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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6. 남북의 화해와 대북 인도적 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 도재영 이사장
한복협  2017-06-12 14:07:10, 조회 : 765, 추천 : 99

                                              고려인 강제이주 80년의 재조명과 동북아 화해





                                                                                                                                                       도 재 영
                                                                                                                              (사)동북아평화연대 이사장
                                                                                          고려인 강제이주80주년 “기억과 동행”위원회 상임대표




탈북인 약 3만명, 고려인 약 4만명, 조선족 약 70만명
한국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 희망과 꿈을 갖고 살고 있다.
이들에 대한 배려, 사랑의 실천과 특히 북한주민들에게는 끊임없는 인도적인 지원은 더 활성화시켜야 한다.
오늘날 한반도 운명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앞으로 중장기적으로 주변4강들이 신제국주의로 회귀하는 징조로 인하여 비참한 형태가 되는지, 단군조선의 홍익민주주의 영광을 이어받고, 문화, 경제, 정치적인 세계 중심국으로 가는 기초를 다질 수 있는지 분기점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분단극복에 의한 ‘G7 통일한국’ 건설이다.
한국 대외정책의 3대 요소는 대 중국경제 의존도, 북한의 핵개발, 한미동맹의 강화 등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출구로서 러시아의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보유는 서방의 기존 대북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고, 더 중요한 것은 북핵개발에 직.간접으로 간여한 핵종주국인 러시아와의 협력과 우호증진이 세계평화와 모두의 안정에 큰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러시아에게 미.중 사드문제 해결의 지렛대 역할을 기대해 본다.
역사적으로도 구한말(1896년) 고종의 아관파천은 서세동점의 이권쟁탈과 일제병탄을 저지하기 위한 배수진이었다.

한,러,중,미,일은 북한의 개혁, 개방전략 일환으로 2선(2국경선), 3점(한반도, 중국, 러시아 국경)의 권역별 경제블록을 구축하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 이런것이 동북아 공동체이고 세계평화와 번영의 중심이 될 것으로 세계인은 주목하고 있다.


근대사의 한국과 4강 세력간의 이해관계 요약

           연도                      내용 요약
1864   한인(조선인)연해주 이주시작(약 13가구 64명). 한.러정부간 묵시적 양해
1884   한려 통상조약
1894   청일전쟁(동학혁명을 소탕, 청나라군 지원요청, 일본군 일방적 참전,
        한반도에서 중일전쟁터 제공, 일본승리
1896   아관파천(고종 러시아 공사관 피신)
1905   을사늑약 강제체결, 하와이 등 대거 농업이민, 러일전쟁, 일본승리
1906   연해주 고려인 항일투쟁 시작
1907. 7.  카쓰라테프트 밀약(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한반도와 대륙을 갖기를 양해하는 미일간의 조약)
1917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제정러시아 일본지원군 요청으로 혁명군 진압(1918),
        고려인 양진영 지원군으로 분열시작점이 됨
1917   대한국민회의(전로한족중앙총회) 설립, 1919 상해임시정부와 통합
1919   국내 3.1 독립운동 만세 사건, 상해 임시정부 수립
1921   혁명군과 고려인 독립군 연합, 대일본군 격파 전승탑 건립(한러 최초연합군 작전
         - 러시아 브리야트자치공화국 수도 울란우대시)
1931   만주사변(일본이 1932년 만주국 건국, 1945년까지 일본의 괴뢰국으로 존재)
1937~38  러시아 주재 독일 농업 이주민은 러시아 동쪽 옴스크시 근교로 이주
             (1939년 2차대전 독일침공 대비)
1937.7. 7.  중일전쟁 발발(일본이 노구교사건을 빌미로 침략,
             1939 일본이 선전포고 없이 미영토 진주만을 폭격함으로 2차대전으로 확전)
1937. 9. 9.  연해주 고려인 약 17만명 쏘비에트 중앙아시아(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강제이주
               (혹은 정착이주) (1939년 2차대전 잠재적 적대국인 일본침공 대비)
1939  2차세계대전, 독.일.이탈리아 동맹국이 됨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미국(진주만) 공격,
1943.11.28.~ 12.01 이란 테헤란 회담(미,쏘,영)중국에 있던 일본 관동군 공격으로  기본합의했으나,
                          독일군 침공방어로 공격시기 지연됨.
1943.11말~12초  카이로 회담 (미.영.중)한반도 독립합의
1945.02.04.~02.11  얄타회담(미.쏘.영) 세계 2차전후 남한은 미군주둔. 북한은 쏘련군인 주둔)합의
1945.07.17.~08.02.  포스담 선언(미.쏘.영)
1945. 8. 7.  이란 테헤란 회담때 합의한 쏘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만주 일본 관동군을 10일안에
                 강제 항복받음.
1950. 6. 25.  북한의 남침으로 6.25 발발, 러시아산 탱크, 전투기, 군사고문단 북한지원
                  한국은 미국 주도한 UN군이 한국 지원, 한국을 재탈환 및 경제건설,
                  민주화 지원, 중공군은 전쟁말기에 한반도 남침 가담
1952. 04.28  샌프란시스코 미.일 평화조약(6.25전쟁중), 쏘,중공 동맹(대륙세력과 대치용(해양세력)
1990  한러수교 (노태우 대통령 북방진출 결단) 러시아에 약30억불 현금원조
1992  한중수교 체결


이상과 같이 근대사를 살펴보면 4대강국과 한반도는 각국의 국익에 따라 음과 양이 바뀌었음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1945. 8. 15. 항복한 일본은 오히려 해양세력으로 편입되어 경제적 부흥을 이루게 되고, 한반도는 외세의 국익에 의한 분단의 아픔을 겪어 오늘까지 지구상 유일한 세계 2차전쟁의 유산이 되었다.

한반도 식민통치 마지막 총독 아베노부유끼의 고별사를 주목해 보자.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은 제정신을 차리고 위대했던 옛 문화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으로 본다. 우리 일본군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시킨 결과,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하고 서로 비난하면서 삶의 갈등으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결코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금년은 고려인 강제이주 80년을 맞는 해이다.

1937. 9. 9. 스탈린은 연해주에 정착하여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 17만명을 강제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지금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지역이며 그야말로 허허벌판 황무지로 내몰았다. 이주과정에서 수천명이 사망하였고,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한국인들은 갖은 이유를 몰아 이주 전후과정에서 처형당하였다.

당시 쏘련의 사정으로 보자면 잠재적 적대국에 대한 대비책으로 서쪽 볼가강 근교에 살던 독일인은 동쪽의 옴스크로, 동쪽의 고려인은 서쪽의 중앙아시아로, 유태인, 폴란드인들도 강제이주를 시켰다. 그들의 입장으로 보면 나라없는 조선인은 일본인이었고, 일본의 첩자일 가능성도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쏘련 최북단(북극해) 탄광지역.즉 한파지역이 아닌 중앙아시아 옥토인 황무지에 농업개척과 조선문화전달등을 고려하여 상호발전을 위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쏘련군은 1945.08.07.에 대일본국 선전포고후 고려인장교,병사와 우리독립군과 함께 전쟁과정에서 아무르쪽과 연해주쪽에서 포위하여 장군 150명.장교,병사 약 60만명을 포로로 잡았고 일본은 드디어 항복하게 되었다.
만일 이런 공격과 포로를 잡지 못하였더라면 일본군 패잔병의 잔인성과 당시 군사력으로 보아 수 많은 중국인과 조선인들에게 보복성 죽음과 각종 파괴로 큰 재앙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이가 많다.(모스코바주 고려인 문화자치회 사무총장 KIM Eduard N과 2017.06.12. 동북아평화연대 사무실에서 인터뷰.  통역 : 강안젤리나)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70여년간 조상들이 가꾸어 놓은 땅을 하루아침에 빼앗기고 중앙아시아 벌판에 버려진 셈이었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황무지를 가꾸어 논을 만들고 모범적인 농장을 가꾸어 벼농사 북방한계선을 올리는 등 농업개발에 기여를 하기도 하였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쏘련은 잠재적 강력한 적대국이고 공산주의 이데오르기가 세계를 전염병같이 침투하는 시점이었다. 또한 식민지국이 된 조선인들을 식민사관 교육과 홍보로 영원한 저질적 인간들로 취급. 역사왜곡의 길을 택했다

강제이주의 역사를 겸허하게 재검토하고 화해의 장을 마련해야
이러한 강제이주의 역사를 각국은 처지에 따라 왜곡되어 전달하는 면도 많이 있었다고 본다.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이하여 한,러,일 역사학계에서 합동으로 진실되고 겸허한 자세로 얼굴을 맞대고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일방적인 가해와 피해를 떠나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고려인이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사회에 끼친 영향과 기여도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남북의 이념대치 속에 가리워진 고려인들의 항일 독립무장운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정신을 고양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동평은 이미 2016년 러시아 브랴티아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에 있는 조선인희생자 및 전승기념탑에 고려인과 함께 참배하면서, 항일투쟁의 수단으로 부득이 공산주의 활동에 참여하고 일본군을 물리치다가 희생한 넋들을 위로한 바가 있다.
동아시아의 평화는 이런 작은 것들을 찾아내어 대관소찰함으로써 홍익이념을 바탕으로 남북화해와 평화, 그리고 세계평화와 번영, 통일한국의 G7을 향한 번영을 향하여 나가야 한다.
오늘도 저 하늘나라에서 5천년을 지켜온 애국선열들이 우리 남과 북의 후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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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이주80년 “기억과 동행”위원회 도재영 상임공동대표 인터뷰기사

"고려인 눈물 닦아줘야"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고려인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직간접적으로 항일독립운동을 펼친 분들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오랜 기간 교류가 단절되고 우리말을 잃어버려 국내에 귀환한 동포 중에서는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분들을 돕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순국선열들이 우리를 꾸짖으실 겁니다."

올해는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지 80주년이다. 1990년대부터 러시아·중앙아시아와 중국 등의 북방 동포 돕기에 앞장서온 동북아평화연대의 도재영(79) 이사장은 강제이주 80주년을 계기로 경기도 안산과 광주광역시 등지에서 활동하는 동포단체와 시민단체들을 모아 새로운 단체를 만들었다.

1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발족식을 치르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억과 동행 위원회'(기억과동행위)는 이름 그대로 80년 전의 기억을 잊지 말고 고려인들과 함께 가자는 취지의 모임이다.

상임대표로 추대된 도 이사장은 발족식 직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고려인과 해외의 고려인들을 연계해 80주년을 기념하는 대회를 열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고려인 바로 알기와 고려인 기억하기 캠페인을 펼칠 것"이라며 "무엇보다 모국으로 귀환한 고려인 동포들이 가족 간에 생이별하는 고통을 겪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 당면 목표"라고 역설했다.

현행 '고려인 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고려인특별법)은 '1860년 무렵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러시아 및 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자와 친족으로 현재 해당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자'를 지원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로 이주한 고려인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 시행령은 '부모의 일방 또는 조부모의 일방이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로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를 재외동포로 명시해 동포 4세는 외국인으로 분류된다.

"고려인들은 외모로 차별받지 않는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외국인 취급을 받다 보니 보육료를 지원받지 못하고 지역아동센터에도 보낼 수 없죠. 더 안타까운 것은 성인이 되면 대한민국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다른 민족과 결혼하면 부모를 모셔올 수도 없고 19세부터 24세 자녀는 데리고 올 수도 없습니다."

예전에도 법 개정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4년 12월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에 상정됐다가 19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됐고 올 초에도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 자유한국당 곽대훈·김명현 의원,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 등이 각각 개정안을 발의했다.

도 이사장은 "정부와 국회 일각에서는 지원 대상을 확대하면 재외동포들이 국내로 몰려와 국내 고용시장의 질서를 깨뜨리고 재정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세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서 "국내 고려인들은 대부분 우리말을 하지 못해 단순 노동에만 종사하고 있는 만큼 국내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라고 잘라 말했다.

"90년대 말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고려인이 최근 급격히 늘어나 4만여 명이 이르렀기 때문에 더는 미룰 수 없게 됐습니다. 80년 전 강제이주가 시작된 오는 9월 9일까지 법 개정을 이뤄낸다는 목표 아래 고려인 경청회, 시민토론회, 국회 세미나 등을 열고 서명운동도 펼칠 겁니다. 지금까지 차별과 냉대를 감수하며 묵묵히 일해왔던 고려인들도 네트워크를 조직해 전면에 나서기로 했으니 이제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합니다."

기억과동행위는 법률 개정과 함께 강제이주 진상 규명과 고려인 명예 회복, 국내 정착 지원과 환경 개선 등에도 힘쓰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국내 체류 고려인 인터뷰, 사료 수집, 아카이브 시스템 개발 등에 나서고 고려인 알리기 캠페인, 릴레이 응원 메시지 등도 추진할 예정이다.

"고려인이나 조선족 등을 따뜻하게 대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이자 역사의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발전, 남북한 통일, 동북아 평화 시대 등을 위해서도 매우 긴요한 일이죠. 이들을 '왕따'시키면 한중관계나 한러관계가 좋아질 수가 없고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북한 동포들도 우리에게 거부감을 느끼겠죠. 또 같은 핏줄조차 껴안지 못하면서 어떻게 외국인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도 이사장은 1966년 기아산업에 입사해 30년 넘게 일하며 기산·기아자동차서비스 사장과 기아그룹 부회장을 지냈다. 1990년대 업무 관계로 중국 동북 3성과 러시아 연해주 등지를 방문한 뒤 동포들의 현실에 눈을 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은퇴 후에는 NGO 활동가로 변신, 2003년 동북아평화연대 이사장을 맡아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동북아평화연대는 1997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재외동포사업국으로 출발했다가 2001년 정식으로 창립됐다. 조선족 사기피해 해결을 위한 청원운동, 연해주 고려인 정착 지원, 동북아 민족교육 지원 ,다민족·다문화 교류사업, 지속가능한 농업·경제사업, 도서 보급, 고려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 건립 등의 활동을 했다.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고, 기업들이 나서야 할 분야가 있듯이 NGO가 해야 할 몫이 따로 있다는 게 도 이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2014년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 러시아·남북한 종주 자동차 랠리도 NGO인 우리가 앞장섰기 때문에 성사될 수 있었다"며 "앞으로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며 우리에게 많은 기회가 올 것으로 본다.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시민사회는 시민사회대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재영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억과 동행 위원회' 상임공동대표는 1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고려인을 포용하는 것은 남북한 통일이나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도 긴요한 일"이라고 역설했다.

heey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5/18 09:4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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