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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 화해. 평화 -한명수 목사
한복협  2009-06-26 14:58:22, 조회 : 3,082, 추천 : 782

화해. 평화  

=분열과 대결에 비쳐 본 기독교의 가르침=
한 명 수 목사


        우선 화해와 평화를 말할 때 오늘의 한반도를 전제로 하는 것 같은 주최 측의 의도
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지음 진행되고 있는 크게보면 한반도의 문제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조선의 핵문제에 관한 것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계성으로 보면
        우선 남북관계, 한미관계, 북미관계 및 6자 회담 관계등으로 이름지어도 될지 모르
겠습니다.
        아울러 크게 보아 세계문제는 종교, 인종, 이념등, 정치, 경제, 문화등의 문제로서
기독교의 가르침이라고만 말하기 보다는 지구촌 세계인의 문제해결은 대다수의 고등종교에
서 말하는 화해와 용서 그리고 이해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 문제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이 있는가의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우선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논하고 현 상황을 진단해 봄이 어떤가 생각됩니다.

미.소의 각본대로 동강난 조국

        일본의 강압정치로부터 우리나라가 해방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연합국의 승
리일뿐, 해방이전에 벌써 승전국들은 우리나라를 남과 북으로 갈라놓았으며 계획된 저들의
각본대로 우리조국은 38선으로 동강났고 우리민족은 영원히 다시 합할 수 없는 민족처럼
갈라져서 벌써 긴 세월이 흘러간 것입니다.
        2000년의 남측 김대중 대통령과 북측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15 공동선언을 화해
적으로 했다고 하지만 이것 역시 조금은 지나친 표현이지만 꼭두각시놀음 같이만 보여져서
면구스런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같은 표현은 주체적으로 공동선언이 이루워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외교적으
로 이것마저 강대국들의 묵허적인 승인하에 성사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에서 나온 말임
을 이해바랍니다.
        왜냐하면 남한정부와 북측정부의 태생부터가 미국과 소련의 배후세력을 업고 세워
졌으며 어느 것 하나 우리 마음대로 한 일이 없는 것 같아서 모욕스럽기도 하고 약소민족의
한을 토해낼 것 같은 어지러움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우리 문제를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물론 우리 민족의 비극을 남에게만 탓을 돌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조 500년의 사색당쟁이나 이 민족의 비굴스런 사대주의적 조류가 정말 자생적으
로 통일을 이룩하고 통일된 조국을 지켜 나갈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함은 나의 철
없는 착각이거나 오해였으면 좋으련만...  역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
에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지난 일을 뒤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더하게 합니다.
        오늘의 정치현실도 그것을 웅변으로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호남정권이다, 영남
정권이다 하리만큼 선거 때면 지역에 의하여 표가 쪼개지듯 하니 동서가 화합하지 못하고
어떻게 남북이 화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정당들의 모습만 봐도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자민련이나 통합신당이나 다 그렇고 그런것들 같아서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하지 않았나한 생
각마저 듭니다.
        그것은 정치권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단들도 그 분열과 갈등과정을 보면 일반정
치권보다 더하면 더했지 하나도 낫지 않다는데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교파의 핵분열과 교단마다의 내부 갈등 등은 결코 교리적인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
었지만 그 추태와 어두운 구석을 이루 다 표현하기조차 너무 힘든 것입니다.

일제의 한국 침략사

        1876년 한일 수호조약(강화도조약)이 체결되더니
        1904년 한일의정서의 교환은 바로 일본에 대하여 군사 목적에 편의를 제공케 된
것이어서 그때부터 노력동원과 토지를 징발하게 된 것입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이 장악하게 된 것이며
일본은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두어 입법, 사법, 행정의 전권을 장악함으로서 그때부터 이미
나라는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었으며 이 민족은 노예로 전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제 침략에 미국도 한 몫

        8.15 해방은 우리에게 미국을 해방자요 구원자요 수호자로 인식케 한 것이 사실이
지만 일제 침략에 미국도 크게 한 몫을 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월간목회지(2001년 6월호)에 일부 기고하였거니와 여기에 다시 그 내용을 대략
설명하면,
        그 당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포츠담 조약을 주선하면서 태프트 육군 장관을
일본에 파견하여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성사시켰습니다.  그 기막힌 밀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일본은 필리핀에 대하여 하등의 침략 의도를 품지 않고
        2.  극동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일본은 실질적 동맹관계를
확보할 것.
        3.  러일전쟁의 원인이 된 한국은 일본이 지배할 것을 승인할 것 등.

        주변 강대국들의 자국의 유익을 위한 정책을 약소민족의 비운으로 감수해야만 했던
비통한 사실은 역사의 어두웠던 단면임을 잊을 수가 없으며 이 억울하고 분함을 그 어디에
다 하소연하겠습니까!

우리에게 통일조국은 시대적 소명

        조국은 결코 둘일 수 없고 민족은 갈라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7천만 민족의
소원이지만 강대국들의 병정놀음과 국제책략에 강요된 조국분단과 민족의 분열은 약소민족
이 겪는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돌리기엔 너무 비통스럽고 비극이 아닐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합니다.
        우리시대에 조국을 통일하여야 하고 민족이 화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절대절명의 과제이지만 이는 불란서의 드골이 말했던가, "지구는 칼  
끝에 논다"는 힘의 논리 앞에 힘없는 자는 무릎을 꿇어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고 애
석하고 억울하고 이 비운을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그래도 우리는 이 일을 해 내야하고 당해내야 하고 분단된 조국 강토의 통일과 민
족화합이란 역사적 과제인 최후 승리를 위하여 7천만이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소련군은 북쪽에 진주하고

        미군이나 소련군은 점령군으로 남과 북에 진주하였으며 그때의 명분은 일본군의 무
장해제라고 하였지만 이는 외형적 장밋빛 구호일 뿐 점령군의 칼끝은 세계 제 2차대전이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이미 번뜩이기 시작한 것임을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
었습니다.
        소련군은 25군사령관인 이반 엠 치스타코푸를 앞세워 1945년 8월 9일에 한반도를
점령군으로 진주하게 되었고 그 당시에 저들의 진주 명분은 "일본 약탈자를 축출하고 조선
인은 자유민임을 포고령으로 선언"하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군은 남쪽에 진주하다

        그해 9월 7일 미군의 하지 중장이 미 제 24군단을 일본의 오끼나와로부터 이끌고
인천에 상륙하였으며 12일에 아놀드 군정 장관이 군정을 실시하게 된 것입니다.
        해방이후 외세의 원심력과 이념의 갈등으로 민족이 갈리는 격동의 해방공간에서 남
한 땅에는 4개 지도노선이 있었는데 당시의 대표되는 인물로서는 이승만, 김구, 여운형, 박
헌영 노선이었는데 이승만은 유엔을 앞세운 친미노선을 추구하였으며 여운형은 좌우합작과
통일 정부수립을 위해 애쓰다가 바로 그 이유로 한 극우 청년이 쏜 총에 맞아 쓰러졌으며
박헌영은 조선공산당을 재건코저 한바 이란씨의 증언에 의하면 "몽양 여운형이 박헌영과 만
난 지금 조선에서는 프로레타리아 독재보다 민족의 단결과 통일정부 수립을 통한 독립국가
건설 그리고 외세 축출이 급선무라고 강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백범 김구는 민족주의자로서 ① 군사통치의 배격 ② 반외세 반제국주의 ③ 독재의 한국반대
와 통일 쟁취를 그의 기본노선으로 주창하다가 분열 주의자들의 하수인인 육군소위 안두희
에 의하여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저격당해 서거함으로서 조국 독립을 위한 백범의
파란만장한 애국의 길을 멈추게 된 것입니다.

신탁통치는 무기 휴회되고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는 한국의 통일독립을 위하여 5년 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신
탁통치를 하기로 1945년 12월 28일 결의하였으나 당시 민중들은 신탁과 반탁으로 분열되
었으며 소련은 "소련이 조선을 침범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 우호적 민주국가가  되게 함에
있다"고 하였으며 미국은 "비록 아무리 잘 조직되어 있고 아무리 정력적으로 정치활동을 할
지라도 소수파의 한국지배를 저지함에 있다"고 주장하여 결국은 모든 단체가 참여하는 정치
체제를 인정하였으나 그 이후 다시 열리지 않는 무기 휴회로 돌입한 것입니다.

'가쓰라.태프트조약'의 구체안

        이미 전술한바 있거니와 가쓰라.태프트 조약의 구체적인 3개항목을 보면
        ① 일본은 비율빈(필리핀의 음역)에 대하여 하등의 침략적 의도를 품지 않고 미국
의 지배를 확인할 것.
        ② 극동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본, 미국, 영국 등의 3개국은 실질적 동맹관
계를 확보할 것.
        ③ 러일전쟁의 원인이 된 한국은 일본이 지배할 것을 승인할 것 등으로 되어 있는
데 이 조항은 막말로 표현해서 주인의 말도 들어보지 않은 채 저들끼리 나눠 먹기 식으로
협잡한 것으로서 강대국의 자국 유익을 위한 약소국의 강요된 희생은 우리로서는 전혀 용납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용납해서는 안되며 허울 좋은 해방이니 광복이니 독립이니 하는 따
위의 위장된 미사여구(美辭麗句)의 술책에 속아서는 절대로 안될 것입니다.

38선의 조국분단에 한 강대국들의 책임

        우리 강토의 분단이나 동족의 갈라짐은 우리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건이며 이
미 종전 2년 전인 1943년 11월 카이로에 모여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수상 및 중국의 장개석 총통이 한국민의 해방과 독립을 결의한 카이로 선언을 하였으며 그
로부터 2년 후인 8.15해방 한 달 전인 1945년 7월에는 루즈벨트와 처칠, 장개석과 소련의
스탈린 서기장이 카이로 회담의 제 조항을 이행할 것 등을 재확인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하였
으며 얄타회담에서 군사분계선인 38선이 그어져서 조국분단의 비극이 일찌감치 초래된 것
입니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이 확인된 이상 강대국들은 조국분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우리들은 그 책임을 당당하게 끝까지 물어야 될 것입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일본의 계책

        8.15가 지난지 어언 58년의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지금까지 강대국들의 계책은
지속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는 우리 나름대로 어떻게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깊이깊이
생각하여 우리의 뜻을 모아 조국 통일과 민족화합을 위하여 힘써야 할 것입니다.
        1945년 일제가 연합국에 의하여 패망 당했을 때 저들은 원자탄의 폐허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애국심을 갖고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 왔기에 오늘날 세계가 주목할만
한 경제대국이 되었는데 이는 저들의 결심과 의지뿐 아니라 저들의 진실이 뒷받침했기 때문
이라고 할 것입니다.
        세계 어느 시장에 가든지 일본 제품이라면 많은 소비자들은 신뢰를 보내며 구매한
다고 하는 한가지 사실이 일본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입니
다.
        일본인이 이 같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진출을 획책하고 있으며 군국주의 망령이
되살아나서 대동아 공영권의 불씨를 되살리고 세계 지배를 획책하고 있지나 않나 하고 경계
의 눈초리를 멈춰서는 안될 것입니다.
        일본 안에는 60만명 내외의 한국인이 민단과 조총련의 갈등 속에 거주하고 있거니
와 일본은 한인들에 대한 삼대정책을 교묘히 시행한다고 하는데,
        첫째는 동화(귀화)정책이고
        둘째는 분열정책이고
        셋째는 추방정책이라는 것임을 공적으로 확인할 길은 없으나 이에 대한 우리 민족
의 과업이 무엇임을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는바 이것 역시 남북화해요 우리 민족의 대동단결
이 긴급히 요청된다고 할 것입니다.

미.소의 한반도 진주는 국익의 일환일 뿐

        소련이 북쪽에 진주함은 러시아의 남진정책의 일환으로 8.15이후 진주하게 된 것
이며 미국이 남쪽에 진주한 것은 미국의 극동정책의 일환으로 아시아와 태평양권의 세력 판
도를 위한 전초기지의 구축이라고 단언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6.25사변의 배후세력을 밝혀진대로 알고 있거니와 중공군이 6.25전쟁에 대
량참전한 것은 압록강과 두만강에서 국경을 수비하는 것보다는 38선이란 문 밖 멀리서 중
국을 지키고 싶어서였을 것이란 예상을 쉽게 해 보게 됩니다.

동맹과 동족사이에서 갈등

        우리들은 6.25사변을 겪은 사람들로써 미국을 위시한 우방 16개국은 우리가 어려
울 때 도와준 혈맹으로서 절대로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녘의 동포들 또한 한민족임을 잊지 말고 있어야 되고 잊어서
도 안될 것입니다.
        오늘 이 땅에서의 더 큰 문제는 극보수우익적 반통일 세력과 극좌적 친북세력의 남
남갈등적 대결이며 그 중간에서 좌왕우왕하는 의식 없는 군중들의 태도라고 할 것입니다.
        나 개인의 소견이기는 해도 나는 지난번 미국의 이라크전쟁은 반대 입장에 확실히
서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옳은 분석인지는 확언하기 어려우나 전쟁에는 침략전쟁과 방어전쟁 및 예방
전쟁이 있다고들 하는데 지난 미국의 이라크전은 예방전쟁의 성격이라고 하지만 아직 까지
이라크에서 화학무기나 대량 살상무기등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하는 사실 앞에 미국의 예
방전쟁이란 바로 지금 와서 보면 침략전쟁이라고까지 규정해도 지나친 진단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수일전 미국의 대 이라크관계 헌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마당에서 전투병
이 아닌 이라크 복구병으로서 파송해도 되지 않나를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았으며 그보다 한
발앞서 이라크 복구에 동참함이 유엔 회원국으로서의 당연한 의무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9.11테러이후 미국민의 분노를 잠재워야 한다고 하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이라크
의 유전점령을 위해 미국위주의 차원에서 이라크전을 발발 시켰지 않는가를 의심해 봅니다.
        어떻든 우리나라는 미국뿐만 아니라 어느나라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종속관계가 아
닌 상호 평등관계 및 모든 외교관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란 희망을 가져봅니다.

엄격하게 보아 UN도 폭거적

        유엔의 상임이사국등 한나라만 거절해도 다수의 결의도 효능성을 상실케
된다든지 자신들은 핵무기를 한없이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외의 다른 약소국들은 핵을 보
유하면 안된다든지 하는 UN규정이나 핵금지조약등은 원초적으로 상호주의도 아니며 호혜
평등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으로서 마음에 싸이지 않으며 그 이상의 논의를 않음이 좋을 것
같아서 이상 논의를 그치려 합니다.
        
한민족은 하나임을 잊지 말자

        민주주의를 위한 논쟁이나 여야간의 부분적인 갈등은 있을 수 있는 일이거니와 우
리의 통일 조국을 위해서 하나되어야 함에는 일치 단결하여 우리세대의 지상과제인 통일을
기어히 이룩하여야 할 것입니다.
        남쪽의 식구들과 북쪽의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이 살아야 되는데 무엇 때문에
이산가족의 상봉이란 미명 하에 잠깐 만났다가는 기약 없이 다시 헤어져야 하는 것인지 그
벽은 무엇이며 우리를 같이 못살게 하는 그 검은 손은 누구의 손인가를 분명  찾아봐야 할
것입니다.
        그 검은 손은 미국이요 소련이요 중국이요 일본이 아닐까를 세계인의 방관 속에서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주변국들이 우리의 통일 독립을 도와야 한다는 현실적 논리는 역설적으로 진단하여
표현한다면 강대국들이 통일의 저해요소가 아닌가를 지적하는 것은 행여나 잘못된 진단은
아니겠습니까?  
        6.25사변으로 인하여 이 땅이 피바다로 변하고 시신으로 산을 이루고 있을 때 일
본을 위시한 주변국들은 군수산업으로 크게 부강해졌다는 보고는 서글픔을 지나 피를 토해
낼 일이며 지금도 주변국들이 자국의 군수산업 침체로 남과 북을 교묘한 방법으로 자극하고
선동하여 제 2의 6.25가 발발케 하지나 않을까 공연한 염려를 해 보게 됩니다.
        2000년에 남북의 정상들이 모여서 6.15공동선언문을 발표하였고 이에 따라서 이산
가족들이 만났지만 또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하여야만 한다는 사실은 우리 동족들의 문제라
고 하기보다는 이것 역시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국제적 쇠사슬에 얽매어 있는 것 같아
서 민족 자존에 큰 손상이 되는 것 같아 분함을 가눌길 없습니다.
        한민족은 하나임을 잊지 말고 이념과 사상의 벽을 넘고 국제정치의 힘의 울타리를
헐어 우리만의 하나됨을 성취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느 분의 말처럼 동족보다 더한 우방은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
다.
        이 모든 상황들이 이 민족의 장밋빛 이상과 냉혹한 국제 정치의 역학관계의 현실이
란 양대 틈바구니에서 지혜롭게 극복하여야 할 과제라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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