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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9. 전쟁과 평화- 박종화 목사
한복협  2010-09-10 11:28:34, 조회 : 4,856, 추천 : 1699

전쟁과 평화


박종화(경동교회 담임목사)



들어가며

지금까지 기독교역사에서 전쟁과 평화에 관한 담론은 크게 3가지 관점에서 진척되어 왔으며 최근에 이르러 또 하나의 대안적 담론이 주창되고 있다. 먼저 양극단의 담론이 있다. 절대적 “평화지상주의”(pacifism)가 하나이고 그 반대로 “성전론적 평화”(crusade)주장이 다른 하나이다. 제 3의 평화론으로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견지해온 “정의로운 전쟁론”(just war)이라는 평화론이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다시 대안으로 “정의로운 평화”(just peace)라는 평화론이 주창되고 있다.


1. 양극단의 평화론

1.1 평화지상주의

기독교 역사의 첫 3세기 동안 기독교는 법적으로 탈권화되어 사회적 공기관으로서의 기능이 거부된 상황에서 취한 평화절대주의의 입장을 견지했다. 무조건적인 비폭력과 군복무마저 거부하는 평화입장이다. 성서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준용하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마태 5:43-48)는 사랑의 계명에 대한 무조건적 순종을 담은 평화사상이다. 로마제국의 학정에서 또 황제숭배의 질곡에서 벗어나 순수한 사랑의 평화를 주창한 측면도 있지만 신학적으로 보면 임박한 종말을 기다리며 현실세계를 넘어 영적세계로 몰입하는 종말사상도 크게 한 몫 했다고 보면 된다.

이런 평화지상주의 사상은 종교개혁이후 스위스의 츠빙글리 산하의 집단 가운데 별동부대 역할을 했던 “재세례파”(Anabaptists)와 독일에서 등장한 “메노나이츠”(Mennonites)계열이 계승했고, 영국에서 출발하여 미국에서 둥지를 튼 퀘이커교단(Quakers)이 계승하고 있다. 퀘이커들의 특징 중 하나가 평화주의에 입각한 “양심적 군복무 거부”(conscientious objection)운동이다. 기독교 전통은 아니지만 넓은 의미에서 간디(Ghandi)의 비폭력 평화운동과 기독교의 평화절대주의는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1.2 성전적 평화운동

중세기 기독교의 악용내지 만용이 극치에 달하면서 이슬람에 정복된 성지를 회복한다는 미명하에 전개된 8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1096-99, 1147-49, 1189-92, 1202-04, 1217-21, 1228-29, 1248-54, 1270-72)이 대표적인 성전론적 평화행동이다. 그것은 교황에 의한 군사주의적 침략전쟁에 다름 아니고, 기독교 선교와 지배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경제적 이익도 고려했고, 참전자들에게 면죄부를 댓가로 발행 해주며 경제적 특전과 천국에서의 구원의 약속 등 엄청난 부조리를 자행했다. 이에 맞서 싸우는 이슬람은 나름대로의 성전론인 “지하드”(Jihad)로 대결구도를 짜게 된다. 오늘날에 있어서 특히 어떤 명목을 내세웠던 간에 이라크전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경우 기독교와 이슬람 쌍방간에 크루세이드와 지하드가 실제로 가동되고 있음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2. 정의로운 전쟁론

기독교가 콘스탄틴 황제로부터 공인된(AD 313)이후부터 특히 테오로시우스 황제의 측령(AD 416)으로 기독교가 국교화 되고 오직 기독교인들로만 군대를 구성할 수 있게 된 이후의 기독교의 평화론은 급반전을 이룬다. 교부인 어거스틴에 의해 작성되고 이후에 아퀴나스에 의해 추가된 「정의로운 전쟁」이 기독교 평화론의 핵심을 이룬다. 본래 정의로운 전쟁론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의 “정의로운 전쟁론”(bellum justum)을 수용하며 다듬은 것으로 다음과 같은 3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① 전쟁이 사회의 보편적인 선을 위한 것으로 합법적 담론에 의해 선포되는 경우(legitima potestas)
② 전쟁의 원인이 정당해야 하며 결코 법질서의 위협이나 손상이 아닌 경우(causa justa)
③ 전쟁의 목적이 전쟁 이전보다 훨씬 더 법질서의 평화를 보장하는 경우(recta intentio)

의로운 전쟁론은 실제로 로마제국의 “평화적 지배”(Pax Romana)를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었고, 하나님의 나라(civitas Dei)를 대신하는 교회와 세상나라(civitas terrana)를 대변하는 로마제국이 모두 하나님의 통치의 양팔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고전적 “두왕국론”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의로운 전쟁론이 나중에는 십자군 전쟁이라는 극단주의로 악용 내지 오용된 상황에서 전쟁은 기본적으로 “죄악”이며 평화가 사랑의 선물임을 명시할 목적으로 교부 아퀴나스(1225-74)가 “정의로움”(justum)을 실제로 살려야 기독교적으로 옳다는 점에서 다음과 같은 항목을 추가했다.

④ 오직 합당한 전쟁수단이 동원되는 경우(debitus modus)

종교개혁에 와서 루터와 칼빈은 크게 보면 정의로운 전쟁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루터는 “두 왕국론”(Zwei-Reiche-Lehre)을 통하여 어거스틴의 사상을 계승하면서 개인적으로는 그리스도인(Christperson)으로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며, 사회적, 정치적으로는 세상인(Welt person)으로서 세상을 위한 정의로운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칼빈은 정의로운 전쟁론의 근본은 수용하면서도 두 왕국의 병존이 아니라 국가권력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방식 곧 그리스도 왕권론(Kingship of Christ)을 바탕삼아 국가(군주)의 폭정에 대한 시민의 “저항권”을 전제로 정의로운 전쟁론을 주창한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문제는 정의로운 전쟁의 경우 “누가” “정의로움”을 판단하고 집행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실제로 정의로움은 거의 항상 “강자”가 규정하고 내세우는 정의가 모두의 정의임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커다란 논란을 낳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이라크 전쟁이 바로 그 구체적인 실증일  것이다.


3. 정의로운 평화(Just Peace)

평화는 전쟁의 부재라는 소극적인 차원을 뛰어 넘는다. 오히려 정의가 깃든 평화(이사야 32:17; 시편 85:10; 야고보 3:18)가 참 평화라는 적극적 차원이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WCC를 비롯한 에큐메니칼 협의회는 오래전부터 하나님이 주신 평화를 Shalom으로 보고, 그것을 세 개의 기둥(=정의, 평화, 창조세계 보전)으로 파악하여 평화 속에 정의와  창조생명이 내용으로 들어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사회경제적인 차원의 정의(Justice) 군사 안보차원의 평화(Peace) 환경과 생명의 보전(Integrity of Creation)을 포함한 JPIC를 우리의 평화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 개인차원의 평화의 핵심인   사랑(Love)을 보태면 좋다고 본다. 그러면 곧 JPICL이 될 것이다. 위에 말한 “정의로운 평화”가 말하려는 뜻이 바로 이것들이다.

그러면 어떻게 JPIC / JPICL을 실현할 것인가의 과제가 있을 것이다. 참고로 Kant가 말하는 영구적인 평화론의 3원적 요소(triad)를 수용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 ① 사회·국가의 민주화 ② 경제적인 협력과 연대, ③ 국제기구에의 공동참여가 국가간, 국제간 평화를 이루는데 큰 힘이 되리라고 본다. 여기에 몇 가지를 덧붙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위에 말한 사랑의 원리를 오늘의 언어로 ④ 인도주의 실현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의 남북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루는 일에 있어서 인도주의적 교류와 협력이 중요한 요소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⑤ 환경생명의 원리가 진정으로 삶의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실천방안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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