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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 나의 목회비전-권성수 목사
한복협  2009-07-17 06:28:55, 조회 : 6,848, 추천 : 1656

나의 목회비전


                                                        대구동신교회 권성수 목사



나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14년간 성경해석학과 신약신학 분야의 여러 과목들을 가르치면서 미래와 미래학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게 되었다. 3년간 기획실장을 맡게 되었는데, 기획실장의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파악할 뿐 아니라 미래를 전망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책들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21세기 미래는 실천적 지식인의 시대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생명공학의 시대를 바라보고 급속도로 움직이는 21세기에는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실천적 지식이 효과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분야에 있어서 ‘실천적 지식인’은 목회하면서 가르치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하나님께 “실천하면서 가르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5년간 기도를 드리는 동안에 서울의 여러 교회들, 어떤 때는 초대형 교회의 청빙을 받았지만, 기도하는 동안에 내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대구동신교회의 청빙을 받게 되었다. 나는 대구에 가서 목회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청빙이 상당히 곤혹스럽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나의 패턴대로 대구동신교회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하던 중에 대구동신교회로 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거절할 수 없는 부르심’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다가는 무슨 변고를 당하겠다는 불안감까지 들 정도였다.
평소에 학생들에게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시면 시골이든 도시든, 한국이든 외국이든, 어디든 가야 한다.’고 가르쳤던 탓에 나는 대구동신교회로 내려가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아내와 두 딸의 반대에 부딪혔다는 점이었다. 아내는 ‘대구로 내려가려면 이혼하고 가세요.’라고 하고, 두 딸은 ‘아빠, 대구로 내려가지 말아요.’라고 울면서 만류했다. 대구 목회를 반대하는 아내와 두 딸을 설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는 아내에게 대구동신교회에 일단 내려가서 목회를 할 만한 곳인지 살펴보자고 제의했다. 대구동신교회를 둘러본 뒤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아내는 내게 동신교회 뒷산에 올라가 보자고 했다. 동신교회는 8천 여 평의 산을 끼고 있는데, 그 산에 올라갔을 때 아내는 내게 “당신이 왜 동신교회에서 목회하려고 하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서 대구로 내려올 듯을 넌지시 내비쳤다. 그 때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아내가 내게 그런 말을 한 것은 동신교회 뒷산에 올라가서 대구를 가로질러 경산으로 내려가는 달구벌대로와 대구의 상징적인 팔공산을 보면서 동신교회는 미래를 향해 큰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함께 두 딸을 설득한 나는 동신교회에서 목회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회철학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유학할 때도 늘 목회에 관한 경건서적들을 사서 읽으면서 “교회를 위한 신학이 아니면 할 필요가 없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신학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나는 평생 교회를 세워 주는 신학을 하겠다.”는 각오를 했었다. 학생들에게도 우리는 교회를 위한 신학을 해야 한다는 지론을 강조해 왔었다. 나는 한국교회 정체와 둔화에 대한 글을 쓸 때도 교회와 목회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동신교회 목회를 시작하려고 할 때 어떤 비전과 어떤 사명 진술과 어떤 방향을 가지고 목회할 것인가, 큰 부담이 내 마음을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

나는 신학교 1학년 때 김명혁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서 신학의 균형감각을 배웠고, 후에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와 목회를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신학적 균형 감각을 가지고 옥한흠 목사님의 훈련목회를 기본으로 삼고 목회를 전개하면 일단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회에 있어서 신학적 균형 중에 내가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과 성령의 균형이다. 성경을 상대적으로 강조하고 성령을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목회는 성경적인 목회가 아니다. 성령을 상대적으로 강조하고 성경을 경시하는 목회도 바람직한 목회가 아니다. 성경과 성령 중에 어느 쪽을 강조하고 어느 쪽을 경시한다는 말 자체에 반론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목회 현장을 볼 때 성경과 성령 중에 어느 한 쪽을 강조하고 어느 한 쪽을 경시하는 것이 현실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이다 (히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창세기 1장)과 부활의 능력(에스겔 37장)이 숨 쉬는 능력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을 설교하면 반드시 회심과 성숙이라는 생명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나는 이것을 ‘생명의 해석학’이라고 부르면서 학생들에게 강조해 왔었다. 목회 현장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선포하는데 생명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설교자에게나 교인들에게나 혹은 양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성경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와 평신도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양자가 성경을 성령의 능력으로 소화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전하고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목회자와 평신도가 성경을 가지고 생명의 변화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대변자와 수혜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성경도 강조하고 성령도 강조하면서 목회에 있어서 성경과 성령의 두 기둥을 제대로 다 세운다는 차원에서 나는 나의 목회의 기저에 BEST를 단단히 다져야 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BEST의 B는 성경(Bible)고, E는 강해(Exposition)이고, S는 성령(Spirit)이고, T는 변화(Transformation)이다. BEST는 성경을 풀어서 성령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생활의 변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성경을 이론적으로만 알게 하는 교육과 설교는 어떤 경우에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성경을 생활 속에 적용하셔서 신자의 삶이 반드시 성경대로 사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와 함께 팀 목회를 하는 교역자들과 평신도들이 모두 나와 함께 BEST 정신으로 목회해야 한다는 신념과 확신을 심어주고 있다.
성경과 성령의 두 기둥을 바로 세우는 작업을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서 나는 주일과 수요일에는 설교와 순장교육을 통해서 성경이라는 기둥을 바로 세우는 작업을 한다. 성경을 설교하고 가르칠 때도 물론 항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살후 1:5). 그러나 내가 속한 교단은 아무래도 성령보다는 성경에 비중을 더 크게 두고 성령에는 상대적으로 비중을 더 작게 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탓에 나는 의도적으로 성령이라는 기둥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금요 기도회를 아주 뜨겁게 인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금요 기도회를 ‘기도폭풍집회’라고 명명하고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이 임하신 성령(행 2장)을 의식적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교인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나는 성령을 ‘성부의 생기’(성령은 인격적인 제3위이시지만)로 보고 ‘성부의 생기’에서 ‘성’은 성령의 폭풍, ‘부’는 부흥의 폭풍, ‘생’은 생명의 폭풍, ‘기’는 기적의 폭풍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금요 기도폭풍집회에서 성령의 폭풍, 부흥의 폭풍, 생명의 폭풍, 기적의 폭풍을 체험하자고 외치고 있다. 기도폭풍집회는 경배와 찬양 40분, 설교 40분, 기도 70분, 이렇게 2시간 반 계속된다. 나는 특별히 70분간의 기도를 직접 인도하되 은사집회보다 더 뜨겁게, 더 열정적으로 인도한다. 기도 중에 교인들로 하여금 아픈 곳에 손을 대도록 하고 그 아픈 곳에 주님이 치료의 광선을 발하도록 기도하기도 한다. 우리 교인들은 기도폭풍집회에서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체험하고 때로는 병이 낫는 것을 체험하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성경과 성령의 균형을 잡은 BEST 정신으로 목회를 하고자 하는데 BEST 정신으로 목회를 한다고 할 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을 놓고 생각할 때 예수님이 어떤 사역을 하셨는가 하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갔다. 마태복음 9장 35절에 예수님이 하신 사역이 나온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교육사역,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전파 사역,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치유 사역을 하셨다.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치료하시는 사역을 하셨다는 기록은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하는 기록이다(마 4:23). 예수님의 교육, 전파, 치유 사역이 예수님의 사역의 일부라면 그것을 나의 목회의 총괄적인 사역으로 삼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교육, 전파, 치유 사역은 그분의 사역의 총화이기 때문에 나의 목회 사역의 프로그램으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치료하시는 일을 하셨다는 것을 이해하고 기억하기 쉬운 용어로 바꾸면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가지고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사역을 하셨다. 천국 복음이란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라는 소식이다. 복음서 전체를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구원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행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전하시고 죄인들의 대속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으며 그분을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복음이다. 예수님은 천국복음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예수님을 믿도록 살리시고 그들에게 천국복음을 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의 일환으로 모든 약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을 고치셨다. 예수님이 천국복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살리시고 키우시고 고치실 때 예수님은 어떤 심정으로 그 일을 하셨는가?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하며 유리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다(마 9:36). 무리가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하면서도 자기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아프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보실 때에 그들을 멸시하시거나 천대하시거나 귀찮게 여기시거나 정죄하신 것이 아니라,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품으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고통당하면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보실 때, 안타까워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그들을 향해 달려갔던 것이다.
죄인들을 손가락질 하고 죄인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마음은 목회자의 마음이 아니다. 목회 현장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인들을 볼 때나 목회자를 욕하고 비난하고 괴롭히는 교인들을 볼 때 그들을 미워하거나 정죄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면 목회는 처음부터 실패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을 십자가에 달고 욕하고 비난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고 하셨다(눅 23:34). 이것이 사역자의 심정이고 목회자의 심정이어야 한다.
예수님에게도 가롯 유다가 있었고 모세에게도 다단과 아비람이 있었으며(민수기 16장) 바울에게도 그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듯이 목회자에게도 거의 예외 없이 그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목회자가 자기를 대적하는 사람을 원수로 삼고 미워하고 맞붙어 싸우면 목회는 뿌리부터 썩는 나무와 같다. 목회자는 목회현장에서 가시처럼 구는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서 싸우는 목회를 해서는 안 된다. 목회자는 행악자 때문에 불평하지도 원망하지도 말고 행악자와 맞붙어 싸우지도 말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성실하게 자신의 사역을 해 나가기만 하면 된다. 물론 사랑으로 진실을 말하면서도 (엡 4:15) 목회자가 하나님만 바라보고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참고 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목회자를 괴롭히는 사람을 풀처럼 속히 베어 버리신다(시편 37편).
이중표 목사님이 한 때는 ‘권투 권사’나 ‘권투 장로’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면서 목회에 고전을 했으나 후에 갈라디아 2장 20절 말씀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별세 목회자로 목회할 때에 목회가 제대로 풀리기 시작했다고 한 것은 유명한 간증이다. 아마 목회자에게 가장 큰 심리적인 고충은 자신을 대적하는 교인들 때문에 겪는 고충일 것이다. 목회가 어렵다고 하는 말은 대체적으로 목회자를 괴롭히는 교인이 있다는 말과 통하는 것 같다. 그러나 목회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자신이 피 흘려 사신 양들을 맡기신 예수님께서 사명을 주시면 반드시 사명을 감당할 능력과 보람과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목회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지난 8년간 체험한 것은 목회현장에 고난이 있으나 고난보다 은혜가 더 크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천국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사역을 하실 때에 고생하며 유리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멸시하시거나 대적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예수님이 그들을 “민망히 여기셨다”고 할 때에 ‘민망히 여기다’는 단어는 헬라어도 ‘내장들’(intestines)을 총칭하는 ‘스플랑크나’가 그들을 향해 움직이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무리를 보실 때에 예수님의 ‘스플랑크나’가 움직이셨다. ‘스플랑크나가 움직이다’는 것은 헬라어도 인간의 가장 애틋한 정이 움직였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긍휼 사역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스플랑크나 사역’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보시고 고생하며 방황하는 양들로만 보신 것이 아니라 추수할 곡식으로 보셨다(마 9:37). 예수님은 사람들의 고통과 방황의 문제만 보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보신 것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구원자 예수님과 연결되기만 하면 그들의 문제가 다 해결된다. 죄 때문에 고생하며 방황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에게 배우기만 하면 안식과 영생을 누릴 수 있다(마 11:28-30).
사람들을 볼 때 예수님처럼 목자 없는 양으로 볼 뿐 아니라 추수할 곡식으로 보는 시각이 목회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남편 다섯을 두었다가 여섯째 남자와 살고 있는 여인까지도 추수할 곡식으로 보셨다(요 4:35-36). 목회자가 문제를 일으키는 불신자들과 신자들을 볼 때에 그들을 추수할 곡식으로 보는 눈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저 사람을 예수님과 연결해서 가르치기만 하면 저 사람도 새 사람이 될 텐데. 저 사람이 마약환자지만 예수님과 연결되어 예수님에게 배우게만 한다면 저 사람도 알곡이 될 텐데.” 목회자에게 이런 긍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목자 없는 양(문제)과 추수할 곡식(해결)으로 보신 것처럼 목회자도 사람들의 문제와 해결을 동시에 볼 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이런 자세로 천국복음을 전해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신 것처럼 목회자도 이런 자세로 천국복음을 전해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사역을 해야 한다. 천국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친다.’는 사역을 나는 생명사역으로 부르고 싶다.
목회자는 생명사역자이다. 예수님이 목회자에게 맡기신 사역을 천국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이다. 목회자가 생명사역을 제쳐두고 다른 일에 몰두하면 목회에 실패한다. 목회자가 사람을 천국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을 주변으로 돌리고 다른 일을 핵심으로 삼으면 목회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목회자가 생명사역자라면 목회자는 생명사역을 목회현장에서 어떻게 좀 더 구체적으로 전개할 것인가?

이미 출판된 <교회 성장 이야기>에서 밝힌 바 있지만, 내가 한국교회의 정체와 둔화 현상을 신학적으로 조명할 때 내게 가장 큰 도움을 둔 저자는 새들백(Saddleback) 교회의 릭 워랜(Rick Warren) 목사님이었다. 릭 워랜 목사님은 교회의 5대 사역을 제시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믿게 하는 선교(전도), 예수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즐기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예배, 예배드린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게 하는 교제, 교제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점점 더 자라게 하는 교육(훈련), 교육(훈련)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 안에서와 교회 밖에서 섬기게 하는 봉사(사역)--나는 이것을 생명사역의 5대 분야로 보고 있다. 목회는 천국복음을 가지고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되 반드시 선교(전도), 예배, 교제, 교육(훈련), 봉사(사역)--이 5대 분야를 포괄해야 한다. 목회자마다 교회마다 특징과 역점이 있을 수 있지만, 가급적이면 이 5대 생명사역이 균형을 잡도록 해야 한다. 모든 성도들이 은사에 따라 5대 사역 중 어떤 분야에서든 들어가서 사역을 하게 함으로써 모든 교인들이 나와 함께 팀 목회의 일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약 8년 전에 대구동신교회에 부임했을 때 5대 생명사역 관점에서 동신교회의 현상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동신교회가 선교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선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예배와 교제와 교육(훈련)과 봉사(사역)가 지나치게 약화될 정도로 선교가 강화되면 몸의 기관들 중에 어떤 기관만 지나치게 성장하여 힘을 발휘하고 다른 기관들은 지나치게 약화되어 기진해 있는 것과 같다. 교회는 유기체(organism)이기 때문에 몸의 어느 부분도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동신교회의 사역 중에 선교가 지나치게 비대하고 다른 부분들은 약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선교와 기타 사역의 조화와 균형을 의도적으로 기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교인들 중에 선교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도 더러 있었지만 나는 그런 반발을 못 들은 채 하고 5대 생명사역의 균형을 잡는 작업을 시도했다. 가령 경상비에서 선교비로 넘어가는 돈도 줄여 가면서 선교 외의 다른 사역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을 강하게 추진했다.
요즈음 교계의 유행어 중에 ‘선교하면 복 받는다.’는 유행어가 있다. 나는 이 유행어가 부분적으로는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신화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역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바른 동기와 바른 자세로 선교하는 교회가 복 받는 것은 사실적 진리다. 그러나 다른 사역을 거의 무시하면서 선교에 편중하되 다른 교회들과 선교 실적을 경쟁하듯이, 선교 많이 했다는 자부심과 자만심을 키우면서 선교하는 교회가 복 받는다는 것은 허구적 신화다. 교회마다 선교한다는 교인들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른 사역을 무시한 선교지상주의에 빠져 선교에 크게 헌신하고 선교에 열중하면서도 말씀을 통해서 은혜 받는 것은 거의 없고, 선교에 관한한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으로 밀어붙이는 ‘광적 선교 신자’ 때문에 목회자와 교회가 몸살을 앓는 경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동신교회가 선교를 하되 보다 더 건전한 의식을 가지고 선교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산도 조종하고 선교자세도 바로 잡는 일을 했다. ‘몇 개국에 몇 명의 선교사를 파송했고 예산을 얼마를 책정했다.’는 식의 물량주의 선교에서 정보와 전략 선교로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했다. 선교에 있어서 정보라는 것은 선교지와 선교사의 정보를 이론적으로도 파악하고 실제적으로 현장에서도 파악해서 수집한 정확한 지식을 말한다. 전략이라는 것은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선교할 것인가 해서 세운 계획이다. 나는 정보선교와 전략선교라는 기치 아래 교인들과 함께 선교현장을 방문하면서 정보를 수집 확인하고 전략을 세우는 작업을 했다.
내가 2000년 처음으로 목회를 시작할 때는 동북아선교를 부르짖었다. 북한과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와 몽골 등 동북아 지역 선교를 강조했었다. 대서양을 통과하는 무역량보다 대평양을 통과하는 무역량이 많을 정도로 환태평양 시대(the Pacific rim era)가 되었기 때문에 동북아 선교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동시에 1만 여개의 미전도 종족 중에 우리가 입양할 수 있는 종족을 입양해서 그 종족을 복음화 하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입양선교도 전개했다. 동북아 선교와 입양 선교를 전개하다가 보니 자연스럽게 중국 선교에 상당히 많은 비중을 두게 되었고, 중국 운남성의 백족을 입양하게 되었다.
동북아 선교와 입양 선교를 하면서 내가 발견한 것은 교인들에게 선교의 동기를 새롭게 부여하고 선교의 열정에 불을 계속 지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매월 첫 주에는 선교 헌신 예배를 드리고 선교사의 보고 설교를 계속 듣다가 보니 교인들이 어느새 선교에 식상하게 되고 선교에 지치게 된다는 것을 본 것이다. 어떻게 하면 교인들이 선교에 새로운 동기와 식지 않는 열정으로 뛰어들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내가 고안한 것이 1/5/2/5 운동이다. 1/5/2/5 운동에서 ‘1’은 모든 교인이 평생 1개월(한꺼번에 하든지 혹은 나누어서 하든지)은 선교지에 자신의 재능을 바치자는 것이다. ‘5’는 모든 교인이 매월 5만원씩 바쳐서 선교지의 한 사역자를 돕자는 것이다. ‘2’는 모든 교인이 평생 2백 만 원을 바쳐서 선교지에 교회나 신학교나 기타 건물을 짓는 일을 돕자는 것이다. 마지막 ‘5’는 모든 교인이 평생 5십 만 원을 준비해서 선교 여행을 다녀오자는 것이다. 매해 선교 예산을 다시 책정하고 선교 헌신을 다시 다짐하는 선교 총회 주일에는 1/5/2/5 운동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면서 모든 교인들이 선교에 새롭고도 뜨겁게 동참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동북아 선교와 입양 선교를 전개하던 중 나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유럽과 아프리카로, 유럽에서 미주로, 미주에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서쪽으로 중동을 거쳐 결국 예루살렘에 이른다는, 복음의 서진화 현상과 그것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와 함께 선교의 서진정책을 펴서 주로 ‘10/40 윈도우’ 안에 들어 있는 회교 불교 힌두교 국가들에도 선교사를 파송하고 협력 지원하는 일을 펼치게 되었다. 혹시 서진정책 때문에 세계의 다른 지역을 제쳐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세계 어느 지역의 선교도 돕는다는 차원에서 다변화 정책도 펼치게 되었다.
서진 정책과 다변화 정책을 펼치던 중 최근에 한국에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몇 년 전부터는 ‘유동선교’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선교지와 선교대상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 단일민족이라던 우리나라에 이미 1백 만 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들어와 있어서 선교지와 선교대상이 많이 움직였다는 것에 근거한 유동선교를 펼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근로와 유학과 결혼 등의 목적으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1백 만 명이 넘는데 그 중에 중국 유학생들이 엄청 많다는 사실에 우리는 눈을 돌려야 한다. 중국이 앞으로 십여 년이 지나면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유학생들은 중국의 엘리트들(그 중에는 유학생을 가장한 근로자도 다수)이라 그들이 후에 중국으로 귀국하면 중국 각성 각지의 리더들이 될 것이다. 앞으로 중국 대륙을 움직일 잠재적인 지도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로 하여금 우리 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게 하고 그들과 우리 학생들로 서로 교제하여 친분을 두텁게 하는 것은 복음화 면에서나 국익 면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중국 유학생들이 중국에 있을 때는 한국 선교사들이 그들에게 자유롭게 접근하여 복음을 전하지 못하지만, 중국 유학생들이 일단 한국에 들어오면 우리가 얼마든지 자유롭게 그들에게 복음은 전할 수 있다. 중국 유학생들은 한국 사람들의 언어와 문화와 학문을 배우러 왔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만 관심과 사랑만 베풀면 마음을 활짝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이렇게 동북아 선교, 입양 선교, 서진선교, 다변화 선교, 유동 선교를 펼치면서 처음에 선교의 예산까지 줄여서 선교를 약화시키려 한다는 비난을 받을만한 상태에서 이제는 이전보다 성숙하면서도 균형 잡힌 선교를 펼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5대 생명사역 중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로 예수님을 믿게 하는 선교에 대해서 언급했거니와 선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전도는 어떤가? 나는 동신교회에서 전교인이 모두 다 예수 안 믿는 가족과 친척과 친구와 동료와 이웃을 전도하는데 관심을 두도록 매해 10월 말에 새생명축제를 앞두고 4월에는 태신자 작정을 위한 특별새벽기도, 10월에는 태신자 인도를 위한 특별새벽기도를 하고 있다. 모든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지키고자 하는 거룩한 부담을 가지고 최소한 1년에 1명씩은 주님께로 인도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성도들이 전도에 부담을 갖도록 하면서 동시에 일부 전도에 은사가 있고 열정이 있는 신자들은 주사랑전도대, 갓바위전도대, 스포츠 전도대 등을 통해서 전도하도록 하고 있다. 모든 성도들에게 생명카드(은행카드와 비슷한 사이즈 카드 한 장 앞뒷면으로 신론, 인론, 기독론, 구원론을 요약하여 전도하는 카드) 훈련을 시켜 전도하게 하고, 우정 친절 봉사 초청 등을 통한 관계 전도, 경로대학 문화대학 등을 통한 노인들과 주부들 대상의 전도, 소년소녀가장 돕기, 독거노인 반찬 서비스, 지역 사회 봉사 등을 통한 봉사 전도 등을 펼치고 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로 예수님을 믿게 하는 선교나 전도 다음으로 교회의 중요한 생명사역은 예배이다. 성도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집중적으로 돌리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하는 예배가 살아 있어야 한다. 예배 시작 10분 전부터 시작되는 경배와 찬양을 통해서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향으로 활짝 열리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대표기도는 3분 이내로 해서 새신자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하면서 기도에 적극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설교는 설교자가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본문과 주제와 간추린 내용을 잡고 수요일부터 책과 삶을 통해서 설교의 깊이와 적용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히 새벽기도 시간마다 최소한 30분 이상 주일 예배 설교 본문을 묵상함으로써 예레미야처럼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렘 23:18) 하나님의 은혜를 감격스럽게 체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청년들의 경우 21세기 감성의 시대에 감성을 마음껏 발산하면서 ‘열린 예배’를 드리게 하되 청년들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하나님에게 보고 듣고 만지듯 실감나게 예배를 ‘드리는’ 것을 불신자들이 와서 ‘보게’ 해야 한다. 신자가 예배를 ‘보는’ 것은 예배를 구경하는 것이다. 신자는 반드시 예배를 ‘드리게’ 하고, 초청 받은 불신자는 예배를 ‘보게’ 한다면 ‘열린 예배’도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헌금은 모든 신자들이 십일조를 드림으로 복을 받게 함으로써 물질 면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맛을 보게 해야 한다 (말 3:10). 모든 신자는 어차피 100% 십일조를 드린다. 일부는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일부는 십일조를 떼어 먹음으로써 하나님이 ‘거두어’ 가신다. 모든 신자들이 십일조를 ‘거두어’ 가시는 ‘징계’를 받지 않고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서 ‘시복’(施福)을 받게 해야 한다.
설교 후의 찬양은 가급적 설교자가 설교에서 표출한 뜨거운 가슴으로 설교와 맞는 찬양을 뜨겁게 인도하게 하여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기 전에 설교의 감동을 한껏 체험하고 표출하게 해야 한다. 이리하여 모든 성도가 주일 예배를 일주 내내 사모하고 기대하게 해야 한다. 예배가 살면 교회가 산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맛보는 예배 다음에 중요한 사역은 교제이다. 과거에 한국 교회 교인들은 대체적으로 구역을 통해서 교제를 했다. 구역은 주로 끈끈한 인정을 기초로 해서 교인들이 교회에서 빠져 나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소그룹으로 모여 성경을 생활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귀납적으로 공부하는 다락방은 구역의 약점을 극복했지만 기도와 전도가 약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최근에 셀(cell)이 등장해서 다락방의 약점인 기도를 강조하여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고 전도를 강조하여 생명의 재생산을 시도하고 있다. 셀의 경우 목회자가 자율권을 어느 정도로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활성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대체적으로 회중정치를 표방하는 교회는 셀에 자율권을 많이 부여하고 있지만 장로정치를 표방하는 교회는 셀에 자율권을 상대적으로 많이 부여하지 못한다. 가령 셀 리더가 세례(침례)를 주고 셀이 드리는 헌금으로 셀이 정한 선교사를 지원하는 정도까지의 자율권은 장로교회가 주는 경우는 없다.
나는 교인들이 일단은 구역으로 모여야 하기 때문에 모일 수 있도록 독려하는 일로부터 시작했다. 교인들이 소그룹으로 모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단 주일 예배의 감격과 설교의 은혜가 임해야 한다. 교인들이 은혜를 받으면 목회자의 권면에 달게 순종하게 된다. 교인들이 소그룹으로 잘 모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소그룹의 형태를 전통적인 교회 예배와 같은 공식적인 형태에서 성경에 근거해서 삶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고 기도해 주는 비공식적인 형태로 바꿀 필요가 있다. 목회자가 순장교육을 통해서 말씀에 은혜를 체험하게 하고 말씀이 구체적으로 생활 속으로 적용되도록 하되 순장이 귀납적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소그룹을 효과적으로 인도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귀납법적 성경 공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소그룹 구성원들이 연로할 경우는 전통적인 예배 방식으로 소그룹을 인도할 수밖에 없는 한계도 있다.
소그룹은 항상 천국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되 생명이 재생산되는 방향을 잡아야 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동신교회는 전통적인 교회로 이 일이 잘 안 되기 때문에 나는 ‘참신 다락방’(fresh cell)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생명의 재생산을 시도하고 있다. 참신 다락방은 생명사역 훈련이 잘 된 부부에게나 1명의 순장에 2명의 보조에게 한 다락방을 맡기되 기존 신자가 전혀 없는 다락방을 맡기는 것이다. 참신 다락방은 말하자면 개척 다락방으로 신자가 없는 다락방을 맡아서 이웃들에게 전도하여 다락방으로 오게 한 다음 처음에는 다과와 생활 주변 이야기를 나누다가 좀 더 친해지면 초청된 불신자의 기도 제목을 받아 기도해 준 다음 그의 마음이 열리는 정도를 보아서 적당한 때가 단순한 복음을 전하고 그가 다락방에 정착된 다음 교회로 데리고 오도록 하는 것이다. 동신교회는 참신 다락방 몇 개를 시행하면서 앞으로 참신 다락방의 정신과 방향이 기존 다락방으로 파급되게 하여 모든 다락방을 생명의 재생산 방향으로 바꾸어 가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선교(전도)와 예배와 교제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교제하는 성도들이 자기들끼리 좋아하도록 내버려두면 교제증(koinonitis)에 빠지게 된다. 교인들이 끼리끼리 좋아해서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남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악습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인들을 끊임없이 교육(훈련)해야 한다. 교인들이 계속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이 하신 생명사역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교회는 학교나 훈련소가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는 교회생활 전체가 하나의 커리큘럼으로 정리되어 있다. ‘오도록--보도록--배우도록--해보도록--맡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다. 사람이 출생하여 일을 하는 과정을 살펴보니 바로 이런 과정을 통과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이 먼저 어머니 배 속에서 세상으로 나오는데 그것을 출생이라고 한다. 이것은 불신자가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는 영적인 출생과 유비된다. 교회는 일단 불신자가 교회로 ‘오도록’ 해야 한다.
사람이 출생한 후에는 아무 말을 하지 못하지만 눈으로 그저 보면서 배운다. 부모님의 품속에서 눈으로 보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 교회도 일단 교회에 온 사람으로 하여금 ‘보도록’ 만들어야 한다. 교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보도록 하는데, 이것을 나는 양육이라고 부른다. 우리 교회는 새가족이 올 경우 새가족 교육을 받도록 한 후에 바로 확신 양육 성장 과정을 밟게 하는데 이것이 기본적인 교회생활을 ‘보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이 보면서 배우는 과정에 지나면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정식으로 배우는 기간이 있다. 이것이 ‘배우도록’ 하는 것인데, 나는 이것을 교육이라고 부른다. 교회는 교인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도록 한 후에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통해 ‘배우도록’ 해야 한다. 우리 교회는 BEST 성경대학이라고 하여 지금 교계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교인들이 ‘배우도록’ 도와준다. ‘성경을 풀어서 성령으로 변화시킨다’는 BEST 정신으로 성경 통독반, 성경 일독 학교, 신구약 파노라마, QT 반, 크로스웨이 등을 ‘배우도록’ 한다.
사람이 배우는 과정이 끝나면 직장에 취직하여 실제로 일을 해 보는 실습 기간이 있다. 교회는 ‘해보도록’ 하는 훈련과정으로 제자훈련, 사역훈련, 전도폭발훈련 등을 제공한다.
사람이 ‘해보는’ 단계가 지나면 직접 일을 ‘맡도록’ 하는 단계가 있는 것처럼 교회는 훈련이 끝난 교인으로 하여금 순장과 교사 등의 일을 실제로 하게 한다. 교인들이 이런 과정을 통과할 때 이론적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제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을 통해서 재생산을 하도록 교육과 훈련을 시킨다.
‘오도록(등록)--보도록(양육)--배우도록(교육)--해보도록(훈련)--맡도록(사역)’, 교인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재생산을 위한 생명사역자가 되도록 할 때 훈련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본래 제자훈련이나 사역훈련 등 훈련에 대해서 별로 좋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특별히 제자훈련의 경우 예수님이 12명을 데리고 제자훈련을 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이 정말 그런 훈련을 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때에 그렇지 않았다는 대답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나 요한이나 그 어떤 제자도 12명이나 소수의 제자들을 데리고 예수님처럼 훈련시킨 기록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제자훈련을 하면 교인들이 교만해져서 목회자의 목회방침에 순종하지 않고 나름대로 무엇을 하려고 함으로써 목회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훑어볼 때 하나님이 사람을 다루시는 방법이 훈련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훈련시키셨고 이삭과 야곱을 훈련시키셨고 요셉과 모세와 다윗을 훈련시키셨다. 하나님은 나를 훈련시키셨고 지금도 훈련시키시고 계신다. 우리가 우리 자녀를 키울 때도 ‘얘야, 바로 살아라.’ 하는 것으로 교육이 끝난 것이 아니고 바로 살 때까지 훈련시키고 있지 않는가.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훈련은 매우 성경적인 개념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내가 실제로 목회하면서 훈련을 시켜 볼 때 훈련의 가장 좋은 환경은 소그룹이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나는 훈련은 100% 성경적이고, 소그룹 훈련은 실제적으로 가장 효과적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나는 이런 확신을 가지고 교회의 모든 교육은 ‘교육한 대로 사는 지를 확인하여 그대로 살게 하는’ 훈련 차원으로 보게 되었다.
어머니 배속에 있는 영아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주일학교 학생들도 이런 차원에서 교육과 훈련을 시키고 있다.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되 가장 효과적인 현대적 방법으로 가르치도록 하고 있다. 나는 주일학교 교역자들에게 ‘죄를 짓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장 효과적인 교육 방법’을 마음껏 사용해서 교육과 훈련을 하도록 하고 있다.
여느 교회 주일학교와 비슷한 전통적인 주일학교도 운영하고, 동시에 전혀 새로운 주일학교도 2008년도부터 운영하고자 한다. 이름하여 ‘참신 스쿨’(Fresh School)이라고 하여 교역자와 부장 부감과 몇 명의 교사만 두고 학생은 한 명도 없는 주일학교를 운영하게 하는 것이다. ‘참신 스쿨’은 기존 학생이 전혀 없으니 전도해서 양육 교육 훈련을 시키는 주일학교이다. ‘참신 스쿨’을 맡은 교역자들이 처음에는 죽을 맛이라고 하더니 기도하고 준비하면서 자신들의 영혼이 사는 것을 느끼고 마음속에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것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요즈음 교역자나 평신도나 기도나 전도나 신앙 전반에서 야성(野性)을 상실하고 타성(惰性)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특별히 전도의 야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참신 다락방’이나 여기서 언급하는 ‘참신 스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참신 다락방을 통해서 기존 다락방을 서서히 재생산을 위한 다락방으로 체질개선 하는 것처럼 ‘참신 스쿨’을 통해서 기존 주일학교의 체질개선을 시도하려고 하는 것이다.

선교(전도), 예배, 교제, 교육(훈련)을 개관하였는데, 이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처럼 일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정신으로 예수님이 하신 생명사역을 하는 것이 ‘사역’ 혹은 ‘봉사’이다. 교인들이 교육과 훈련을 받는 목적은 예수님처럼 목회자와 함께 ‘작은 목자들’로 사역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와 교회 밖에서 특별히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는 사역(봉사)을 해야 교육과 훈련을 받은 것이 보람이 있고 사역을 해야 자신의 부족한 것을 느끼면서 자기 발전을 위해 더욱 더 깊은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담임목사인 내가 직접 순장 교육을 담당해서 이미 교육과 훈련을 받은 순장들이 평생 계속 교육과 훈련을 받도록 하고 있다. 순장 교육을 담임목사가 맡는 것이 중요한 것은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이 공식적인 설교만을 통해서는 다 전달되지도 않고 제대로 자세하게 그 정신까지 살려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담임목사가 직접 순장교육을 담당해서 매주 순장교육을 하면 담임목사의 생명사역이라는 목회철학이 순장들을 통해서 모든 교인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순장들은 순장교육을 통해서 계속 성장 성숙하게 되고 교인들은 순장들을 통해서 계속 성장 성숙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5대 분야에서 생명사역을 전개할 때 공동체와 소그룹, 이 두 기둥을 든든하게 세워야 한다. 물론 소그룹도 공동체성이 있지만, 내가 말하는 공동체는 주로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공식예배 때의 공동체를 말한다. 소그룹은 소그룹으로 모여 교육과 훈련을 받고 교제와 봉사를 하는, 말 그대로 작은 그룹을 말한다. 소그룹은 교회에서 주로 다락방(구역 혹은 셀)과 훈련 소그룹(제자 훈련, 사역 훈련, 전도폭발 훈련), 혹은 남여 전도회로 나타난다. 교회는 공동체의 기둥도 든든하고 세우고 소그룹의 기둥도 든든하게 세워야 건강한 교회가 된다.
공동체와 소그룹의 두 기둥을 든든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생명을 공급하는 가정(home) 역할을 하게 하면서 동시에 생명을 재생산 하는 사명(mission)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 소그룹도 똑 같이 생명을 공급하는 가정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생명을 재생산 하는 사명을 부여해야 한다. 공동체가 가정처럼 생명을 공급하면서 생명을 재생산 하는 사명을 부여한다는 차원에서 ‘공가사’(공동체가 가정과 사명), 소그룹도 생명을 공급하는 가정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사명을 부여한다는 차원에서 ‘소가사’(소그룹이 가정과 사명)--이렇게 교회는 ‘공가사(共家使) 소가사(小家使)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상과 같은 생명사역 목회철학을 가지고 작년 말까지 대구동신교회를 섬겨왔었다.  하나님은 작년 말 내게 새로운 목회 부담을 안겨 주셨다. 그것은 천국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을 7년간 전개한 결과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나오게 하심으로 교회 공간이 부족하게 되었다. 교회 공간 확장을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고심하던 하나님께서 사무엘하 7장 말씀을 깨닫고 적용하게 하셨다. 사무엘하 7장은 다윗이 성전 건축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성전 건축을 아들 솔로몬 대에서 하게 하겠지만 ‘하나님의 집을 지으려는’ 다윗의 마음을 가상히 여기신 내용이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위해 내 집을 짓겠느냐? 내가 너를 위해서 네 집을 지어 주겠다.” 이 말씀이 나와 우리 교회에 매우 적절한 것 같아서 나는 앞으로 7년간의 구체적인 비전을 교회 앞에 내어놓게 되었다.
그것은 소위 ‘3*7 비전’이라는 것이다. ‘사무엘하’를 ‘삼’(3)으로 ‘칠 장’을 ‘칠(7)’로 하여 ‘삼칠(3*7) 비전’을 교회 앞에 선포하게 되었다. 3*7 비전은 2007년부터 2013년까지 7년 동안 학생 포함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 공간을 마련하는 비전이다. 대예배실은 가능하면 3,700석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1구좌를 300만원으로 잡고 7,000구좌, 총 210억 원을 마련해야 한다.  
3*7비전은 한 편으로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는 사도행전 13장 22절 말씀대로 교인들로 하여금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 복음윤리 확립을 목표로 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라는 사무엘하 7장 29절 말씀대로 교회 공간을 확장하면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
3*7비전은 단순하게 교세를 확장하는 비전이 아니다. 3*7비전은 대구와 민족과 세계를 복음화 하면서 시민들과 국민들의 삶을 바꾸기 위한 수단이다. 특별히 대구는 복음화 율이 전국적으로 가장 낮은 도시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3*7비전을 통해서 대구 시민의 30%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복음화를 앞당기는 일이 시급히 요청된다.
대구 팔공산은 대구의 상징적인 산으로 불교 신자들이 갓바위를 비롯하여 1년에 팔공산을 찾아가는 숫자가 대충 5백만 명이라고 한다. 팔공산은 가히 불교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팔공산을 하나님을 섬기는 시온산으로 바꾸는 것이 나의 꿈이다. 팔공산을 시온산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생명사역을 힘차게 전개할 수 있는 틀(framework)이 잘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신교회는 대구와 민족과 세계의 복음화와 삶의 변화를 위한 틀로 앞으로 7년 간 3*7비전을 추진하게 된다. 지금까지 성실하게 인도해 오신 하나님께서 3*7비전도 이루어 주실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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