도 우리에게 오래 머물러주지 않는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이 우리 곁을 떠납니다. 떠나는 것을 잡으려고 매 달리면 그때는 은퇴생활이 잘못됩니다.

  세 번째, 목회자의 선교사명, 전도사명은 끝이 없습니다. 목회자는 은퇴 후에 새 일을 찾아야 합니다. 얼마 전에 "노병의 믿음"이라는 지미 카터가 쓴 책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무얼 만들어 놓고 하시는 말씀이 "너는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은사와 재예(才藝)를 어디에 쓸까, 어떻게 쓸까를 늘 노력하며 고민하면서 살라."고 자꾸 이야기 했답니다. 자기는 이 교훈을 잊어버리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그는 은퇴 후에 나의 생활의 기쁨은 뭘까 생각해 보았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일주일에 한두번 골프를 치는 것, 아니다. 식사를 하는 것, 아니다. 나는 항상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랑의 집짓기 헤비타트운동의 선봉에 서서 전 세계에 다니면서 수십만채의 집짓는 일을 하였고 그래서 노벨평화상이 주어진 것입니다.

  네 번째, 은퇴한 후에는 우리 사고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봅니다. 일하는 행동 반경은 좁아졌지만 생각은 넓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은퇴한 후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학자의 시각과 예언자의 시각의 다른 점이 뭘까?' 학자들은 가까운데서 길을 찾아 먼 목적지를 향하는 것이 학자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멀리 보고 전체를 봅니다. 마치 우리가 그림을 멀리서 볼때와 가까이서 볼 때 그 그림의 모양이 달라져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처음에 우리가 목회자가 되면 교회가 우선입니다. 개 교회를 맡을 때는 전 관심이 그 곳에 있습니다. 그 다음에 총회장이 되면 교단 전체, 그 다음에 조금 한국교회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은퇴를 하고 나니 첫째 관심이 한국교회입니다.

  요즘 문제가 제기 되는 것이 은퇴목사와 담임목사와의 관계입니다. 그 비중을 볼 때 은퇴목사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은퇴목사는 과감하게 손을 뗀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미련이 남아서 문제가 됩니다. 제가 어느 교회 원로목사 장례식에 갔더니 그 교회 새로운 목사가 그래요. "목사님, 이제 제가 한숨 놨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무슨 한숨을 놨냐고 했더니, "이 어른이 심방을 가도 자기가 앞장서고, 생일 집에 가도 앞장서고, 그래서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이제 그 분이 갔으니 이젠 자기세상이라 그겁니다.
  물려받은 후계자가 내가 하던 목회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지요. 시대가 다른데 같을 수가 없잖아요. 이것이 잘 안돼서 어려울 때가 참 많습니다.
2.  은퇴생활에서 은퇴목사가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
  가장 큰 문제가 설교할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문제입니다. 요새는 건강하게 살 때 70에 은퇴하고 80까지도 건강하거든요. 그런데 평생을 강단에서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밖에 모르는데 은퇴하고 나니 설자리가 없습니다. 설교할 데가 없습니다. 출석할 교회도 없다고 합니다.
  또 한가지는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원로목사로 추대된 경우는 조금 낫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교회에서 은퇴한 목사님들은 교단에서 주는 조그마한 은급비(큰교단은 100여만원, 작은 교단은 5,60만원정도)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사는 분이 70%이상 됩니다. 우리나라는 사회연금제도가 잘 안되어 있지 않습니까.
  교회가 은퇴목사님을 모시고 있다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요새 노인복지에도 관심을 갖는데 가능하면 교회들이 일생을 주를 위해 보내신 은퇴목사님들을 위해 관심을 가지고 조금의 생활비를 도와주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유익이 되고 한국교회에 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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