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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 이슬람에 대한 바른 이해와 대처와 선교 - OOO 교수
한복협  2017-03-10 16:13:25, 조회 : 1,167, 추천 : 154

                                                                    이슬람에 대한 바른 선교

                                                                                                                                      

이슬람에 대한 바른 이해에 근거하여 무슬림에 대한 바른 선교를 논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제기 1) 국내 무슬림 이주민에 대한 총괄적인 실태조사와 표본 조사 대상의 확대 및 심층 면접이 요구된다. 우리가 만나는 이웃 중에 무슬림이 살고 있는데 이들 이주민에 대한 연구 자료가 빈약하여 그 연구 결과를 전체 무슬림들의 특징으로 일반화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런 연구들이 주로 국내 정착과 혼인에 집중하고 있고 일부 국내 신학대학교에서 무슬림 연구는 이론이 약하고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그 자료를 인용하여 사용하기에 부적절하다. 위 세 지역에 대한 연구물에서도 이슬람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하나도 없었다. 가령 해당 무슬림이 어떤 신앙적 배경을 가졌는지(수피 무슬림, 시아 무슬림, 순니 무슬림) 그리고 그들의 이슬람 성향(온건 이슬람, 과격 이슬람 또는 세속주의, 이슬람주의) 등에 대한 연구 결과는 없었다.  

문제제기2) 이슬람에 대한 체계적인 학습 부재로 이슬람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모자란 이해’ 그리고 ‘그릇된 해석’이 여러 문제를 야기해 오고 있다. 여기서 무슬림들은 잘못된 이해는 꾸란이나 하디스의 내용에다가 자신의 생각이나 종파나 학설을 첨가하여 이슬람을 이해하는 경우라고 한다. 가령, 기독교인들 중에는 기독교의 개념으로 이슬람을 설명하거나 시아파 이슬람 지역에서 사역한 선교사가 순니 이슬람을 시아와 동일시하는 경우다. 그리고 모자란 이해는 이슬람 전체 중 부분만을 알고 다른 부분들은 모르거나 무시해버려서 어느 특정 부문만을 강조한 경우다. 모자란 이해는 국내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오류를 범하는 부분이다. 국내 대부분의 신학대학교에서 이슬람 역사, 문화, 철학, 신학, 꾸란 해석학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바른 개념과 이해는 교리, 실천해야 하는 종교의식, 윤리, 이슬람법 등 네 가지가 고려되어야 하지만 한국 교회나 신학교에서 이런 분야의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슬람을 폭넓게 이해하려면 아랍어와 이슬람문화는 물론 꾸란학, 하디스학, 나스크, 꾸란 해석학, 아랍어 문법과 수사법, 이슬람 (변증)신학, 이슬람 철학, 이슬람 역사, 이슬람 법적 판단의 의도(마까씨드), 이슬람 정치 등을 학습해야 한다.  

문제제기3) 그동안 국내 이주 무슬림의 실태 조사와 전도, 제자훈련의 실제에 근거한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선교 방안이 없었다. 이슬람을 지역별로 그리고 학문 영역별로 심도 있게 연구해 봐야 무슬림들에게 어떻게 접근할지 그 대안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무슬림에 대한 선교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영역별로 나눠서 시행할 수 있다.
(1) 교회 성도들에게 이슬람 문화를 바르게 이해하게 하고 무슬림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방안을 가르친다.
(2) 무슬림 근로자를 고용한 한국인(교인을 중심으로)과 무슬림 유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교수)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문화를 고려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3) 국내 한국인 무슬림에 대한 선교 방안으로서 문서 선교를 강화한다. 그러려면 신학대학교에서 이슬람학 연구가 확대되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이런 연구를 할 만한 기관이 없다.
(4) 무슬림 1.5세대와 2세대를 겨냥한 선교와 7천여 명에 달하는 무슬림 자녀들을 위한 선교에 교회가 관심을 갖는다.
(5) 여러 종교들이 공존하는 한국에서 이슬람 종파간의 분화와 국내 무슬림들의 전국적 네트워크와 국내 무슬림 웹사이트를 면밀히 관측하는 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국내 무슬림 선교에서 우리가 중점적으로 고려할 사항을 살펴보자.

1) “이싸”에 머무르지 말고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국내 이주민에 대한 올바른 선교는 아랍어로 된 꾸란을 사용하기 보다는 성경을 그들의 언어로 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들 국가에서는 성경의 예수를 “이싸”라고 대부분 사용하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서 온 무슬림들에게 “이싸”를 사용하되 제자훈련에서는 이싸에 머무르지 말고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꾸란의 이싸는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고 성육신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한다. 이슬람 전승에는 이싸가 재림한다고 하지만 그가 십자가를 부수고 이슬람을 선포하는 일을 한다고 하므로 성경의 예수와 크게 다르다. 따라서 첫 번째 무슬림 선교 방안은 꾸란의 이싸가 아닌 성경의 예수를 전하는 것이다. 일부는 이슬람의 부정적인 면을 노출시키는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데 이제는 한국에 체류하는 무슬림에게 복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전도지는 이들 국가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사용하고 이들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교회가 준비해 놓는다. 그리고 성경에 나온 예수님이 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전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설교시간에 초대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토론과 대화의 시간을 주어서 무슬림이 궁금해 하는 질문을 답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교회는 성도들에게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고 변증하는 법을 가르치고 교회학교 교재에는 무슬림과 만나서 변증할 수 있는 단원을 삽입해야 한다.  

2) 생각하게 하는 질문을 하라
오늘날 무슬림들은 꾸란을 읽고 혼자 해석하지 못한다. 모스크에 기서 이맘이 해석해 준 말을 맹종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이슬람 세계에서 무슬림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자는 이맘이다. 아랍 이슬람 세계는 극단적인 사상과 타크피르(상대를 무함마드의 종교와 이슬람의 율법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단정함) 사상이 휩쓸고 있는데 그런 극단적인 사상의 원인들 중에는 무자격자가 꾸란과 하디스의 텍스트 해석을 잘못하여 올바른 이해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날 이슬람 세계에서 극단적인 무슬림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지난 2-4세기 동안 이슬람 국가에서 이슬람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내 이주민의 이슬람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얼마나 이슬람 종교를 실생활에서 실천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무조건 꾸란을 외우라고 하여 아무 뜻도 모르고 외운 무슬림들이 이성적인 사고에서 멀어져 갔기 때문에 모스크나 영향력 있는 종교지도자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다. 이슬람에서 “사고”는 종교적인 의무라고 한다. 꾸란은 인간에게 사고하는 능력을 사용하라고 한다. 이런 요구는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그들에게 도전을 줄 수 있는 말이 된다. 무슬림들에게 좀 더 생각하게 하는 질문을 해 보는 것이다.
그 예로 하디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 필요가 있다. 무슬림들에게 하디스는 꾸란 다음으로 매우 중요한 책이다. 무함마드의 언행록인데 하디스는 크게 두 부분(본문과 이스나드)으로 되어 있다. 무함마드의 말을 누구에게 전해졌는가를 따져서 전달계보(이스나드)에서 오류가 없는 “하디스 싸히흐”와 전달 계보에 의심이 되는 “하디스 다이프”로 나누기도 하고 또는 해당 하디스 구절이 자주 여러 명이 전해주었다는 “하디스 무타와티르”,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라는 하디스 마쉬후르, 하디스 내용을 오직 한 사람만 언급했다는 “하디스 아하드”가 있다. 하디스는 이슬람의 두 번째 법적 자료가 되는데 대부분의 하디스는 무함마드의 말에서 온 하디스이고 아하드 하디스이다. 그런데 일부 무슬림들은 하디스의 분류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연결 계보에 초점을 둘게 아니라 그 하디스 본문(마튼)이 옳은 내용인지 그른 것인지를 따졌어야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IS 조직이 하디스 다이프나 하디스 아하드에 해당하는 본문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무슬림들 역시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하디스 대부분이 하디스 아하드에 해당한다고 말하면 무슬림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오늘날 무슬림의 문제들 중에는 꾸란의 해석에서 학자마다 다르고 이슬람 법 원리론에서도 법학자들마다 이슬람 법에 대한 해석이 다르고 무흠 하디스냐 아니냐에 따라 이슬람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다르다. 초기 무슬림들은 꾸란을 해석하기 위하여 당시 이슬람으로 개종한 유대인과 기독교인들로부터 그 지식을 도움 받았다. 그러나 역사를 거치면서 무슬림들은 이런 내용들이 이슬람 교리를 망가뜨린다고 생각하고 이슬람에 맞는 부분만 남기고 이슬람과 차이가 나는 부분은 삭제하라고 가르친다. 이집트나 요르단에서 사우디의 이슬람을 온전한 이슬람이 아니라고 하는데 무엇이 제대로 된 이슬람이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전도자는 배우는 자세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이슬람학자들은 ‘오늘날 무슬림들은 많은데 이슬람이 없다’고 한다.
꾸란 4:80은 “ 라술(무함마드)에게 순종한 자는 알라에게 순종한 자다”라고 하면서 알라가 명령한 것만 무함마드가 명하고 알라가 금한 것만 무함마드가 금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오늘날 지하드는 카피르와 싸우는 것 또는 이슬람을 전하는 것을 막는 자와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IS조직은 기독교인들을 카피르(알라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라고 하고 심지어 동료 무슬림들도 자신들의 이슬람 사상과 다르면 카피르로 몰아 살해한다.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이런 살라피 무슬림들의 공격을 당하기 쉽다. 따라서 개종자는 그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훈련받아야 하는데 이런 훈련 과정에서 반드시 핍박받는 이유들과 핍박을 당할 때 어떻게 반응할지 알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두 번째 선교 방안이다.

3) 무슬림들의 용어와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부터
비엠비(무슬림 배경의 신자)가 새롭게 받아들이는 기독교를 이해를 하려면 그가 이미 갖고 있는 기존의 이해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옛것과 새것을 비교하고 대조하면 새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무슬림이 아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도 좋으나 문제는 각 나라별로 이런 이슬람 용어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무슬림마다 이슬람에 대한 지식과 수준에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슬람 세계에서는 특정한 용어들에 대한 정부의 노력으로 “개념 시정”을 진행하고 있다. 2014년 이집트에서 극단과 테러에 대처하기 위하여 국제대회를 열고 “개념 시정”을 촉구했다. 지하드(카피르와 싸우는 것 또는 이슬람을 전하는 것을 막는 자와 싸우는 것)는 과도하거나 정도에 벗어남이 없이 국가에 적대한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개념들은 모든 무슬림이 동일하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한 마디로 무슬림들이 이슬람 용어에 대한 혼동이 극심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무슬림들이 처한 환경에서 그들이 어떻게 개념들을 이해하고 있는지 특히 성경의 개념과 그들의 정부나 이슬람 종교 기관이 새로 정의한 개념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우리가 현장 연구를 해 보아야 한다. 가령 아랍어 ‘칼라스’(khalāS)는 성경에서는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고려한 ‘구원’이란 의미이지만 무슬림들은 이 어휘를 ‘어떤 곤경에서 벗어났음, 혹은 어떤 일이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적고 있다. 이븐 알라(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설명에서는 아랍어 ‘이븐’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육체적 관계를 통하여 낳은 아들이라는 단어대로의 의미 이외에 아랍인들이 ‘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그 나라나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을 ‘이븐 알발라드’(Ibn al-balad)라고 한다는 것도 언급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세 번째 선교 방안은 무슬림의 개념과 우리의 개념에서 서로 다른 것이 있을 경우 그런 개념에 유의하여 복음을 전한다. 따라서 무슬림 사역자는 이슬람 용어와 성경 용어가 의미와 개념에서 서로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연구해야 한다.
참고로 시중에서 살 수 있는 한글로 번역된 4권의 꾸란 번역 중에서 제대로 번역된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꾸란의 아랍어는 오늘날 21세기 무슬림들이 사용하는 아랍어와 그 의미에서 차이가 나는 것들이 있다. 한글이나 영어로 된 꾸란은 꾸란이 아니다. 꾸란의 의미 번역일 뿐이다.

4) 이성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지금은 이슬람 문화가 병들어 있다. 지금은 아랍의 사상이 위기다. 오늘날 아랍인의 이성을 제한하고 옭아매는 것으로서 문화적 금기 사항을 든다. 문화적 금기 사항은 종교, 정치, 성문제다. 그런데 무슬림들은 이슬람 문화가 건강해지려면 이성적 사고가 먼저 돌아와야 된다고 말한다. 이슬람에서 이성과 관련된 것은 신학, 법원리(우술 알피끄흐)등인데 아쉽게도 많은 샤리아 학자들은 변증 신학과 수피즘 사상에 대한 연구를 거절한다.
그래서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무슬림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논리에 맞지 않으면 우리가 전한 말을 수긍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그들이 이해가 안 되면 금방 거부하고 만다. 그 이유는 이슬람에서 알라는 이성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수피 무슬림은 이성은 잘못될 수 있다고 하여 알라는 마음으로만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수피가 아닌 순니 무슬림은 이성으로 알라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무슬림 신학자는 인간 이성으로 알라의 존재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집트에서 만난 무슬림들은 어떤 사람은 이성으로만 알라를 알 수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만 알라를 알 수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과 이성으로 알라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무슬림이 ‘알라’를 영이라고 하지 않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영으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슬림들에게 새로운 개념이다.
무슬림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비엠비는 삼위일체에 대하여 만족할만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이슬람으로 돌아가버린다. 우리가 삼위일체를 만족스럽게 이해하지 못한 경우 비엠비에게 잘 설명해 줄 수 없다. 성령은 성부 하나님에게 접근하게 하고 점차 예수님을 닮게 한다. 이슬람에서는 자기의 노력을 강조하지만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만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 이것은 무슬림들에게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따라서 매일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매일 충만해 있어야 하고 성령이 우리의 삶을 콘트롤 하게 한다. 기독교인들은 성부 하나님을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갖는데 반하여 이런 개념은 무슬림에게 생소한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기도가 관계적이지만 무슬림에게 의식적이고 의무적인 기도는 알라를 매일 기억하고 그의 은택을 입는 것을 기대한다. 많은 무슬림들은 성령Holy Spirit을 지브릴 천사라고 생각한다.
영생으로 가는 길은 그리스도를 닮은 영성 형성이 이뤄져야 한다. 영성 형성의 바탕은 자아가 죽는 것(death to self)이다. 우리 자신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무슬림들이 꾸란을 해석할 때도 과거에 내려온 전승을 우선으로 하되 전승에 나오지 않는 것은 이성으로 판단하도록 허용한다. 시아 무슬림은 꾸란의 숨은 뜻을 찾고 수피 무슬림은 숨은 지시의 의미를 찾는다. 따라서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들을 상대가 꾸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살라피나 와하비 무슬림인지 또는 숨은 의미를 찾는 시아 무슬림인지 또는 알레고리칼 하게 해석하는 수피 무슬림인지를 알게 되면 우리가 어떤 성경 본문과 해석으로 그들에게 다가갈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네 번째 방안은 국내 무슬림에 대한 선교는 이런 무슬림들의 성향이 무엇인지 먼저 알고 살라피 무슬림, 시아 무슬림, 수피 무슬림 그리고 토속 신앙에 젖은 무슬림에 따라 선교 방안을 달리한다.  이런 준비를 하려면 국내에 “무슬림 제자 훈련원”의 설립되어야한다.

5) 영적 변화로 그리고 영적 공동체로
이슬람에서는 이 땅에 인간의 세계와 진의 세계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진(jinn)은 불로 창조되었고 감각으로 알 수 없다. 사탄은 진의 일종이다. 진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존재하므로 인간의 이성으로도 접근할 수 없다. 이슬람에서는 이 땅에는 인간의 세계 이외에 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 이슬람은 알라가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내(알라)가 나(알라)만을 예배하도록 인간과 진(Jinn)을 창조했다”(꾸란 51:56)고 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슬람의 알라는 인간 이외에 진을 창조했다는 점이다. 무슬림들이 볼 때 이 땅에는 인간이 아닌 진이 산다. 진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꾸란의 72장이 진의 장이다.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진jinn은 인간처럼 태어나고 죽고 부활한다. 무슬림들에게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에 진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이슬람에서 다아와(포교)는 인간과 진에게 알라를 전하고 이슬람 종교를 전하는 것이다. 알라를 전하는 것(알다아와 일라 알라)은 움마(공동체)가 개별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행해야 하는 의무다. 무함마드의 메시지가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은 물론 모든 인간에게 전해지고 인간 세계뿐만 아니라 진의 세계까지도 전해져야 한다고 했다. 다른 종교와 다르게 이슬람은 진을 포교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는 그림자와 같은 동무(까리나)가 따라다닌다고 믿고 사람이 타의에 의해 죽어서 피를 흘리면 그 자리에 남을 해치는 이프리트가 생긴다고 믿는다. 이처럼 무슬림들에게는 사탄 이외에 진. 아스야드(마귀들), 이프리트 등과 까리나가 있다. 물론 부적, 요술, 액막이, 흑주술 등 마법과 미신을 믿는 무슬림들이 있다. 이런 것들이 무슬림들의 머릿 속과 삶 속에 연결되어 있다. 꾸란에는 성령이란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날 무슬림들은 ‘성령’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무슬림에게 선교하는 다섯 번째 방안은 무슬림에게 영적인 변혁이 일어나게 하는 일이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회심한 무슬림에게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랑하고 섬기는 가운데 성령께 순종할 때 영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영적 변화는 기독교 공동체에 동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애쓰는 지역교회를 통하여 일어난다. 따라서 영적으로 건강한 기독교 공동체를 개종한 무슬림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영적 변화transformation는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다른 사람과 사랑의 교제 안에서 성령과 함께 걸어갈 때 생기고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사랑하고 자기희생의 삶을 살아갈 때 변화한다. 영성 형성은  사회적인 문제다.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변화해야 한다. 영성 형성에서 혼(soul)을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과 함께 하실 때만 우리의 영혼이 평안을 갖는다. 성령이 중심이 된 공동체가 개종자에게 필요하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라는 영적 공동체와 그가 살아가는 사회의 공동체가 있는데 새로 개종한 무슬림들은 이런 영적 공동체가 필요하다.

6) 두 개의 정체성이 아닌 하나의 정체성으로
무슬림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그는 이전의 정체성과 다른 새로운 정체성을 갖는다. 무슬림이 아닌 기독교인의 정체성이 새로 시작되면서 개종자는 이 두 가지 정체성에서 혼란을 겪는다. 물론 둘 중 하나의 정체성을 그가 빨리 받아들이면 좋은데 그 결정권은 개종자 자신에게 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기회가 필요하다. 그래서 여섯 번째 선교 방안은 개종자에게 다른 비엠비(무슬림 배경의 신자)들과 친교할 수 있는 공동체 또는 교제 그룹이 필요하다.“개인적으로 볼 때는, BMB가 기독교 사회나 교회로부터 분리된 BMB 가정 교회나 가정교제권을 형성하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BMB와 BCB 교회와의 관계는 두 기관의 지도자들간의 강한 우호적 관계를 통해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서로 연결되면 BMB를 성숙과 성장으로 이끄는 책과 미디어 자료, 디지털 자료와 교사 및 지도자 훈련 교재를 받을 수 있다.”  비엠비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 그리고 가족과 공동체가 갖는 사회적 정체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복음 전도자는 무슬림이 개종한 후에도 그가 가족과 공동체와 연결되는 것을 도와야 한다. 그가 복음을 받아들인 후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무슬림들이 가족과 신앙 공동체와의 결속이 강하다는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비엠비가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 전도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비엠비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데 더 관심을 둘 것은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합류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엠비는 친교fellowship가 없으면 자신의 옛 커뮤니티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조직교회나 비공식 모임, 다른 비엠비와의 만남 등이 있는데 한국 안에서는 이런 모임을 만들어 주기 쉬우나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런 모임에 참여하기 쉽지 않다. 금년도 어느 비엠비가 교회에 들어가 예배를 드렸는데 그에게 이슬람이라고 쓰인 신분증을 교인들이 보고나서 보안원에게 그 형제를 인계하여 결국 해당 이슬람 국가를 떠나게 되었다. 비엠비가 새로 거듭난 것으로 우리가 할 일을 다 한 게 아니라 그가 두 개의 정체성(옛것과 새것)jdentity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비엠비에게 실질적으로 심리적으로 지혜롭게 상담해준다. 실질적으로는 비엠비가 가족과 공동체에 남아있게 하고 가족의 반대에 인내를 가지고 대하도록 한다. 어려움이 닥칠 경우 그들이 가족을 떠나야 하는데 시간이 지난 후에는 가족과의 접촉을 다시 갖도록 한다. 한국에서 생명에 대한 위협은 없다.
그러나 그가 고국(이슬람 국가)으로 돌아가서 그가 개종했다는 사실이 발각될 경우, 심리적으로 비엠비가 가족에게 거부를 당할 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그리고 가족을 떠나면 가족을 얼마나 그리워할지를 리더들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 비앰비가 핍박이 나쁜 게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려면 그가 핍박을 통하여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려는지 하나님의 안목perspective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7) 갈등 해결과 ‘밖으로 나오기’  
누구나 살다보면 갈등을 겪기 마련이다. 무슬림 사회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이슬람 사회에는 갈등을 해결하는‘나쁜 3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복수라는 문화가 되살아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갈등을 회피하고 세 번째는 종교계 등 권력계층을 이용하는 것이다. 많은 무슬림들은 수치 명예 문화에 산다. 그들이 옳고 그르냐는 그가 지역과 국가에서 어떤 사회적 지위가 있느냐와 관련되어 있다.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고 복수를 한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복수가 가문의 문제이므로 용서에 대한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이슬람 공동체적 수준에서 전달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처음 들어온 비엠비는 그 순간을 매우 기뻐하지만 자주 갈등을 겪거나 환멸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갈등을 파괴적인 방식이 아닌 건설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도록 돕는다.
일부 비엠비들은 너무나 두려워서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지 못하는데 그런 경우 그들의 증거와 영적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 비엠비가 좋지 않는 상황에서 나쁜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있다. 경험 있는 비엠비 리더들은 비엠비가 새로운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공개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이 아닌 이슬람 국가에 살 경우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언제 그가 ‘밖으로 나올지come out’그 시기가 달라 지게 된다. 많은 비엠비들은 그들이 신뢰할만한 몇 사람에게 자신의 신앙을 공개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자신의 신앙을 공개하지 않는다. 신앙을 밝히는 것은 점진적으로 비엠비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런데 가끔은 비엠비들이 그들의 신앙을 가족이 갑자기 알게 되었을 때 그가 어떻게 대답할지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비엠비에게는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기도와 지혜가 그들에게 필요하다.
비엠비에게 세례는 매우 중요하다. 무슬림 가족과 공동체는 세례가 배신의 행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세례 받은 자는 옛 가족을 버리고 가족에게 불명예를 가져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 가족과 공동체가 분노하고 일부 국가에서는 비엠비를 살해해 버린다. 따라서 비엠비에 대한 세례는 단순히 영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세례를 언제 주는 것이 적절한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여주시므로 세례를 서둘러서는 안 된다. 세례 받는 장소에 누구를 초대할지를 비엠비와 의논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르단에서는 비엠비들을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주다가 경찰에게 적발되어 그뒤 추방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 안에서 세례를 주는 경우에도 교회적으로 할지, 비엠비의 절친한 친구들만으로 할지, 무슬림 가족들을 초대할지 등등 사전에 의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세례 받는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과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은 유의해야 한다. 특히 비엠비가 물 아래로 내려가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거나 남자 교역자가 여성 비엠비를 세례를 주는 사진을 유포하는 것은 삼간다. 여성 비엠비가 얇은 옷을 입었거나 짝 달라 붑는 옷을 입었을 경우에 찍은 사진이 큰 문제를 야기한다. 세례 증명서도 이슬람 국가에서는 위험하다.
기존 교회와 연계되어 비엠비를 양육하는 것이 좋은 이유는 교회가 갖는 여러 자료와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고 이런 무슬림 제자 훈련을 이끌어갈 준비된 목회자를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목회자들을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지난 20여년간 국내 외국인 예배를 예로 들면 베트남 예배라고 하면 베트남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고 교회에서는 부목사가 설교하면 베트남사람 통역자가 통역하는 것인데 예배 후 선물을 주거나 식사를 하고 내보는 것이 주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무슬림 제자화 과정에서 고려해 보아야 한다.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복음을 그들의 문화 속에서 전해본 한국인 선교사들을 국내 무슬림 선교에 동원하는 일이 점차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아무리 국내에서 전도를 잘한다고 해도 이들 무슬림들이 살던 나라의 문화를 모르면 정확한 의미 전달과 성경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국내 무슬림 이주민들은 종교 및 문화적 갈등, 자녀 교육 문제 등에서 무슬림 부모가 자녀들을 교회에 보내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무슬림 이주민이나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있는 교회에서는 교회 밖에서 이주민을 위한 보육 시설, 청소년을 위한 방과후 교실, 그리고 학교 입학을 거부당하는 무슬림 이주민 자녀들을 위한 대안학교들이 필요할 수 있다.

8) 복음 전도자와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동안 한국 교회는 이주민들의 복지와 인권에 많은 신경을 써 왔다. 그런데 무슬림 개인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힘들다. 교회가 복지와 인권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비엠비가 그룹이 되어 함께 모이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리고 이런 그룹이 성숙한 리더 하에 하나가 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비엠비 그룹의 좋은 리더십이 정말 중요하고 또 소그룹을 통한 가정 교회가 이슬람 국가에서 더 적절한데 이런 소그룹을 국내에서 비엠비가 체험해 보는 것이 장차 좋은 리더가 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비엠비가 고국에 돌아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전도자로 성장하려면 국내에서 잘 훈련받아야 한다. 각 나라의 언어별로 체계적인 양육 교재가 단계별로 제작되어서 신앙 성장과 영적 성숙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내에 체류하는 결혼 이민자들은 언어 문제, 경제 문제 그리고 외로움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 사실 미국에서도 기독교 교인들이 간혹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데 그 이유를 물으니 영적 필요와 사회적 필요를 교회 공동체에서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엠비를 위한 공동체적 제자훈련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고려된다.
(1) 성령이 인도하는 예배 공동체에 속하기 (2) 성숙한 신자에게 멘토를 받기
(3) 개인별 및 집단별 성경 공부하기 (4) 복음 나누기 ; 비엠비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여 그의 세계관과 인격이 변한다.    (5) 영적 은사를 사용하기

비엠비에게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고 사람마다 은사가 다르니 서로 섬겨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은사는 공동체 안에서 겸손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도 알려준다. 아홉번째 선교 방안은 BMB가 다른 사람을 전도할 수 있도록 양육되고 자신의 은사를 겸손히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한다. 무슬림들은 무함마드의 삶을 닮고자 남자는 수염을 기르고 여성은 무함마드의 부인이 썼다는 히잡이나 니깝을 쓰고자 한다. 회심한 자들은 무함마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한다.
BMB는 기독교인의 삶을 유심히 살핀다. 따라서 우리의 삶이 그들에게 본이 되는 것이 우리의 많이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가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결하고 다른 사람에게 용서를 해 주는 것을 비엠비가 관찰한다. 제자 훈련하는 “책”이 아니라 그 “사람”을 배우는 것이다. 비엠비에게 제자 훈련을 하는 리더는 아래 네 가지가 필요하다.
(1)비전: 배가와 성장에 대한 비전 (2) 부르심: 무슬림사역에 대한 부르심 (3) 기도생활: 기도와 금식 (4) 훈련: 실제 비엠비 사역의 경험을 갖고 새로운 비엠비 그룹을 인도할 방법을 안다.  
대부분 학습자는 성인이므로 그들이 인생 경험이 풍부하여 토론 시간에는 리더가 그들의 의견과 경험을 묻는다. 그들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위기가 오면 하나님 중심의 태도로 그들이 그런 위기를 직면해 나가게 돕는다. 매주 한번 이상 만남 이외에도 사적인 만남을 갖고 같이 식사하거나 노는 시간을 갖는다. 그들은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반응을 지켜본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제자를 만든다. 과거 어느 때 보다 지금 무슬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데 10명 중 8명은 다시 무슬림으로 돌아간다. 제자 훈련 없는 전도는 열매가 제한된다.

9) 비엠비 제자화를 위한 실제적인 경험을 가진 리더가 필요
지금까지 이슬람권 선교사들이 무슬림 상황 속에 들어갈 때 그들에게 이렇다할 선교 신학이 없었다. 그 중의 하나는 이슬람권으로 파송된 선교사들이 신학은 공부했으나 무슬림 선교 신학을 배운 적이 없고 성경을 주해하는 실력은 강하나 무슬림 상황 속에 어떻게 성경이 이해되는 지에 대한 관심은 크게 뒤떨어져 있었다. 우선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국내 교회와 신학교, 선교 단체가 무슬림 전도를 바르게 할 수 있도록 신학자들 간의 연합된 연구와 무슬림 전도학, 무슬림에 대한 선교신학이 정립되어야 한다. 무슬림 배경의 사람들이 기독론을 이해하고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 복음적으로 효과적인 자료가 우리에게 있는지를 확인해 봐야 한다. 가령 BMB에 대한 예수님의 부활, 신성, 성육신에 대하여 잘 설명한 책들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삶, 인격, 사역 등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가능하면 추상적인 논리는 피하고 비유, 스토리, 예화를 사용한다. 내러티브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스토리는 마음에 더 많은 감동을 준다. 성경의 어휘나 개념들의 성경적 쓰임을 주의한다. 신학화 과정에서는 조직 신학, 신론, 기독론, 인간론, 성령론, 교회론, 구속론, 종말론, 성경 해석학 등을 고려한다. 무슬림을 위한 선교 신학을 위한 진리의 첫 번째 점검은 성경에 부합되어야 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다.
탈서구 신학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 제자훈련은 서구의 기독교인을 만드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문화의 눈먼 부분들을 바꿔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죄성으로 얼룩진 문화의 부분들을 도전한다. 서구의 신학으로 인하여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할 때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는지 살핀다. 서구 신학이 서구를 위한 적절한 신학이라는 것을 인정하나 비서구적 상황에는 서구 신학이 절대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될 진리가 아닐 수 있다. 예를 들면 무슬림들이 거부감을 갖는 이삭과 이스마엘의 문제, 이스라엘의 문제 등은 성경 본래가 갖는 의미와 해석이 필요하다. 따라서 무슬림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경해석학을 통달하고 있어야 한다. 한국 교회 안에서 성경을 해석한 것이 때로는 성경 본문이 본래 의도하는 뜻과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이었다가 기독교인이 되었으므로 두 얼굴이 한 얼굴(기독교인)로 개종자가 스스로 결단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고 제자화를 계속하는 것이다.
무슬림 문화에는 우리 문화와 공통된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이슬람 안에서도 종족마다 지역마다 또는 사회 경제적 계층에 따라 문화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슬림들은 가끔 그리스도를 영접한 뒤 그들의 옛 문화를 거부한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면 장기적으로 심리적 건강을 고려하면 옛 문화의 일부는 새로운 문화와 통합시키는 것이 낫다.
이집트 알씨씨 대통령은 지금 이집트인들이 결혼 초기 5년 안에 40%가 이혼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부인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이혼에 대한 구두 선언을 막는 새로운 법을 만들라고 국회에 요청했으나 순니 이슬람의 최고 종교기관인 알아즈하르는 이를 거부했다. 그는 소녀의 할례를 방치한 부모를 처벌하고 미성년자와 혼인을 막고 성희롱을 금하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무슬림 남자 중심의 이혼 선언 방식을 법원에서 부부가 이혼 절차를 진행하도록 현 제도를 바꾸라고 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남성 무슬림들의 이런 태도는 이슬람이 잘못된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간의 심층적인 연구를 계속하면 성경과 기독교가 이슬람과 꾸란과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한국과 이슬람 국가에서 무슬림에 대한 바른 선교와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서는 무슬림에 대한 선교 신학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10) 무슬림 사역자를 위한 가이드라인
무슬림 사역을 하는 리더들이 필요한 가이드라인은 무슬림을 위한 선교신학이 정립이 된 후에 BMB를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훈련하고 무슬림의 용어와 개념, 문화적인 이슈들을 익힌다.
-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기
-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
- 성부 하나님
-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께 순종하기
- 하나님과 대화하기(기도)
-  하나님 말씀, 성경
-  그리스도의 교회 안의 지체
-  두 커뮤니티(이슬람 커뮤니티와 기독교 커뮤니티)
-  박해의 원인과 박해에 대한 반응
-  남편과 아내(박해 이후 또는 성경에 따른 부부)
-  갈등 해결하는 법
-  복음 증거하기
-  세례
-  하나님 중심의 삶(이슬람의 ‘바른 길’과의 차이)
-  사랑의 법
-  금식과 나눔
-  운명론과 마법(해당 무슬림이 갖는 이슬람의 특징적인 내용)
-  서로 섬김
-  하나님 나라와 영적 순례
   무슬림이 개종하고 나서 겪게 되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위와 같은 제목들을 선별한 것이다. 불필요한 핍박은 비엠비가 지혜롭게 피하도록 돕는다. 비엠비는 기존 가정과 가족과 문화를 떠나면 외로움과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다는 박탈감을 갖는다. 더구나 가족들의 직접적인 박해를 당하고 수치 문화가 비엠비들을 거부하게 만든다. 이들이 기독교 신앙으로 아직 완전한 이해가 덜 된 상태에서 그들이 항상 함께한 공동체를 잃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비엠비가 함께할 공동체가 매우 중요하고 그의 영성 형성과 정체성 형성은 매우 중요한 주제다.  

11) 비엠비를 위한 제자 훈련에서 유의사항
비엠비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와 가족과 공동체가 갖는 사회적 정체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가족과 공동체와의 연결이 유지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엠비는 가족에게 공격적이지 않고 쇼크를 최소화하게 하는 어투로 말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할 수 있게 비엠비에게 강력하고 친밀하고 관심어린 가족과 커뮤니티(교제 그룹)를 만들어 주도록 힘쓴다. 예를 들면 중동은 공동체 정체성이 서구보다 강하므로 서구식 개인적 제자훈련 방식은 조정되어야 한다. 기존의 제자훈련 교재가 해당 이주민 무슬림개종자의 상황에 맞게 재조정되어야 한다. 요르단과 이집트는 비엠비 교제 그룹이 가정교회나 가정 휄로십을 우선하지만 프랑스의 비엠비는 기존교회와 통합되어야 한다는 사람들과 비엠비 자신들의 독립된 모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들로 나뉜다.
두 번째, 비엠비에 대한 제자훈련에서 주된 도전은 기독교적인 삶의 영적 부문이다. 비엠비의 영적 성숙은 공동체 안의 다른 성도와 교제를 통하여 그리고 성숙한 제자 훈련자의 개별적인 멘토를 통하여 그리고 비엠비 자신의 기도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지속된다. 따라서 리더는 비엠비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친밀감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따라서 비엠비를 위하여 성령이 중심이 된 공동체 spirit-honoring community가 필요하다. 비엠비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성령에 의한 내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갈 때 성화가 일어난다.
무슬림 전도와 비엠비 제자훈련에서 유의할 사항은 첫째 무슬림을 진정으로 사랑하라. 둘째, 비엠비 개척 팀에 헌신하라. 셋째 무슬림의 필요에 맞게 복음을 나누는 방법을 개발하라. 특정 커리큘럼이 아닌 비엠비 질문과 필요에 따라 제자 훈련 교재를 마련하라. 넷째, 비엠비 그룹에 소개하기 전에 일대일로 비엠비를 제자훈련하라. 훈련자는 비엠비 그룹을 인도할 리더를 훈련시키고 비엠비 그룹이 배가하면 작게 나누라.
결국 비엠비는 성숙한 제자에 의하여 멘토를 받으며 제자화된다. 비엠비는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여 그의 세계관과 인격이 변화한다. 비엠비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신앙을 나눠 전도자로 살아간다.

12) 무슬림 사역을 위한 선교학적 모델
아랍 기독교인과 아랍 무슬림을 동시에 가르쳐 본 필자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아랍기독교인과 아랍 무슬림이 사용하는 동일한 어휘가 서로 다른 의미와 개념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꾸란의 이싸가 갖는 “언외의 의미(표면적 의미에 보태진 의미)”(connotative)를 찾으면 꾸란의 이싸에는 성경과 기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무슬림들에게 익숙해져 있는 어휘들 중 기독교 신앙에 관한 어휘들은 기독교에 대한 무슬림의 잘못된 인식을 통하여 걸러지므로 무슬림들이 왜곡된 개념을 갖는다. 만일 어느 기독교인이 기독교 교리를 증명하는데 꾸란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그 말을 듣는 무슬림은 이 기독교인이 꾸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꾸란이 말하는 기독교는 진정한 기독교가 아니다.
꾸란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고 무함마드는 성경의 선지자가 아니다. 서구 선교학자들이 꾸란을 아랍어로 읽을 수 있었더라면 낙타전도법이나 내부자 운동의 일부 주장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꾸란의 어휘가 문맥에 따라 여러 의미들을 갖는다는 것을 주목하게 되었고 또 꾸란의 해석학적 방법에 따라 무슬림들 안에서 서로 해석이 달랐다. 살라피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 시아 무슬림은 숨은 의미, 수피 무슬림은 숨은 지시의 의미(allusion)를 추구했다. 따라서 꾸란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해석에서 이슬람 특유의 표현을 기독교적인 의미로 채우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꾸란이 거부하는 기독교는 정통적인 기독교가 아니었다. 그런데 만일 꾸란이 기독교에 대하여 부정확한 진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무슬림이 인정한다면 그는 곧 꾸란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적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해왔다. 그 예로 성경에서 무함마드에 대한 예언을 찾아내고자 했다. 꾸란 61:6 “그때 이싸 븐 마르얌이 말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보냄을 받은 라술(사자)이고 내 이전에 온 토라를 확증하고 내 다음에 오는 라술, 그의 이름은 아흐마드가 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무슬림들은 이 구절에 나오는 ’아흐마드‘를 무함마드와 동일시한다. 무함마드와 아흐마드는 어근(H,m,d)이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으나 다른 사람인데 무슬림은 아흐마드와 무함마드가 같은 인물이라고 한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지지하기 위하여 꾸란을 인용하는 것은 무슬림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성경에서만 초자연적인 그리스도와 구주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엠비에 대한 제자훈련을 담당하는 사람은 꾸란에서 7세기 무함마드가 해당 어휘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그리고 당시 청중들이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케네스 크래그kenneth Cragg는 “ 우리가 꾸란의 참 의미 즉 그것을 본래 들었던 자들에게 전달하고자 의도했던 실제 의미에 도달해야 한다면 그것은 이슬람 초기 아랍 사회에서 우상 숭배에 대항한 무함마드의 상황으로 되돌아가 해석해 봐야 한다”고 했다. 그 예로 꾸란의 개경장(1장)에 나오는 “올바른 길” 또는 “곧은 길”을 성경에 나오는 “곧은 길”이나 “바른 길”과 비교할지 몰라도 실제 개경장에서 이 어휘는 “이슬람”을 가리킨다. 또 무슬림들이 이슬람은 “관용”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이슬람 국가 안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관용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오늘날 아랍 개신교, 정교회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반다이크 성경 번역은 꾸란이 사용하는 야흐야, 이싸 등을 피하고 시리얀(수르얀, syriac)어를 사용하였고 그들  중 일부는 아랍어에도 존재하지만 매우 다른 의미를 가졌다. 결국 오랜 세월 무슬림들이 사용하지 않는 어휘들을 교회가 사용하면 무슬림과 기독교 간의 신학적 소통에 어려움을 주었다. 기독교인들은 꾸란의 문체를 사용하여 꾸란 스타일로 성경을 번역해 보았으나 무슬림들이 이슬람 땅에서 그런 번역본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이런 문제는 교회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변절을 예방하기 위한 것인데 이런 장벽이 무슬림에 대한 복음전도에 방해가 되고 말았다. 기독교인과 무슬림 간의 의사소통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1) 꾸란은 아람어나 시리얀어를 사용한 기독교인의 어휘들을 일부 흡수했다.
(2) 역사가 흐르면서 중동의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아랍어로 말하게 되었다.
(3) 꾸란과 이슬람에서 차용한 아랍어나 시리얀어의 어휘들은 개념 뿐만 아니라 음성적으로 변화되었다.
(4)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아랍 기독교인들은 이제 모두 아랍어로 말하게 되었다
(5) 아랍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의 용어가 의미에 있어서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이슬람 용어의 사용을 거부하고 시리얀어의 어휘들을 아랍어로 가져왔다.
(6) 아랍어 성경번역본들의 상당수는 이슬람 용어를 거부해 왔다.

그러나 무슬림에 대한 올바른 선교는 성경에 기초해야 한다. 해석학적 접근법은 꾸란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성경에서와 마찬가지로 꾸란에 있는 한 문단의 의미는 문맥 안에서 그리고 문화적 배경과의 연관성(아스밥 알누줄) 속에서 분석해야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꾸란에 대한 해석은 무슬림 공동체가 어떻게 꾸란을 해석하는지를 먼저 고찰해 봐야 하고 꾸란과 그 해석학적 전통에 따라 살아가는 무슬림 공동체가 번역과정의 핵심이 된다. 따라서 필자는 지난 몇 년간 꾸란의 의미와 해석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종종 어떤 어휘가 이슬람적 배경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러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슬림들은 성경의 메시지를 본래 의도된 대로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여 복음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갖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해석학과 꾸란 해석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무슬림이 새신자가 되는 것은 다른 종교인이 새신자가 되는 것과 구별되어야 한다. 비엠비는 구원의 확신을 위하여 아래와 같이 일대양 양육이 필요하다. 첫째,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등과 성경에 대한 기초를 쌓아야 한다. 기독교 교리에서 여전히 교정이 필요한 여러 이슬람적인 개념을 그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새신자가 성경읽기, 성경 공부, 성경 암송, 기도와 친교 등 자신이 시간을 내서 참여해야 한다. 셋째, 국내 무슬림 사역자들은 서로 네트워크를 가지고 이중적인 참석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각자가 어디서 어느 정도 제자화되어 가는지 정보를 공유한다.
비엠비를 기존 교회 안에 통합시키는 것이 좋은지 가정교회로 독립하는 것이 좋은지 국내 무슬림 사역자들이 논의해 봐야 한다. 이슬람 국가에서 온 무슬림들이 문화적으로 교회가 처음 들어가기가 쉽기 않다. 더구나 기존 교인들이 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잘 모른다. 새 신자의 영적 성숙과 따뜻한 친교를 위한 상황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가정교회는 무슬림이 고국으로 돌아가 다른 무슬림에게 전도하고 케어하는데 아주 효과적일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슬림들은 주로 가정 중심으로 자주 모이고 가정은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고 따뜻한 친교를 돕기 때문이다. 가정교회는 새신자에게 새로운 친교와 공동체를 개발해주는데 도움을 주고 새신자가 다른 무슬림 친구를 전도할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다. 가정교회에서 예배는 평신도가 인도하므로 그들의 은사를 발견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참석하게 되고 또 새신자 개인의 필요를 금방 알고 신속하게 채워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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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7  2017.2. 한국교회 신앙의 선배님들을 기리며... - 전병금 목사(응답)    한복협 2017/02/13 181 959
696  2017.2. 한국교회 신앙의 선배님들을 기리며... - 이정익 목사    한복협 2017/02/13 184 878
695  2017.2. 한국교회 신앙의 선배님들을 기리며... - 한진유 장로    한복협 2017/02/13 167 872
694  2017.2. 한국교회 신앙의 선배님들을 기리며... - 최복규 목사    한복협 2017/02/13 187 935
693  2017.2. 한국교회 신앙의 선배님들을 기리며... - 김명혁 목사    한복협 2017/02/13 176 891
692  2017.2. 한국교회 신앙의 선배님들을 기리며... - 김상복 목사(말씀)    한복협 2017/02/13 174 901
691  2017.1.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 김영한 박사(종합)    한복협 2017/01/16 196 933
690  2017.1.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 허문영 박사    한복협 2017/01/16 208 985
689  2017.1.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 권오륜 목사    한복협 2017/01/16 194 914
688  2017.1.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 최칠용 목사    한복협 2017/01/16 198 989
687  2017.1.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 이철신 목사(말씀)    한복협 2017/01/16 209 1012
686  2016.12.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 Ⅻ - 호티뚜엣스엉 자매    한복협 2016/12/09 314 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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