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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 이슬람에 대한 바른 이해와 대처와 선교 - 이재헌 목사
한복협  2017-03-10 16:10:46, 조회 : 911, 추천 : 127

                                                                         이슬람에 대한 바른 대처




                                                                                                                                                이 재 헌 목사
                                               (총회 다종교문제연구위원회 위원장, 범교단 이슬람대책위원회 공동회장, 새과천교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기 까지는 약 300년의 시간이 걸렸고, 대부분의 유럽이 기독교화 되는 과정은 무려 2천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이루어진 기독교화된 유럽이 비기독교화의 과정을 겪은 시간은 불과 4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비단 유럽만이 아니다. 아프리카 그리고 미주 대륙까지 거세게 불어 닥치는 비 기독교화(De-Christianization) 혹은 반 기독교화(Anti-Christianization)의 파도는 이미 파도의 수준을 넘어 쓰나미에 가깝게 무차별적으로 세계를 삼켜오고 있다.  

  다양한 종교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전통적인 우리 문화와 사뭇 다르긴 하지만 이미 국제적으로 나름대로 공인된 듯한 또 다른 한 종교가 우리 사회 속에서 한 부류의 종교로 편승해 들어오는데 뭐 그리 대단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가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매우 심각하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이런 의식은 보편적인 사회 구조적 시각으로 이슬람교라는 한 종교의 특수성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게 아니라면 매우 불순하고 무책임한 혼합주의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미 늦은 감이 많기 하지만 지금이라도 우리는 이슬람이란 종교에 대해 깨어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함이 마땅하다고 보여진다. 이에 교회가 준비하며 감당해야 할 몇 가지를 제안한다.

1. 이슬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우선 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현대 사회는 다양한 문화, 종교, 사상들이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삶의 형태를 모두가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그 속에서 함께 어우러질 수 없는 특징을 지녔다는 그 특수성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이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는 결과를 가져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독교적 선교의 개념은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한 믿음의 고백과 이로 인한 개인의 회심, 그리고 영혼 구원이라는 초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의 선교는 사회 전반적인 제도의 개혁, 곧 한 국가 혹은 사회를 그들이 주장하는 종교적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샤리아 법이 실현 가능하도록 하여 경제, 군사, 문화 그리고 정치적 체계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통합하는 총체적 시스템 구축에 있다.

  결국 이런 본질의 차이는 방법적인 면에서도 우리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우리가 영혼 구원에 집중하고 있을 때에 그들은 이슬람 화된 시스템 구축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결국 그들은 개인의 개종은 물론이지만 국제결혼, 도시 건설, 금융 시스템 구축, 대규모 이민, 인구의 자연 증가, 무역의 증대, 교육과 문화, 그리고 정치 통합을 통한 이슬람 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라는 절대적인 독단적 사고를 가지고서, 이른바 성전(聖戰)이라고 부르는 ‘지하드’(Zihad)의 명령 앞에서 포교를 위해서라는 얼마든지 거짓말도 용인되는 ‘타끼야’(Taqiyya)교리를 사용하여 회유, 미소, 평화적 변장을 서슴치 않고 있다. 하지만 이를 대면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너무나 온화하고 조용하게 그리고 거부감 없이 그들의 체제 속으로 젖어 들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현실에 대한 바른 이해가 급선무일 것이다. 우리 곁에 들어 와 있는 무슬림들과 그들이 생명으로 여기고 있는 이슬람이란 종교가 어떤 것인가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무슬림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형제들이다. 다만 그들이 믿고 있는 신앙은 우리가 가진 신앙과 형제가 될 수 없다. 문화, 경제, 정치의 커튼으로 가려진 막을 걷어내고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본 모습을 정확하게 보아야 한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성도들의 신앙을 인도하는 목회자들에게 현실적인 상황을 직시하며 깨어나는 선지자적 의식을 촉구한다. 그래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탁해진 영적인 혼란과 기준을 잃어가는 사회 윤리적 방황의 파도 속에서 우리 성도들이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알지 못하여 의식 없이 휩쓸려 가는 실수와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슬람의 실체와 그들이 지나 온 역사적 사실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알게 하는 것이 현실을 방관함으로 우리 후손들이 겪게 될지도 모르는 진리를 떠난 암울한 영적 혼동을 막게 하는 최선의 수고이며 의무임을 직시하여야만 하겠다.

  바로 우리 곁에 다가온 이슬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미 학교나 매스컴을 통하여 전달되는 이슬람에 대한 내용들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 이를 바로 잡고 제대로 된 이슬람 알리기에 교회가 앞장서야만 할 것이다. 목회자 스스로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구경꾼 의식에서 벗어나서 바로 우리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를 위협하는 실제적인 영적 대적(對敵)으로 인식하고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성격과 그들의 내면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성도들에게 세밀하게 교육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 무슬림을 향한 사랑의 열정을 회복하자.

  무슬림은 기독교인의 적이 아니다. 무슬림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은 무슬림을 마치 세계 복음화의 장애물로서 반드시 없애버려야 할 거침돌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잘못된 시각이다. 전 세계에 거주하는 약18억의 무슬림들 대부분은 이슬람이라는 문화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 분별을 못하는 상태에서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순진한 피해자들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민족과 혈통과 피부색을 초월할 뿐 아니라 그들이 가진 신앙까지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을 동반할 때 위대한 구원과 행복의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이 이슬람의 종교와 그들의 잘못된 교리를 품자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들의 종교로 인하여 악한 영에게 속아 알라가 참 하나님인 것으로 오해하고서 구원의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하고 있는 영적 피해자인 무슬림들을 사랑과 기도로 품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무슬림들을 미워해야 할 아무런 이유는 없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며, 잘못된 신앙 교육으로 인하여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깊은 어둠 속에 빠져 있다. 그들도 사랑받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들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말은 우리 모두가 이슬람과 무슬림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차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폭행과 살해는 이슬람의 폭발적인 증가와 병행하여 그 반 기독적인 행동과 폭력의 강도도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더욱 더 무슬림 영혼들을 사랑하고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구원을 받도록 힘을 다해 기도하며 우리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어야 한다.

3. 지속적인 선교사 파송과 사역이 필요하다.

  너무나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절대적으로 빼 놓을 수 없는 전략이다. 일단은 많은 선교사들이 이슬람권을 향해 포문을 열어야 한다. 세계 선교의 주역이라고 자부심을 가지던 한국 교회의 모습이 점차 그 힘을 잃어 가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KWMA(한국세계선교협의회)가 발표한 2016년 말 현재 한국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의 수는 172개국 약 27,205명(이중 소속 제외)에 달한다. 이 중에서 이른바 F3(복음주의자 비율 5%미만의 박해지역) 지역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는 전체의 20% 미만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러한 통계는 실제로 전적으로 무슬림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 전략을 가진 선교사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모든 이론은 일단 뒤로 하고 우선적으로 이슬람권을 향해 나가서 만나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꾸란의 원래 내용을 모른다. 꾸란은 7세기 아랍어를 고집하면서 번역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알라가 계시한 꾸란은 문학적 아랍어로 되어있으며 아랍어 자체로써 꾸란을 이해할 때만이 그 의미에 가장 정확히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원뜻을 훼손하고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하여, 타 언어로 번역된 꾸란을 인정하지 않는다. 비 아랍어를 사용하는 독자, 예를 들어 한국인을 위해 한국어로 번역된 꾸란은 ‘한국어 꾸란’이 아닌 ‘꾸란 의미의 한국어 해설’로 불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대부분의 무슬림들 가운데는 꾸란을 정확히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믿는 신자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슬람 선교의 핵심적인 전략이 있다고 보여 진다. 다가가서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된 다음에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것이 영적인 진리를 알고 싶은 욕구를 가진 무슬림 특히 논리적이거나 젊은 무슬림들을 진리의 어둠에서 끌어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21세기의 첨단 과학 장비들을 통해서 홍수처럼 밀려드는 정보를 접하면서 자유세계의 민주적 세계관과 폐쇄된 자신들의 세계관을 비교하며 자신들의 종교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고 고민하고 있는 많은 무슬림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들에게는 사랑의 안내자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자가 아니라 가까이 밀착되는 이웃을 만들 필요가 우선하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수의 선교사들이 이슬람권을 향해 나가야 할 것이다.  

4. 성도들을 위한 이슬람 전문가와 연구 기관, 전문 상담사 양성이 시급하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몇몇 이슬람 전문가들의 사역은 아직도 생소하기만 한 이슬람에 대하여 알리고 교회가 이 문제를 인식하고 깨어나게 하는 일에 급급하다. 그나마 이 중에서도 종교다원주의적 사고를 지닌 분들을 제외하고 바른 성경적 시각으로 접근하여 이슬람을 알리는 분들은 극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한국 교회는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이슬람으로 이탈하는 성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될 것이다. 학업, 사업, 결혼, 취업 등의 이유로 인해 무슬림이 되고자 하는 성도들 혹은 성도들의 자녀들, 가족들을 대면하게 될 것이다. 매우 빠른 속도로 다가오게 될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지금부터 대비하지 않으면 교회는 큰 어려움에 부딪힐 수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일부 이단들과의 어려운 문제들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들을 만나게 될 때에 이들을 상담하고 가르치고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인적 자원들과 교육 자료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해외 선교지를 위한 이슬람 전문가가 아닌 국내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이슬람 전문가를 지금 신학교와 교회가 앞장서서 양성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한국 교회의 내일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5.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천하자.  

  이슬람은 두려움을 가진 종교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는 그 내적인 출발선에서 부터다. 이슬람은 기본적으로 두려움이 이끌어가는 종교이다. 알라의 율법을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가 이들의 영원한 운명을 좌우한다. 알라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이 자상한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이들의 내면은 두려움과 어두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세상을 떠나 만나게 될 사후의 세계에 대하여 그 존재는 믿지만 그 세계에서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막연한 신기루 같은 소망만 있을 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확신은 거의 없는 상태다.

  그들의 내면은 불안하고 불확실 속에 떨고 있다. 그래서 무슬림들에게 있어 세계선교는 테러와 무력을 동원한 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참 자유와 사랑과 용서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들에게는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성령의 자유 안에서 드리는 기쁨의 예배와 무슬림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용서만이 그들을 두려움의 영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다.

  교회가 세상을 염려하며 걱정해야 마땅하거늘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며 걱정한다는 기막힌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제는 더 이상 존재 가치를 잃어가는 기독교의 모습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이미 우리 속에 팽배하다. 하지만 공감대만으로는 안 된다.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미룰 이유도 이런 저런 조건이나 환경을 따질 이유도 없다. 지금 여기 내가 선 곳이 바로 내가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하는 곳이다. 밀려오는 이슬람이란 종교 앞에선 우리가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 또한 하나님 앞에서 나의 나됨을 바로 잡은 거룩하고 온전한 성도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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