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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 Ⅻ - 김상기 성도
한복협  2016-12-09 16:53:59, 조회 : 1,059, 추천 : 217

                                                                    죽음에서 생명으로




                                                                                                                                              김 상 기 성도
                                                                                                                                                 (광야교회)




저는 아주 어렸을 때, 요즈음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약 2년 동안 교회를 나간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는 크리스마스 같은 절기에 선물을 주었기에 그 선물을 받으려고 교회를 다녔습니다. 교회에서 줄을 잡아당기면서 종도 쳐보고 친구들과 같이 교회마당에서 뛰어다니며 놀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교회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다가 22살 때부터 장사에 눈을 뜨기 시작하며 갈비집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이 있는 경우에는 예식손님도 많이 받고 돈을 잘 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하며 33살에 3억 정도의 돈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시골에 있는 아버지 땅에 집을 새로 지었습니다. 1층은 식당, 2층은 살림집으로 꾸민 40평 정도의 건물을 지어 장사를 계속하며, 36살에는 결혼도 하였습니다. 슬하에는 아들 1명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기자기한 가정을 꾸리고 장사도 잘 되었는데,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붙는다고 하더니 제 주위에 사람들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3형제인데, 카센터를 운영하는 둘째형님에게 2억의 보증을 서주면서 저의 그 동안 벌어 놓았던 돈들이 야금야금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형님의 사업이 망하면서, 그 동안 제가 벌었던 돈과 모든 것도 같아 날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형님은 저 모르게 제 인감도장을 사용하여 제 명의로 대출을 받아 사용했고, 결국은 아버지 땅에 지은 집마저 경매로 넘어갔습니다.
친구들을 좋아하던 저는 4명의 친구들에게 보증을 서주기도 했는데, 그 금액이 8천만원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한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모두 제가 갚게 되었습니다.
처가에서는 직물공장을 운영했는데 저는 아들이 백일 되었을 때 공장에 5천만원을 투자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돌이 되었을 때 처가의 사업이 망하게 되었고, 이런 문제로 자주 다투다보니 집사람과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제가 맡기로 하고 투자한 돈을 위자료로 대신하여 모든 것들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향에서는 창피하여 도저히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고향인 선산읍에서 구미로 밤중에 거처를 옮기고, 그 때부터 아들과 둘이서 살았습니다. 구미에서는 조그마한 중화요리집을 오픈했는데 장사가 잘 되지 않아 가게를 접었습니다. 그리고 호프집을 시작했지만 그것도 잘 안되어서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갈 때 쯤 대구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대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알바를 하면서 공부하였습니다.
아들한테 경제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못 주는 것이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다 망하고 아들에게는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것이 죄를 짓는 기분이었고 도저히 아들 옆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곁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들이 대학교 1학년 때 “아빠가 연락할게.” 라는 메모지 한 장을 남기고서 그냥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내린 곳은 강남터미널이었습니다. 내려서 무조건 보이는 모텔로 들어갔습니다. 4일 동안 밖에도 나오지 않고 방에만 있었습니다. 4일 동안 짜장면만 계속 먹었습니다. 제 짐꾸러미에는 대구에서 구입해 온 제초제가 있었습니다. 제초제도 대구에서 서울의 모텔방까지 이사왔습니다. 뉴스 중에 서울에서는 자살을 하더라도 시체를 잘 치워준 것 같은 뉴스를 본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더라도 서울에 올라가서 죽으려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4일을 계속해서 모텔에서 머물렀더니 여관주인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나가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고해야 합니다.”
5일째 되는 날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서 고심하다가 일단 114로 전화해 보았습니다.
“오 갈 데 없는 사람들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물었더니 컴퓨터에서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텔 컴퓨터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검색을 했더니 광야교회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검색한 전화번호로 광야교회에 전화를 했더니 영등포역에 가까이 위치해 있으니 역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쥐구멍에도 해뜰 날이 있다고 하더니 나에게도 머무를 곳이 생겼구나’라고 생각하며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가 광야교회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그때가 2013년이었습니다.

광야교회에서 이틀 동안 있었는데 진짜 노숙인들(냄새나고 더럽고 모습이 우스운 노숙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상담을 받고, 광야교회에서 매일 매일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설교말씀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음에 조그마한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마음에 임하고 ‘죽으려고 했던 것들이 잘못’ 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을 두고 죽어버린다는 것에 죄책감이 생기면서, 설교말씀을 들을 때 여러가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살아볼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마음에 결단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광야교회에서 지내면서 며칠 동안은 자주 짐꾸러미 속 제초제를 생각했습니다. 언제든지 제초제를 마시고 생명을 끝내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말씀의 은혜가 임하면서 마음에 꿈틀거림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10일이 지난 후 이제는 제초제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등포역 화장실에 제초제를 몰래 가지고 갔습니다. 병뚜껑을 열어서 액체는 변기통에 붓고 병은 발로 밟아서 쓰레기통에 넣어버렸습니다. 마음먹은 대로 새롭게 살고 싶고,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몸도 마음도 다 죽어있던 제가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3개월 동안 매일매일 예배드린 후에 공원에 가서 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몸을 튼튼하게 만든 다음 일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느 날 광고지를 보고 그곳을 찾아가서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그렇게 돈을 벌어서 아들에게 등록금도 보내고 생활비도 보내는 가운데 아들은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아들도 아버지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정말 좋아하고 기뻐합니다.
지금은 제가 다니는 직장에서 사장님이 제 성실함을 인정해 주고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 하십니다.
“제발 오래만 있어 주십시오!”
“제발 건강한 날까지 나간다고 하는 말 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부탁합니다.
저는 10시부터 10시까지 일을 합니다. 중간에 1시간 쉬면서 12시간 동안을 서서 일합니다.

저와 같이 인생을 살다가 어려운 환경과 처지에 부딪쳐서 자살을 생각하고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살고자하는 믿음을 심어주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광야교회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죽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살고자 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광야교회에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후원과 기도로 힘을 실어주시면 더욱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작은 마지막 소망이 있다면 힘닿는 데까지 일을 열심히 하고 퇴직한 후, 광야교회에서 봉사하고 기도하며, 저처럼 굴곡진 시간을 살아온 인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면서 아름답게 생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2년 동안 교회를 다녀보고 그 이후에는 한 번도 교회 문턱도 가보지 않았던 저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더 이상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던 저에게, 이러한 인생의 시련을 통해서 오늘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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