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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9 한국교회 제 3의 부흥은 올 것인가? 어떻게?- 김상복 목사
한복협  2009-07-14 13:22:12, 조회 : 4,974, 추천 : 1651

한국교회 제4의 부흥은 가능한가?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한국교회에는 최근 1907년에 일어났던 부흥의 불길이 한번 더 일어나기를 원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고 새로운 부흥을 위해 움틀 거리는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한국교회 제3의 부흥은 2007년을 기해 다시 점화될 것인가? 부흥은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조직과 조직의 결정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학술연구나 토론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분석이나 비판이나 평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지나간 부흥운동을 흉내냄으로 될 일도 아니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자유롭게 역사하실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면 부흥은 언제나 가능하다 (슥 4:6). 때로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도 성령의 주권적 임재가 나타나 새로운 부흥을 일으키기도 하신다.
나는 한국교회 제3의 부흥보다는 제4의 부흥을 고대하고 있다. 첫째는 1907년 평양의 부흥운동이다. 둘째는 6.25 전쟁 직후 피난시절 남한과 북한에 내려온 기독교인들이 모두 부산에 모여 민족과 교회와 개인의 죄를 회개하며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어린이부터 고령의 교계 지도자들까지 통곡하며 하늘을 향하여 끝없이 부르짖어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던 시기이다. 셋째 기간은 1970-80년대 한국교회가 일 년에 12.5%까지 성장하며 힘있게 일어나던 시기이다. 대형집회, 기도운동, 부흥회, 소그룹 성경공부, 제자훈련 등 교회성장과 함께 선교사역의 성장도 일어나 세계교회가 주목하던 기간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또 한 번의 부흥을 간구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1,200만 명이라 자랑해 왔으나 인구조사에 나타난 기독교인 수는 850만 정도로 알려지며 지난 10년 동안 천주교와 불교의 성장에 비해 1.6%나 감소되었다는 충격을 받고 아직도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통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1,200만이란 수자를 계속 사용하는 지도자들을 보고 있다. 한국교회는 새로운 부흥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교회의 영적 현실을 직시해야 미래를 볼 수 있다. 단지 숫자적 충격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어떻게 해야 한번 더 살아날 것인지를 보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때가 되었다. 영적인 부흥에는 몇 가지 공통된 요소이 보인다.  

1. 부흥 전에 언제나 영적인 갈급함이 있다.
성경의 첫 번째 부흥은 사무엘 시대 임했다. 사무엘과 백성들 가슴에 극심한 영적 갈증이 있었다. 이 갈증은 회개와 부흥으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불레셋에게 전쟁에서 패배하고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전사했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마저 빼앗겼다. 엘리는 두 아들과 법궤의 소식을 듣고 뒤로 넘어져 즉사했다. 법궤를 가졌던 불레셋은 수많은 재앙을 당해 사람들이 죽자 법궤를 둘려주기는 했으나 하나님의 법궤가 있을 곳에 있지 않고 20년간이나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과 슬픔이 복 받혀 올랐다. 사무엘이 앞장서며 그들은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온 족속이 통곡하며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 all the people of Israel mourned and sought after the LORD, 삼상 7:2). 죄를 회개하며 여호와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부흥은 사랑의 회복이다. 사무치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는 사무엘의 가슴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하는 고통이 있었다. 그는 백성과 함께 통곡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부흥에 점화 하셨다. 미즈바에서 가슴을 찢는 금식이 선포되고 우상을 버리고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라... 여호와만 섬기라”며 강력한 회개를 촉구했고 사무엘의 애절한 도전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삼상 7:3-4).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무엘은 백성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했다. 이스라엘은 새로워졌고 불레셋과의 전쟁에서도 기적으로 승리했고 빼앗겼던 성읍들을 다시 찾았고(삼상 7:1-27) 아모리 사람들과 조약을 맺어 평화도 찾아왔다. 부흥이 오면 모든 것이 잘 된다. 전국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백성을 돌보는 사무엘과 같은 지도자가 있었다. 이스라엘의 영적 부흥에는 백성의 죄를 슬퍼하고 쉼 없이 기도하는 지도자가 있었고 회개하는 백성들이 있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구약의 첫 번째 부흥은 사모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히스기아가 25세에 왕이 되자 부왕 때 섬기던 우상을 제거하고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에게 마저 분향하는 것을 보고 놋뱀을 파괴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려 노력하였다 (왕하 18:6-7). 그 결과로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고 앗시리아 왕도 섬기지 않고 적과의 전쟁에 승리가 있었다. 이사야, 호세아, 미가 선지자들이 그 시대에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백성들은 여호와께 돌아와 다시 그를 부르기 시작했다. 히스기아와 선지자들이 백성들과 함께 열정으로 하나님은 찾으며 부흥이 일어났다.
에스라의 가슴에도 영적인 갈망이 일어났다. 우상을 숭배하고 죄와 타협하며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낭독하고 가르쳤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 속에서 깨닫고 회개하고 삶을 정돈하고 하나남께로 돌아오는 부흥을 경험했다 (느혜미아 8:1-18). 부흥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찾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2. 부흥에는 하나님을 찾으며 드리는 간절한 기도가 있었다.
역사 속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의 대부분은 부흥을 갈망하는 기도 가운데서 나타났다. 1903년 웨일즈 부흥의 불길도 이반 로버츠라는 26세의 청년과 두 친구의 철야기도 중에 점화되었다. 이들을 매일 밤 모여 웨일즈의 부흥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성령의 압도하는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기도회는 즉시로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6개월 동안 끊이지 않고 기도가 계속 되었다. 웨일즈의 영적 부흥을 위해 애타게 기도하는 중 성령의 강한 능력이 그 기도회를 압도하며 부흥의 불길이 치솟았다. 그는 (1)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2) 모두 함께 하나님께 기도할 것, (3) 모두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간곡히 간구하자 그의 간결한 메시지는 가슴에 부흥의 불길을 가슴마다 점화했다. 하나님을 찾는 그의 목소리는 가슴마다 메아리쳐 부흥으로 연결되었다.  
1903년에 있었던 원산기도회에서 타나난 부흥의 불길에는 남감리교 여자 선교사 메리 화이트와 카나다 장로교의 주이즈 맥컬리 두 선교사와 같은 기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부흥을 위해 선교사들을 중심하여 이미 꾸준히 기도하고 있었다. 이 기도회에 부흥의 불씨가 된 하디 선교사도 그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었다.
영국의 죠지 횟필드 부흥운동도 그의 정기적인 기도생활이 바탕에 있었다. 다니엘처럼 하루에 세 차례씩 기도하며 규칙적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그는 “은혜의 방법”(the method of grace)라 부르기도 했다. 때로는 그가 하루에 9시간까지 기도함으로 사역을 뒷받침했다. 부흥은 기도로 인한 성령의 역사이다. 부흥에는 반드시 기도가 있다.
    
3. 부흥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강력한 말씀이 있었다.
시편 130편 저자도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나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말씀을 바라는도다”(시 130:5). 파숫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이다 (시 130:6).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배가 고팠고 하나님을 향해 목이 탔다. 그 분의 목소리를 간절히 듣고 싶어 했다. 하나님을 향한 사모함이 있고 성령의 역사를 간구하는 기도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의 심령을 갈랐다.
18-19세기 미국과 영국의 영적 대각성을 통한 부흥운동에는 조나단 에드워드, 죠지 휫필드, 웨슬레 형제, 스퍼젼, 디엘 무디와 같은 설교자들의 영혼을 파고드는 강력한 설교들이 있었다. 특히 무디는 분명하고 강력한 설교로 구원의 복음을 전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와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났다. (1) 죄로 타락 (Ruin by sin), (2) 예수의 구속 부흥운동 (Redemption by Christ), (3) 성령으로 중생 (Regeneration by the Holy Spirit) 을 강조하며 구원에 대한 3R 설교를 명료하게 선포했다. 웨일즈에서도 5주만에 2만명이 구원을 받았다. 구원받는 수가 날마다 더해 갔다.    
한국의 부흥운동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결정적이었다. 한국교회의 초창기에는 1주 내지 한달간 계속하는 사경회가 있었다. 오전에는 성경공부로 말씀충만했고 정오에는 기도가 충만했고 오후에는 전도가 충만했고 밤에는 전도한 사람들을 데려와 집회를 하며 은혜가 충만했다. 말씀과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성도들 가슴에 가득했다. 여기에 부흥이 일어났다.

4. 부흥에는 철저한 회개를 통한 성결운동이 일어났다.
모든 부흥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철저한 회개운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회개가 없는 부흥은 없었다. 영적 부흥이 필요한 이유가 있었다. 국가적, 사회적, 교회적, 개인적 죄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를 갈라놓았던 것이다 (사 59:2). 사랑이 식어지자 사랑의 갈증이 일어난 것이다. 죄에는 언제나 우상이 있고 음란이 있고 증오와 거짓과 위선이 있었다. 하나님과 이웃 사이에 멀어져 있었다. 거룩한 영은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죄를 폭로했다. 사람들은 견딜 수 없어 죄를 토하기 시작했고 죄를 토하자 성령을 그들의 가슴에 자유롭게 역사했다.
미즈바에서도 우상을 제거하고 완전히 하나님께 돌아왔다. 히스기아도 산당을 없애고 주장을 깨뜨리고 놋뱀을 부셨다. 에스라도 우상과 타협의 죄를 회개했다. 무디의 타락에 대한 설교는 성결운동을 일으켰다. 웨일즈에도 죄의 고백, 묵은 빚 청산, 오락실 폐쇄, 텅빈 술집과 극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1904년 원산 기도회에서 감리교 하디 선교사의 회개가 불을 당겼다. 사경회 도중 하디는 회중 앞에 서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당황한 얼굴로 울면서 자기의 다섯 가지 죄를 고백했고 용서를 구했다. (1) 마음의 강팍함, (2) 학벌에 대한 교만, (3) 인종차별과 백인 우월주의, (4) 성령충만하지 못한 죄, (5) 믿음의 부족과 반복된 실패를 토해냈다. 그는 죄가 무엇인지 절실하게 깨닫고 회개하였다. 통회하고 자복하는 마음에 성령이 임했다. 그의 회개를 들은 한국인들도 역시 회개했다. “사실 우리도 당신이 교만한 것을 느끼고 얼마나 미워했는지 모른다”고 고백했다. 회개하는 심령을 불쌍히 보셨고 하나님의 성령은 부흥의 불길을 보내셨다.    
1907년 1월 12일 월요일 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교회의 지도자였던 길선주 장로가 1,500명이나 모든 집회에서 공개적으로 죄를 고백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입니다. 나는 죽은 친구의 재산을 정리를 도와주는 가운데 미화 100불을 사취했습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그 돈 전액을 미망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한국교회 지도자의 고백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는 눈물로 회개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이길함 선교사는 “다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라고 말했고 그 자리는 회개의 도가니가 되었다. 기도소리는 하늘 보좌를 흔들었고 한 순간에 온 회중이 함께 울며 자기 죄를 고백했다. 미움, 시기, 질투, 도둑, 사취, 음행, 간음, 심지어 살인까지 다 쏟아져 나왔다. 그 기도회는 600명이 뒤에 남아 밤새도록 기도했다. 성령의 역사로 회개운동이 일어났고 그 회개운동은 한국교회의 부흥으로 이어졌다.  

5. 부흥운동에는 늘 찬양의 은혜가 따랐다.
부흥운동이 일어난 집회에는 언제나 찬양의 은혜가 있었다. 회중이 모여 열심히 찬양을 불렀다. 예수의 보혈을 찬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고 성령의 역사를 구하는 찬송들이 반복적으로 불려지며 성도들의 가슴을 녹였다. 웨일즈 부흥운동에도 끝없이 목청을 높혀 온몸으로 부르는 찬송의 은혜가 있었고 무디와 웨슬레와 휫필드가 주도한 각성운동에도 찬송은 언제나 풍성했다. 찬송의 역사는 종교개혁자 루터에서부터 출발했다. 웨슬레의 찬송들은 오늘도 깊은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늘도 곳곳에서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을 중심한 찬송운동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다리를 놓는 사람들, 어노인팅, 어겐 1907, 부흥한국 등 자연스러운 찬양운동이 이 땅에 불을 지르고 있다. 열광적인 찬양운동 속에 말씀의 부족이 보이고 있어 아쉬움이 있다.  

6. 부흥운동에는 지치지 않고 계속되는 집회가 있었다.
성령의 바람이 시작하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힘을 느낀다. 사람들은 모이고 모인다. 기도하고 기도한다. 찬앙하고 찬양한다. 말씀을 계속 선포한다. 지칠 때가 되었는데도 지치지 않는다. 성령의 힘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힘이 있다. 밤새 기도하고 직장에 나가도 피곤을 모르고 다시 저녁에 집회에 참석한다. 웨일즈에서는 집회가 6개월이나 계속 되었다. 평양에서는 밤을 새우며 기도를 했다. 새벽기도가 4시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2시부터 모이기 시작했다. 이상한 힘이 나타났다. 한국의 부흥운동에 영향을 받은 중국 목단강에서도 부흥이 일어나기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50일 동안 기도하는 동안 부흥의 불길이 나타났다. 토요일 밤이면 4,800명, 6천명, 7천명까지 계속 모였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이 늘 나타났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 1:8) 모두 힘을 느끼곤 했다. 성령의 힘이다.

7. 부흥운동의 결과는 구령운동, 사회개혁, 연합운동이 다랐다.
무디, 휫필드, 웨슬레, 조나단 에드워드, 스퍼전, 길선주, 일버 채프만 등 부흥운동이 일어날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았고 영혼의 부흥을 체험한 사람들은 열심히 전도를 했다. 한국교인이 20만명 밖에 되지 않던 1909-1910년 사이에 100만명 구령운동이 일어나 마가복음 70만권을 집집마다 배포했다. 어린 아이들마저 용돈을 아껴서 마가복을 사들고 길거리에서 나누어 주며 어른들의 팔을 붙잡고 예수를 믿으라고 간청했다. 감리교회는 1906년 등록교인이 18,108명이었지만 일년 후 1907년에는 219%가 성장한 39,613명이 되었다. 장로교는 1903년에 19,327명, 1907년에 56,943명, 1911년에는 140,470명으로 725%의 성장이 있었다. 교단마다 전도에 힘써 전도의 열매가 많이 있었다.  
웨일즈에서 5주만에 5만명이 구원을 받았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다. 한국에도 교육열, 금연 금주운동, 우상숭배에서 해방, 여성의 지위향상, 결혼 및 세계관의 변화, 놀음, 일부다처제 폐지, 조상숭배, 문화, 종교,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한국 근대화에 영향을 주었다.
교계에는 개 교회나 교단이 아니고 예수를 중심한 연합운동이 일어났다. 무디, 휫필드, 에드워드 등 부흥운동에는 예외 없이 복음주의적 연합운동이 있었다. 한국인과 선교사의 담이 무너졌고, 원수와 원수, 양반과 천민,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장로교와 감리교의 담이 무너지며 하나의 민족교회 형성마저 심각하게 논의되었다. 성서번역위원회, 예수성교서회, 복음주의연합공의회, 숭실대학, 연희전문학교, YMCA, 주일학교연합회 등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것을 강하게 의식했다.

부흥은 영적인 갈증과 배고픔을 절실하게 느끼며 하나님을 사모하고 찾으며 영혼의 부흥을 갈구하며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리는 소수의 주변적 사람들에게서 시작한다. 기도와 말씀과 찬양과 회개가 있는 곳에 성령은 나타나 죄를 태우고 하나님과 인간을 하나로 묶어 주신다. 부흥의 불길이 점화된다. 회개는 작은 불꽃에 부어지는 기름과도 같다. 불길은 회개를 통하여 번져가 심령을 태우고 구원하며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킨다. 오늘 한국교회에는 건물도 있고 찬양, 예배, 성경공부, 제자훈련, 셀모임, 새벽기도나 심야기도도 있고 총동원 프로그람도 있으나 어딘지 모르게 모두가 허기진 사람들처럼 영적인 갈증과 배고픔을 느끼고 있다. 성령의 역사를 흉내 내는 집회는 있으나 은혜는 없고 프로그람은 있으나 생명이 빠져있고 열심은 있으나 성령은 빠진 것 같은 느낌이다. 1907년을 돌아보고 2007는 바라보면서 한국교회에 다시 한번 부흥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흥은 그저 원해서 오지 않는다. 부흥은 총회의 결의나 행사로 오지 않는다. 부흥의 역사를 연구하고 토론함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누구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해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친밀하게 만나 새로워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영혼들이 자신의 부흥을 위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고 그분에게 다가가 성령의 새로운 터치를 갈구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나타날 때 찾고 만나려는 하나님과의 간절한 대화 가운데 오늘도 성령이 임할 것이다. 한국교회 제4의 부흥은 가능한가? 언제나 부흥은 가능하다. 개인에게도, 가족에게도, 교회에서, 교계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또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한 언제라도 가능하다. 하나님은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를 만나주신다(히 11:6). 그 만남이 부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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