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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3. 순교 신앙을 기리며- 이 정 익 목사
한복협  2013-03-08 10:56:14, 조회 : 5,364, 추천 : 1907

                                                        “복음의 씨암탉” 문준경의 순교







                                                                                                                                                 이 정 익 목사
                                                                                              (한복협 부회장, 순교기념 이사, 신촌성결교회 담임)








20세기 한국사에 있어서 한국민족을 괴롭혔던 큰 두 세력이 있다. 하나는 일본제국주의요, 다른 하나는 북한 공산주의이다. 일본제국주의는 다른 민족에 의한 한국민족의 핍박이요, 북한의 공산주의는 잘못된 사상에 물들어 같은 동족을 괴롭힌 세력이다. 한국 기독교는 일본제국주의와 싸웠지만 이것 못지않게 북한 공산주의와도 싸웠다. 한국 개신교의 순교를 조사해 보면 일제에 의한 순교보다는 공산주의에 의한 순교가 더 많다. 이것은 그만큼 공산주의와 기독교가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산주의가 이 땅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부터이다. 3. 1 운동이 실패로 끝난 다음에 많은 조선의 지식인들은 조선의 독립이 사회주의 운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해서 1920년대 중반부터 이 땅에는 사회주의가 강력하게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사회주의는 종교는 브르좌 계급과 더불어 혁명을 반대하는 집단이며, 따라서 타파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일부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이런 사회주의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회주의적인 기독교만이 현대 지성인들에게 호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상황 가운데서 사회주의의 위험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것은 기독교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한 것이 바로 성결교회이다. 이명직 목사는 이런 공산주의 세력이 말세에 나타날 붉은 용, 곧 적룡(赤龍)이라고 보았다. 계시록 12장 3절에는 말세에는 붉은 용이 나타난 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붉은 용은 사탄의 화신이다. 사탄은 타락한 천사로서 하늘에서 축출된 다음에는 무형으로 역사하다가 말세에 형체를 가지고 나타날 터인데, 곧 붉은 용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말세에 나타날 붉은 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붉은 빛이라는 것은 전쟁, 살인, 피의 부호가 된다. --- 흰색이 성결과 기쁨의 부호가 되고, 흑색이 낙망과 비애의 부호가 되는 것과 같이 붉은 빛은 살육과 공포의 부호이다. --- 붉은 용의 한 일과 적색 로서아의 하는 일을 비교해 보아 이 붉은 용이 적색 로서아를 이용하여 자기의 뜻을 이루고자 할 것을 가히 알 것이다.” 계시록의 붉은 용은 종교를 박해하고, 인명을 살해하였는데, 현재의 러시아가 그런 일을 감당하고 있다.
해방 후 공산주의의 위협은 현실화되었다. 먼저 북한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순교한 분들이 있다. 북한에서의 순교는 해방 직후부터 6. 25 전쟁 시대를 걸쳐서 일어났는데, 여기에 해당되는 순교자들은 김영범, 조한수, 이정순, 오덕삼, 전기찬, 강축수, 김인석, 송계순, 이기백, 문봉교, 김연호등이다
남한에서의 순교는 개인적인 순교와 집단적인 순교로 나눠질 수 있다. 개인적인 순교는 공산당에 의해서 개인적으로 당한 순교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순교자는 서두성, 임수열, 임광우, 배춘근, 김봉하, 김재은, 한피득, 이인석, 이춘원, 김성희 등이다. 집단적으로 순교당한 지역은 세 곳으로 충남 논산군 성동면 병촌교회에서 66명, 전남 신안군 임자면 진리교회에서 48명, 전북 정읍시 소성면 두암교회에서 23인의 집단 순교자가 나왔다. 이들은 모두 기독교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공산당들에게 무참하게 학살당한 것이다.
성결교회가 공산당에 의해서 당한 순교자들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문준경 전도사이다. 문준경은 1891년 2월 2일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17세가 되던 1908년에 같은 신안군 지도면에 사는 정근택과 결혼하였다. 하지만 정근택은 신부에게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만 하고, 며칠 있다가 집을 나가 소식이 없었다. 남편에게 소박을 맞은 것이다. 정근택은 그 후 첩을 얻어 타지에서 살았다. 남편이 없는 시집살이는 외로웠다. 하지만 그는 말없이 시부모를 섬겼다. 그를 아껴주던 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다음 문준경은 목포에 있는 큰 오라버니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것은 결혼 20년 만의 일이다.
목포에서 문준경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그 분이 곧 예수님이었다. 당시 목포에는 성결교회가 개척되어 열심있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고, 문준경은 성결교회에 의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1928년 6월 세례를 받았다. 그의 신앙은 점전 더 분명해 져 갔다. 마침 1930년부터 앞으로 한국교회의 유명한 부흥강사가 될 이성봉 전도사가 목포교회에 부임하여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다. 문준경은 이성봉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31년 5월 문준경은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당시 여전도사는 소박맞은 여인들에게 매우 적절한 피란처였다. 이들은 형식적이지만 남편이 있었기 때문에 재혼을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혼자 살기도 힘들었다. 이들에게 새로운 신랑이 나타났는데, 그 신랑에 예수였다. 소박맞은 여인들에게 신랑 예수는 그야말로 신랑이었다. 하지만 문준경이 성서학원에 들어가는 것도 힘들었다. 왜냐하면 당시 남편이 있는 여자는 입학이 불허되었다. 그러나 이성봉 목사가 당시 원장이었던 이명직 목사에게 부탁해서 입학이 허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소박맞은 이유는 거리낌이 없이 신랑 되신 예수를 위해 살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문준경 전도사의 교회사역은 1932년부터 시작된다. 성서학원에 다니면서 그는 진리교회를 개척하였고, 1933년 9월에는 중동리교회를 시작하였다. 1935년 2월에는 대초리에 교회를 세웠다. 뿐만 아니라 거리가 먼 교인들을 위해서 교회 중간 중간에 기도소를 세웠다. 당시 그가 세웠던 기도소는 우전리, 재원, 방축리등이었다. 이 기도소는 나중에 훌륭한 교회가 되었다. 성서학원 재학 중에 그는 6개의 교회를 개척한 셈이다.
문준경 전도사의 목회는 한마디로 사랑의 목회였다. 그의 사택은 무엇이나 의론하고 돌봐주는 곳이었다. 그의 집에는 항상 귀신들린 사람이 서너명, 반신불수가 몇 명씩 있었고, 오갈 데 없는 버려진 여인들의 숙소였다. 김준곤 목사는 이것을 “목민센타”라고 불렀다. 또한 문준경 전도사는 새벽같이 벼랑을 들쳐 매고 나가서 부잣집에서 음식을 얻어다가 동네의 가난한 집에 가져다 주었다. 김준곤 목사는 이것을 “대신거지”라고 불렀다
문준경 전도사는 결코 행복한 여인은 아니었다. 그의 인생은 기구했다. 하지만 그는 항상 명랑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노래를 잘 불렀다. 그가 동네에 들어가면 그는 이명직 목사가 지은 희망사를 한 곡조 부른다. 그의 목소리는 타고 났으며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그는 자신의 간증과 더불어서 복음을 전하곤 하였다. 한마디를 그는 대중의 아픔을 알았고, 그 아픈 마음에 위로자요 희망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제시했다.
그러나 서해안 낙도에도 일제의 박해는 찾아왔다. 1943년 5월 성결교회의 교역자들이 일제히 검거되고, 같은 해 12월 29일 성결교회는 강제 해산 당하였다. 그리고 교회건물은 강제로 처분되게 되었다. 이런 시련은 문준경 전도사의 전도의 중심이었든 중동리교회에도 밀어 닥쳤다. 일제 말 전국에는 경방단이라는 것이 조직되어서 지역의 치안을 책임진다고 설쳤다. 이들은 대부분 친일파였는데, 일본은 중동리교회를 이 경방단에 1600원에 강제로 매각시켰다. 문준경 전도사는 교회를 잃어버리고, 숨어서 예배를 드려야 했다.
해방이 되자 성결교회는 매각된 건물을 다시 찾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하지만 중동리 사람들은 교회건물이 자신들의 건물이라고 내어 주지 않았다. 결국 법정에 가게 되었고, 법정은 교회 편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동네 청년들(과거 경방단)은 교회를 계속 점령하고 있었다. 문준경 전도사는 다시금 법정에 호소하였다. 이제 교회 건물을 다시 찾아 교회는 활기를 얻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생하였고, 같은 해 8월에는 공산당들이 침투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과거 경방단 출신들이 바로 공산당들의 앞잡이가 되었다. 교회는 노동당인민위원회가 되었고, 사택은 위원장이 거주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켰고, 전세는 바뀌었다. 이제 공산당들은 철수해야 했다.
당시 공산당은 문준경 전도사를 체포하여 목포로 압송하였다. 하지만 목포에는 이미 국군이 상륙하였고, 공산군은 도망갔다. 이제 문준경 전도사는 해방된 것이다. 이때 이성봉 목사도 목포로 피란을 왔었다. 이성봉은 문준경에게 목포에서 피란하라고 했다. 하지만 문준경 전도사의 마음속에는 교회와 양딸인 백정희 전도사가 걸렸다. 그는 양딸을 생명같이 사랑했다. 그래서 다시금 중동리로 돌아왔다.
중동리는 아직도 공산치하에 있었다. 공산당은 자신의 최후를 알았고, 소위 반동분자들을 정리하고 도망하려고 계획하였다. 1950년 10월 5일 새벽 공산당은 문준경전도사를 포함한 양민들을 중동리 백사장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문준경전도사를 세우고,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라고 물아 세우며 단도와 죽창으로 찌르고, 총으로 확인사살을 했다. 문준경전도사는 마지막으로 그의 사랑하는 딸 백정희 전도사를 살려 달라고 부탁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순교하였다

“새끼를 많이 깐 암탉”이라는 이름과 같이 문준경전도사는 많은 열매를 맺었다. 그의 양딸 백정희 전도사는 순교한 그날부터 3년간 소복을 입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하여 기도했으며, 신안군 조그만 섬에서 평생 복음을 전했다. 그를 박대한 정씨 문중도 비록 자식하나 없는 며느리이지만 정씨 문중 산의 가장 중심자리에 묘지를 마련해 주었다. 성결교회 지방회에서는 1951년 2월 2일 그의 환갑일을 기해서 성대한 장례식을 치뤘다. 10일장으로 치러진 이 장례식에는 평생 그로부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서울에서 온 어떤 사람은 “김구선생의 장례식보다도 사람이 많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1951년 8월 1일에 중동리교회 앞뜰에 순교기념비가 세워졌고, 병풍도에 순교자 기념교회가 세워졌다. 그가 남긴 복음의 씨는 많았고 알찼다. 그 열매는 김준곤 목사(전 CCC총재), 이만신 목사(기성중경총회장), 정태기 교수(한신대교수)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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