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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 에이즈 문제와 한국교회-박진태 목사
한복협  2009-07-17 07:19:37, 조회 : 5,201, 추천 : 1496

복음주의 관점에서 본 동성애
(부제: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 고찰)

박진태 목사
: RAM 선교회 공동대표 및 FSRDPP에이즈담당 연구원
& Ph.D. Cand. in UFS

1. 서론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 10월1일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에이즈 증가율은 2004년 610명이었던 수가 2007년 744명으로 22% 증가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이미 394명이 발병한 것으로 나타나 증가세는 계속 될 것으로 예측됐다. 또한 같은 기간 남성 에이즈 발병자 수는 2953명으로 여성의 225명에 비해 13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 가운데 여성 동성애자의 에이즈 발병은 한 명도 없었던 반면 남성 동성애자는 전체 남성 발 병자의 38.3%에 해당하는 1130명에 달하는 특징을 보였다고 한다. 이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의 에이즈 확산에 있어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동성애다. 특히 한국에서 에이즈가 갈수록 더 확산되어가는 이면에는 우리 모두가 언급하기 꺼려하는 동성애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한국에서의 에이즈 확산의 주범에 해당하는 동성애에 대해 복음주의 입장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해야 하는 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2.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 고찰

그렇다면 먼저 성경에서는 동성애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경에서는 동성애가 아주 부정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성경은 동성애에 대해 함축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분명히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성경에서 다루어지는 순서대로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하나님은 동성애가 아니라 이성애를 전제로 가족 제도를 제정하셨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것, 즉 자녀를 가질 것을 명령하셨을 때 이는 이성애 관계를 전제로 하신 것이었다(창 1:27-28). 성관계는 태초부터 가족 관계를 전제로 주어진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창 2:24)라고 말씀하셨는데, 바울은 이 “한 몸”이 성적인 관계, 즉 성교를 암시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전 6:15-17).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 13:4)고 선언하고 있으며, 십계명은 “간음하지 말지니라” 그리고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찌니라”고 선언한다(출 20:14, 17). 이러한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이성애적 결혼 관계 안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성관계가 이루어지도록 규정하셨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둘째,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 죄 때문에 심판 받았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는 동성애로 유명하다. 소돔에 그 어원을 두는 “소모미”라는 단어의 의미(남색)는 ‘동성애’를 특징으로 하는 그 도시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그 도시의 남자들은 롯에게 분명히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섹스)하리라”(창 19:5)고 말했으며 이러한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불로 심판하셨다. 이에 대해 유다서는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그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고 선언한다(유 7).  

셋째, 모세의 율법은 동성애를 정죄한다. 구약성경에서의 율법은 남색과 수간 둘 다를 정죄한다. 레위기는 “나는 여호와니라.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너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레 18:21-23). 덧붙여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다(그것은 타락이다)”라고 말씀하셨다(23절). 주목할 것은 동성애가 단지 유대인에게 있어서만 죄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족속들을 심판하셨는데, 이어지는 구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레 18:24-25). 계속해서 그 율법은 “무릇 이 가증한 일을 하나라도 행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29절)고 분명히 경고한다. 하나님께서 동성애를 아주 심각한 죄로 여기신다는 사실은 동성애를 정죄할 때 아주 엄하게 표현 즉 ‘가증스러운’, ‘더럽히지’, ‘더러워져(타락)’, ‘토하여’ 등과 같은 엄한 언어를 사용하고 계심과 더불어 이 죄를 사형의 형벌로 다스리는 것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유대인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이 같은 타락을 자행하는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이는 신 불신을 불문하고 분명 도덕적으로 아주 심각한 죄임을 드러내 준다.    

넷째, 성소(제단)에서 자행되는 동성애 매춘도 정죄되었다. 일반적인 동성애가 정죄된 것뿐만 아니라 성소(제단) 제사 의식의 일부로서의 자행된 동성애 또한 정죄되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미동이 있지 못할찌니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신 23:17-18)고 쓰고 있다. 여기서 동성애 행위가 우상숭배와 연관되었기 때문에 사악한 것으로 여기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음행과 동성애, 그것 자체를 혐오스러워하신다. 즉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이성애 부부간에 허용된 성관계의 타락이기에 혐오스러워하신다. 이 같은 행위는 구약성경 전체를 통해 정죄되고 있다.    

다섯째, 동성애는 사사기에서도 정죄된다. 사사기 19장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기괴하고 기가 막힌 죄 중의 하나가 동성애에 의해 유발되는 것을 보여준다. 그 이야기는 한 레위인이 여행길에 기브아를 지나다가 한 노인의 집에 초대되어 머물 때, 그 성읍의 비류들로부터 동성애의 위협에 처하게 된다. 그때 그는 그의 첩을 내어 줌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되는데 그 첩은 밤새도록 행음을 당하다 죽어 돌아오게 된다. 이에 그 레위인은 그 첩의 시체를 토막 내어 이스라엘 각 지파로 보내어 기브아인들의 죄악상을 들추어 내어, 그들을 징계하게 된다. 이 모두가 동성애로부터 일어난 일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그 레위인이 그의 첩을 그들에게 내어 주는 것을 동성애보다 덜 망령된 것으로서 보았다(24절)는 사실은 동성애가 얼마나 심각한 죄임을 잘 드러내 준다.

여섯째, 선지자들은 남색을 정죄했다. 동성애는 구약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정죄되고 있다. 열왕기서의 저자는 동성애의 죄악성을 거듭해서 드러내는데, 그는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왕상 14:24)고 쓰고 있으며, 아사의 개혁 중 하나가 바로 “그가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낸”(왕상 15:12) 것과 아들 여호사밧도 “그 부친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낸”(왕상 22:46) 것이 었으며, 후에 선한 왕 요시야가 부흥을 일으켰을 때 그도 마찬가지로 “또 여호와의 전 가운데 미동(남창)의 집을 헐었다”(왕하 23:7)는 사실을 소개한다. 선지자 에스겔은 동성애를 “가증한 일”(겔 16:50)로 부르면서 소돔의 음란한 죄에 대해 분명히 거슬러 말하는데, 이는 레위기에서 동성애를 묘사할 때 사용된 똑 같은 단어다(레 18:22-23).

일곱째, 로마서 1장은 이교도 사이에서의 동성애를 정죄한다. 성경에서 동성애에 대해 가장 잘 서술하고 있는 본문은 로마서 1장에 나타난다.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 좇아 나타나기”(롬 1:18) 때문에 그것을 죄로 지칭하고 있다. 여기서 동성애는 “정욕(사악한 욕망)”, “더러움(성적 부도덕)”, “욕되게 하는 것”, “거짓”, “부끄러운 욕심”, “역리”, “음욕이 불일 듯 하는 것”, “부끄러운 것”, “그릇됨”(24-27절)으로 불린다. 이러한 악한 행위들의 결과로써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셨으며, 그들은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차게 되었다(29절)고 한다. 바울은 다음 구절에서 동성애 행위를 명백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26-27절)고 한다. 여기서 두 단어 ‘바꾸어’와 ‘버리고’는 주목할 만한데, 둘 다 자유롭고 죄악된 선택으로 그런 죄악 된 행동에 관여하게 되었음을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혹자들이 그들이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동성애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또한 말씀은 동성애가 “비정상적(역리)”(26절)이다라고 말씀하는데 이는 곳 동성애가 하나님께서 “마음에 새겨 놓으신”(2:15) 자연법에 정반대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동성애 죄는 단순히 성경적 윤리에 대한 위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해 제정하신 하나님의 자연적 도덕 기준에 대한 심각한 모독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이런 이들은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12-15절).        

여덟째, 하나님님의 나라에는 동성애자가 없다. 고린도전서 6:9에 의하면,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분명히 말씀한다. 비록 신자가 어떤 죄에 잠시 잠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회개 없이 그것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이는 신자라고 할 수 없다. 동성애를 지속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신자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기 때문이다”(요일 3:9).

아홉째, 디모데전서는 동성애를 정죄한다. 여기서 바울은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딤전 1:9-10)라고 말한다. 여기서 남색으로 표현되는 동성애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성경에서 공히 악하게 여기는 다른 죄들과 함께 열거되고 있는 사실을 통해 볼 때 성경적 관점에서는 동성애가 문화적 차이를 뛰어 넘어 죄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열째, 유다서는 동성애를 타락으로 지칭한다. 유다서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천사들을 심판 날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심으로 심판하셨다(6절)고 선언하면서 이어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7-8절)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구절들은 소돔의 죄가 성적인 죄임과 더불어 그들이 저지른 동성애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분명히 드러내 준다.

이와 같이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각기 다른 장소, 다른 문화권의 영향 아래 있는 저자들과 독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동성애가 죄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죄가 사형이나 출교에 해당하는 아주 심각한 죄로 아주 강한 어조로 정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주 강한 부정적 용어로 묘사하시고, 또 그것을 아주 단호한 방법으로 심판하신다. 동성애가 용납할만하고 존중되어야 할 새로운 시대의 대안적 삶의 방식이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성경 그 어디에서도 결코 찾아볼 수 없다.  


3. 사회 도덕적 관점에서의 동성애 비판

이러한 성경적 관점을 바탕으로 우리는 동성애 옹호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함과 동시에 다음과 같이 사회 도덕적 관점에서 동성애를 비판할 수 있다.  

첫째, 동성애가 성인 상호간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 그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인 상호간이 합의를 했다고 해서 그것 자체로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성인들이 합의하기만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던지 도덕적으로 정당해진다는 주장은 그들이 악한 것을 하기로 합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명백하게 잘못이다. 두 성인이 은행강도나, 어린이 유괴나 또는 대통령 암살 같은 일에 합의할 수도 있다. 이것이 두 성인간의 합의라고 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더 나아가 그들이 합의한 것이 그 둘 만에 대한 것이어도 그것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서로 자살하는 것을 돕기로 합의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또는 각자 다른 사람의 신체를 불구로 만드는 일에 합의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정당화될 수 없다. 상호간의 합의가 자동적으로 한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이 주장은 개인이 바로 옳고 그름에 대한 궁극적인 기준이며, 자신이 스스로 제한한 것을 제외하고서는 인간의 자유에 그 어떠한 제한이 있을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우리가 창조주가 아니라 창조물이며, 창조물로서 성적으로 우리 신체를 남용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신 창조주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혹자는 동성애가 단지 사생활일 뿐이며 누구든지 사생활 즉 사적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 즉 사적 자유가 비도덕성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비록 우리가 사생활에 대한 권리를 가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반윤리적 행동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우리에겐 사적 자유로 강간을 하거나 사적 자유로 살인할 권리는 없다. 비도덕적 행위가 그것이 위치가 바뀌었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도덕이나 법에는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만일 공적인 난교파티가 잘못이라면, 사적인 난교파티 또한 잘못인 것이다. 그 역 또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부부간의 성관계가 사적으로 정당하기 때문에 그것을 공적으로 해도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 동성애가 유전인자의 문제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동성애 성향은 유전된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 동성애가 유전인자에서 연유된다는 확고한 과학적 증거는 없다. 다만 동성애가 학습된 행동이라는 주장이 더 강하다. 근래에 들어 동성애가 점점 더 늘어나는 데는 동성애자들의 사회운동과 대중매체를 통한 학습의 영향이 크다. 즉 그 만큼 동성애의 유혹이 오늘날 더 심화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성애 성향으로 유전된 경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동성애 행위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폭력적 성향을 유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폭력적 행위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알코올 남용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이것이 알코올중독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성경은 동성애가 “비정상적인” 것이며, 단지 사람이 그의 혹은 그녀의 자연적 성향을 포기할 때(“버리고 바꿀 때”) 발생하는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롬 1:26-27). 사실 우리 모두는 죄의 경향성을 유전하고 있다. 성경은 이를 또한 우리에게 가르친다(시 51:4;엡 2:3).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범죄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넷째, 도덕성은 바뀌지 않는다. 혹자는 도덕이 태고적부터 바뀌어 왔기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기본적인 도덕의 원리는 바뀌지 않는다. 바뀌는 것은 기본적인 도덕의 원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우리의 실천이다. 도덕법 그 자체가 변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도덕적 가치를 변하는 도덕적 실천과 혼동하기 때문이다. 즉 절대적 도덕적 명령과 그것에 대한 우리의 상대적 이해를 혼동한 것이다. 도덕적 원리는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하기에 그것들은 바뀔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기본적 도덕적 인격을 바꿀 수 없으시기 때문이다(말 3:6; 히 6:18).    

다섯째, 동성애를 정당화하기 위해 일부 포유동물들도 동성애 행위를 한다고 주장하는데, 동물의 행동을 인간 행동의 규범으로 볼 수는 없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동물들 사이에서의 동성애 행위는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것이지 습관적이거나 일생 동안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이런 주장은 하나님의 창조물로서의 동물에 뿐만 아니라 인간 스스로에게도 모욕이다. 사실 동물의 왕국에서는 타락한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성적으로 격렬한 동성애 행위를 찾아보기 힘들다. 또 우리는 동물들의 행위가 인간 행동의 전형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동물은 이성적이지 않고 도덕적으로 책임을 지는 창조물이 아니다. 동물들은 본능을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그런 까닭에 그들의 행동에 대해 윤리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 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동물처럼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행동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여섯째, 동성애가 일반적으로 사회에 아무런 근심거리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매춘, 마약, 알코올중독 등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회학적, 범죄학적, 통계학적, 그리고 윤리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 오히려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해롭다.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해로운 특성을 지니는 집단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일부 심리학적 연구는 일반적인 경우와 비교해 볼 때 훨씬 높은 정도의 자기 중심성, 거만함, 나르시시즘(자기 도취증), 자기 학대(피학대 음란증), 그리고 적대심 등의 부정적 정서가 동성애와 관련되어 나타난다고 보고한다. 예를 들어, 히틀러의 친위부대에는 일반부대보다 훨씬 많은 수의 동성애자들이 있었으며, 아동 성 학대 사건에 동성애자들이 관련된 경우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세배나 많으며, 다른 동성애자들에 대한 일부 동성애자들의 동성애 범죄는 범행 중에서 가장 폭력적이다. 동성애의 이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특징들이 사회적 근심거리의 이유다.

일곱째, 동성애자들의 주장과 달리 동성애는 비정상적이다. 성경적 진술을 떠나서라도, 자연 그 자체가 동성애가 잘못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동성애는 분명 사람의 성의 자연스러운 사용 혹은 그 정체성에 반대된다. 아무도 동성애 결혼(성교, 관계)을 통해 태어나지 않았으며, 아무도 동성애자로 태어나지 않았다. 동성애 행위는 정상적인 행위가 아니다. 단지 인구의 작은 비율(약 2-4%)이 이러한 비정상적인 행위를 한다. 우리는 동성애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동성애 재활프로그램을 통해 다시금 원래의 정상적인 삶으로 회복된 이들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동성애는 자연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하다.

여덟째, 어떤 사회도 동성애를 통해 유지될 수 없다. 사회는 바로 그 존재 자체의 존속을 위해 이성애 관계에 의존한다. 건강한 이성애 관계를 떠나서는 동성애자들이 있을 수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아무도 동성애 관계를 통해 태어날 수 없었다. 이성애는 인류의 존속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이성애가 없이는 전 인류가 한 세대로 멸종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동성애는 인류의 존속에 위협이 된다. 모두가 동성애를 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류의 멸종 같은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동성애가 모두에게 용납될 만한 행동이라면, 만일 그렇다면 모두가 그것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만일 모두가 동성애를 실행한다면, 그때 인류는 스스로 파멸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성애는 건강한 삶에 큰 위협이 된다. 동성애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도록 하는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에이즈(HIV/AIDS)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치명적인 질병이 동성애 행위에 의해 아주 쉽게 만연된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 에이즈가 동성애자들로부터 혈유병 환자들, 주사기를 공동으로 사용한 이들, 의료진들, 양성애자들의 아내들, 그리고 이 밖의 다른 이들 같은 동성애가 아닌 이들에게 퍼지게 된다는 것에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결국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옮기는 동성애 행위의 직접 혹은 간접적인 결과로 죽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동성애는 단지 개인의 도덕적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건강과 삶에 직접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4. 요약 및 결론

하나님께서는 성관계가 일부일처 이성애 관계의 배경 안에서 사용 되도록 규정하셨다. 동성애는 이러한 인류의 성에 대해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패턴에 정반대된다. 게다가 성경은 동성애 행위에 대해 분명하고 단호하게 반대하여 말한다. 구약성경은 동성애가 사형에 처해야 할 범죄로 여겼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동성애를 출교의 근거로 취급한다. 사실, 바울은 동성애자들은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으로 선언한다. 성경은 분명히 동성애를 비정상적이고, 불결하고, 수치스럽고, 보기 흉하고, 사악하고,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으로 부른다. 이처럼 성경은 분명히 동성애를 반대한다. 오늘날 세상의 문화적 현상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분명한 권위 있는 대답을 준다. 동성애에 대한 동정은 많은 곳에서 늘어나고 있으며, 심지어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도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 점점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삶의 양식으로, 진화한 문화의 현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모든 가치판단에서 바탕이 되고 기준이 되는 성경은 동성애를 죄로 선언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영감된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우리도 마땅히 이러한 세상의 조류에 반대하여 동성애를 죄로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동성애를 병으로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도덕적인 악으로, 죄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이 살던 당시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정죄 받지 않았다. 하? 嗤?로마서는 바울이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들이 사용했던 순리와 역리라는 당시의 용어를 사용하면서 동성애를 반대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비록 사회가 동성애를 인정하고 죄로 여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경에서 죄로 정죄한다면 마땅히 죄악으로 선언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속의 문화에 영향을 주어 잘못된 사상을 변화시켜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죄를 알려주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동성애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통해 인격적 변화를 추구하도록 도전해야 한다. 또한 동성애가 죄임을 인정하고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동성애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진정한 회개와 더불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우리도 죄인이었으며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 왔듯이, 그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이며 우리와 마찬가지로 구원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동성애 혐오증”을 경계해야 한다. 비록 우리가 간통과 간음을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간음하거나 간통한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적대시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성애 죄는 싫어하더라도 그 죄인에게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참고도서>

Atkins, David. Homosexuals in the Christian Fellowship. 2d ed. Grand Rapids: Eerdmans, 1981.
Bahnsen, Greg L. Homosexuality: A Biblical View: Grand Rapids: Baker, 1978.
Bailey, D. Sherwin. Homosexuality and the Western Christian Tradition. Reprint. Hamden, Conn.: Shoe String, 1975.
Bathelor, Edward, Jr., ed. Homosexuality and Ethics. New York: Pilgrim,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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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5  2010.9. 전쟁과 평화- 박종화 목사    한복협 2010/09/10 1699 4853
704  2009.12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Ⅴ)-방지일 목사(말씀)    한복협 2009/12/11 1667 5398
703  2007.6 솔로몬의 영광보다 욥의 고난과 인내를-박명수 교수(응답)    한복협 2009/07/14 1664 4762
702  2007.11 나의 목회비전-권성수 목사    한복협 2009/07/17 1658 6895
701  2006.9 한국교회 제 3의 부흥은 올 것인가? 어떻게?- 김상복 목사    한복협 2009/07/14 1652 5006
700  2010.3 한국교회와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박상은 박사    한복협 2010/03/12 1649 5224
699  2012.6. 작은 교회들을 격려하며 함께 하는 한국교회Ⅲ - 작은 교회 목회자 6분    한복협 2012/06/09 1637 5132
698  2013.4. 스포츠 선교의 현황과 중요성 - 이 영 무 목사 (간증)    한복협 2013/04/13 1627 5089
697  2011.6. 멘토에게 삶의 길을 묻다- 림인식 목사    한복협 2011/06/10 1622 4952
696  2009.3 3.1운동 90주년을 맞으며 "3.1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김대선 교무(응답)    한복협 2009/07/17 1599 4689
695  2013.6. 작은교회들을 격려하며 함께 하는 한국교회 Ⅳ- 박명수 교수(특강)    한복협 2013/06/14 1591 4757
694  2011.2. 주여 기도와 예배의 부흥을 주시옵소서-오정호 목사    한복협 2011/02/11 1576 5152
693  2009.11 한국교회와 스포츠 선교-최현부 목사    한복협 2009/11/13 1557 4955
692  2012.3. 3.1정신을 이어받아....종교인의 사명과 역할- 임석순 목사(기도)    한복협 2012/03/09 1543 4982
691  2013.4. 스포츠 선교의 현황과 중요성 - 송 용 필 목사    한복협 2013/04/13 1503 4966
690  2013.4. 스포츠 선교의 현황과 중요성 - 양 영 자 선교사 (간증)    한복협 2013/04/13 1502 4646
689  2011.12.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 7- 오정호 목사 (격려의말씀)    한복협 2011/12/09 1499 4768
688   2011.12.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 7- 스티브 린튼 박사    한복협 2011/12/09 1498 4953
 2008.10 에이즈 문제와 한국교회-박진태 목사    한복협 2009/07/17 1496 5201
686  2010.3 한국교회와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손봉호 박사(응답)    한복협 2010/03/12 1491 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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