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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6 솔로몬의 영광보다 욥의 고난과 인내를-손동희 권사
한복협  2009-07-14 18:50:01, 조회 : 5,059, 추천 : 1196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

                                                               손 동 희 권사



손양원 목사는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학비가 없어서 낮엔 신문배달, 우유배달, 만두장사를 해서 야간학교를 다녔습니다. 저의 어머니와 결혼 후엔 평양신학을 마치고 나병환자 수용소인 애양원에 전도사로 부임했습니다(1939년, 7월). 이 나환자들은 가지 각색의 끔찍한 모습들입니다. 손양원 목사는 이들을 너무 사랑했습니다. 이들을 위해 손양원은 「기도시」를 쓰셨습니다. 위의 첫머리만 적겠습니다. “오, 주님! 이들을 사랑하되 내 부모 형제 처자식들보다 더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은 세상에서 버림당한 자들이옵고 부모 형제 사랑에서 떠난 자들이옵고 모든 인간들이 다 싫어하여 꺼리는 자들이오나 .....그래도 나는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

세월이 흐르면서 나환자들과 손양원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이어져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1940년 9월 25일 손 목사는 - 39세 - 신사 참배 반대로 일경에 끌려갔습니다. 만 5년 동안 갖은 고난 끝에 하나님께서 8․15해방이란 선물을 주셔서 끝내 해방과 함께 출옥했습니다. 그리하여 뿔뿔이 흩어졌던 우리 가족은 옛날에 살았던 애양원 사택으로 되돌아와서 그간 신사참배 때문에 못 갔던 학교도 다닐 수 있어서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 행복은 절정을 이루었지만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큰 폭풍이 문 앞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 누가 그것을 알았으랴!

1948, 10, 19일 내가 순천 매산 여중 1학년 때 (16세) 이 날에 뜻밖에 공산 게릴라들이 여수, 순천에서 대폭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여수, 순천을 생지옥으로 만들어 놓고 꼭 1주일 만에 끝냈습니다. 1주일 동안 여수 순천 두 지역에서 사망자 숫자는 (전남 보건 후생국에서 발표한 숫자) 3천 4, 5백명이었습니다. 이 때 내 두 오빠 (동인 오빠 25세, 동신 오빠 19세)는 꽃다운 나이에 같은 동료 친구들에게 끌려가서 한 날 한 시에 총살 순교당하고 말았습니다(1948, 10, 21일). 뜻밖의 두 오빠 죽음이 온통 울음바다를 이룬 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두 오빠 장례식을 마치고 1주일 쯤 지났습니다. 동인, 동신을 죽인 놈을 잡았습니다. 그 놈은 큰 오빠 같은 학교 학생 강철민 (가명)으로 밝혀졌습니다.

난 이 소문을 들었을 때, 두 오빠 죽인 놈을 내 손으로 죽이려고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 목사는 두 오빠 죽인 강철민을 사형대에서 빼내어 양아들 삼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펄펄 뛰며 “아버지!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예수를 못 믿습니까? 아버지는 왜 항상 별난 예수를 믿습니까?” 하고 적극 반대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날 설득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하나님의 1, 2 계명 지키기 위해 과거에 감옥에서 고생했고 너희들까지 고생을 시켰는데 강철민 그 학생을 안 잡았으면 모르되 일단 그 학생을 잡았단 말 듣고는 이대로 모른 척할 없구나. 1, 2 계명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원수를 사랑하라’ 하는 말씀도 똑같은 하나님의 명령 아니냐? 내 어찌 1, 2계명은 순종하면서 이 명령을 순종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큰 모순이랴? ‘원수를 사랑하라’ 는 명령을 내가 만일 안 지킬 것 같으면 과거 5년 간 감옥살이 헛일이었고, 너희들 고생시킨 것도 헛고생 시킨 것이 되고 만다. 그러니 내가 여기까지 와서 넘어질 수 없구나! ....” 하시는데 손 목사는 이 세상 그 누구의 말보다 하나님 말씀 한 마디면 그것으로 끝내 버리는 분이시었습니다. 결국 난 아버지께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두 오빠 죽인 강철민은 사형 직전에 구출됐고 손 목사는 그를 부산 고려 고등 성경학교에 입학시켜 독실한 신자로 만들었습니다.

두 오빠 순교 후 2년 뒤, 1950년 6․25가 또 터졌습니다. 공산군들은 물밀듯이 남침해 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친구들 (목사) 이 몰려 와서 피난 가자고 했으나, 아버지는 거절하셨습니다. 이 때 피난 가지 않으면 죽는 것은 규정사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난국에 가장 급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양 먹이는 목자가 내 양떼 신앙을 지켜야지 더구나 몸도 성치 않는 나환자를 버리고 나 혼자 살자고 어디로 피난 가겠나.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 라고 하시면서 끝내 피난 가지 않았습니다. 9월 13일 공산당들은 애양원에 들이 닥쳤습니다. 아버지는 강단 뒤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그들은 아버지를 낚아채 갔습니다. 15일간 여수 감옥에서, 미국 놈 스파이, 미국 놈 앞잡이, 공산당을 악선전 했다면서 물매를 맞고 9월 28일 이들은 후퇴하면서 아버지를 끌고 여수 밑의 미평, 큰 과수원 속에 끌고 가서 총살했습니다. 아버지 손양원 목사는 48세의 한 많은 생을 순교의 재물로 마감했습니다. 지금 세 무덤은 (큰 오빠, 작은 오빠, 아버지 ․ 어머니) 애양원 동도섬에 고이 잠들어 있습니다. 흙 속에 들어간 씨앗은 그 씨가 반드시 죽어야만 그 결실의 열매가 100배 혹은 천 배가 된다고 했습니다. 두 오빠와 아버지는 떠났지만 그들 시체 안에는 한 알의 씨앗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씨는 지금 싹이 나고 움이 터서 많은 열매가 맺혀 수 없는 영혼들을 깨우치는 「믿음의 표본」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사실을 저는 뒤늦게나마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손양원 목사는 이 세상일에 매이지 않고 ‘고대가’를 지어서 부르면서 오직 천국과 내세에 붙잡혀 살았습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그리고 가난을 애처로 삼고 고난을 스승으로 삼으며 천국을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는 그의 아버지 손종일 장로님에게 이런 편지를 쓰셨습니다. “고난은 최고의 복입니다. 꿀같이 달게 받으사이다. 참고 견디면 이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이런 시를 써서 보냈습니다. “여보! 나는 솔로몬의 부귀보다 욥의 고난이 귀하고 솔로몬의 지혜보다 욥의 인내가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것은 솔로몬의 부귀와 지혜는 타락의 매개가 됐지만 욥의 고난과 인내는 최후의 영화가 된 까닭입니다.” 아버지 손양원 목사는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할 뿐, 현세의 안락과 풍요를 약속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솔로몬의 영광보다는 욥의 고난과 인내를 추구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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